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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은 송하인(용선자)이 제시한 선하증권에 서명해야 한다”는 용선계약 조항에 대하여

  • 기사입력 2025.02.06 08:22
  • 기자명 나우경 미국변호사(워싱턴 D.C.), 법학박사
나우경 미국변호사(워싱턴 D.C.), 법학박사
나우경 미국변호사(워싱턴 D.C.), 법학박사

[현대해양] 벌크화물(산적화물)이 선박에 실리면 1항사는 인수한 화물에 대해 화물 인수증(Mate’s Receipt)을 발행한다. 그 후 송하인이 선장에게 선하증권 발행을 요청하면 선장(또는 운송인이나 대리인)은 화물 인수증에 기재된 내용을 토대로 선하증권을 발행한다. 많은 선하증권이 지상약관(Paramount Clause)을 통해 준거법으로 채택하고 있는 헤이그 (비스비) 규칙은 선하증권을 발행할 때 화물에 대하여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이 기재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Article III, Rule 2). 

  (a) 화물의 식별을 위한 주요 기호. 화물 선적 전 송하인이 서면으로 제시

  (b) 포장이나 개품의 숫자, 양, 무게 등 송하인이 서면으로 제시한 사항

  (c) 화물의 외관상 모습 

또 헤이그 (비스비) 규칙 Article III, Rule 5는 ‘송하인은 자신이 제시한 기호, 숫자, 수량 및 무게에 대해 담보하며 부정확한 정보로 인한 운송인의 손해를 보상’하도록 규정 하고 있다. 

요약하면, 선하증권을 발행하는 운송인이나 선장은 인수한 화물에 대한 사항을 선하증권에 기재해야 하나, 운송인이 화물에 표시된 기호나 수량, 무게 등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니, 송하인이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운송인은 특별히 이에 대해 의심할만한 사정이 없으면 제공받은 정보를 토대로 선하증권을 발행하게 된다. 이 경우에 운송인이 선하증권에 기재하는 소위 부지문구(Unknown Clause)의 효력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3회에 걸쳐서 살펴보았다. 

한편 벌크화물 운송 실무에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송하인 또는 용선자가 선하증권을 작성한 다음 이를 선장이나 운송인에게 제시하여 서명을 받는다. 선하증권에 기재되는 수하인, 통지처, 양하지, 화물 명세 등 정보를 송하인이나 용선자가 가지고 있어 효율적인 측면이 있어 보인다. 이러한 실무를 반영하여 많은 표준 용선계약서 양식에는 “송하인이나 용선자가 선하증권을 작성하여 선장이나 운송인에게 제시하면, 선장이나 운송인은 제시된 대로 선하증권에 서명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기재된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문구가 쓰인다.

“The Master shall sign the bills of lading or way bills for cargo as presented in conformity with mates or tally clerk’s receipts (NYPE1993),”

“The Master is to sign Bills of Lading as presented on the North American Grain Bills of Lading Form without prejudice to the terms and  conditions and exceptions of this Charterparty (NORGRAIN89)”

이러한 실무는 화물의 기호, 수량, 무게 등의 정보를 송하인이 제공한 대로 선하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한 헤이그 (비스비) 규칙과도 어울린다. 

그러나 화물의 외관상 모습(Apparent Order and Condition)에 대하여도 송하인이나 용선자가 선하증권에 기재하여 선장이나 운송인에게 제시하게 되는데 선장이나 운송인이 그대로 서명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만약 선적 중에 화물의 하자를 선장이 발견하였음에도 송하인이나 용선자가 제시한 선하증권에는 그대로 서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선장이 화물의 하자를 선하증권에 기재하자고 하면 용선자는 용선계약의 약정을 거론하며 자신이 제시한대로 선하증권에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자들은 운송인이나 선장은 송하인 또는 용선자가 선하증권에 기재한 내용을 믿고 선하증권에 서명을 하는 것이니 그러한 기재사항에 오류가 있어 선주가 손해를 본다면 용선자가 보상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선주는 용선자가 제시한대로 선하증권에 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과연 선장이나 운송인은 선하증권의 기재사항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선계약에 의거하여 선하증권에 서명하여야 할까? 또는 선장이나 운송인이 화물의 외관에 대해 관찰하지 못 한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선적된 화물의 외관 상태에 대한 기재와 관련한 The ‘Tai Prize’호 사건(Noble Chartering Inc. vs Priminds Shipping Hong Kong Ltd. [2021] EWCA Civ 87) 판결을 통하여 영국 법원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사건에서 용선계약서에 “선장은 제시된 대로 선하증권에 서명해야 한다”는 약정이 있었고, 선하증권에는 “Clean on Board” “Shipped in Apparent Good Order and Condition”이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 중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선적 전에 화물 손상이 있었으나 선장은 이를 알지 못했고 선하증권에 그대로 서명했다. 송하인이 선적 전 화물 손상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었으나 알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양하지인 중국의 법원에서 화주(의 적하보험자)에게 손해배상을 한 선주가 정기용선자에게 손해배상을 구하는 중재(소송)를 제기하였고, 선주 손해의 50%를 배상한 정기용선자가 다시 항해용선자를 상대로 구상청구를 한 사건이었다. 

The ‘Tai Prize’호 판결에서 영국 항소심 법원은 용선계약에 비록 선장은 제시된 대로 선하증권에 서명해야 한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송하인이 선하증권에 기재한 “Clean on Board” “Shipped in Apparent Good Order and Condition”이라는 문구는 송하인의 표시(Representation)가 아니고, 선장이 화물의 외관에 대해 관찰한 대로 선하증권에 기재하라는 요청이라고 판시하였다. 영국 법원은 ‘선장에게 선하증권을 제시함으로써 송하인은 선장에게 화물의 외관 상태에 대한 선장 자신의 평가를 사실적으로 기재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화물의 외관 상태에 대해서는 헤이그 규칙상 선장이 관찰하고 기재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항목으로써 송하인은 이에 대해 어떠한 보증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선적된 화물의 외관 상태에 대해서 ‘송하인이 제시한대로의 선하증권에 서명하라’는 용선계약 문구가 있더라도 선장은 자신이 관찰한 사실대로 선하증권에 기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만약 선하증권의 화물 기재 내용이 부정확하였다는 이유로 선주가 손해를 입었으나, 선장이 화물 기재사항이 부정확하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던 경우에는, 용선자는 선주의 손해를 보상할 묵시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Julian Cooke et al, Voyage Charters 5th Edit. (Lloyd’s Shipping Law Library, 2022) paragraph 18.231). 다만, The ‘Tai Prize’호 사건에서는 ①선장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화물의 외관상 상태는 양호하였기에 선하증권의 화물 기재사항이 부정확하지 않았으며 ②송하인이나 용선자가 선적 전 화물의 손상 상태를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용선자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용선계약서에 선장은 제시된 대로 선하증권에 서명하여야 한다고 약정이 되었더라도 이러한 약정이 화물의 외관을 관찰하고 이를 선하증권에 기재해야 하는 선장의 의무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선장은 선적 시 화물의 외관을 성실하게 관찰하고 하자가 발견되면 이를 선하증권에 기재해서 선하증권 양수인을 보호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른 글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화물의 하자를 발견하고서도 용선자의 보상각서(Indemnity Letter)를 받고 무고장 선하증권(Clean B/L)을 발행하면 범죄 행위가 될 수 있으며 보상각서는 법적인 효력을 인정받지 못 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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