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1. 서론
총체적 선주책임제한협약(LLMC, 이하 “협약”)은 해난사고 발생 시 선주의 책임을 제한하는 국제 협약으로 우리나라 역시 선주책임제한법으로 별도 규정하고 있다. 협약 제 1조 1항에는 ‘선주’가 책임 제한을 원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제 1조 2항에는 선주를 ‘선주(Owner), 용선자(Charterer), 선박관리자(Manager) 혹은 운항자(Operator)’로 정의한다.
하지만, 해운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계약 당사자가 이 정의에 포함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최근 Sea Consortium Pte Ltd and Others v Bengal Tiger Line Pte Ltd and Others [2024] EWHC 3174 (Admlty) 사건에서, 영국 법원은 컨테이너 선박의 슬롯 임차인(Slot Charterer)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계약당사자가 협약의 ‘선주’의 정의에 포함되는지를 판결한 사례가 있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2. 사건 개요
2021년 5월, 컨테이너선 MV X-Press Pearl호는 화재로 인해 스리랑카 해역에서 침몰, 선박과 화물이 전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기 용선자인 Sea Consortium Pte Ltd(이하 ‘용선자’)는 영국 법원에 책임 제한 개시 신청을 하였다.
이에 따라, 용선자와 운송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 또한 자신들도 책임 제한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3. 법원의 판단
책임 제한을 신청한 3명의 당사자와 그 계약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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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gal Tiger Lines Ptd |
Fixed Slots Contrac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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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C |
Connecting Carrier Agree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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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rsk |
Agreement for Transport Service |
법원은 예전 판결인 The MSC Napoli [2009] 1 Lloyd’s Rep. 246 사건에서 슬롯 임차인을 선주로 인정한 사례를 참고하였다. 해당 판결에서 법원은 다음의 기준을 바탕으로 슬롯 임차인을 용선자로 인정하였다.
- 용선자는 선박의 모든 선복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 슬롯 임차 계약도 정기용선이나 항해용선계약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 슬롯 임차인이 선하증권을 발행하며 계약 운송인으로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법원은 계약의 명칭이 아닌 본질에 따라, 계약 당사자가 선박을 이용하고 선복을 활용해 계약운송인의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를 통해 법원은 신청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였다.
I) Bengal Tiger Line Pte
이 신청인은 예전 The MSC Napoli 사건의 당사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으므로 협약상 용선자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II) MSC
MSC는 환적화물을 용선자의 선박으로 운송하는 연계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계약서에서 MSC는 매주 일정 슬롯을 확보하고, 용선자는 정해진 항구와 항로로 운송하기로 하였다. 비록 해당 계약서에는 MSC의 선하증권 발행에 대한 규정은 없으나, 법원은 화물사고 처리를 MSC가 한다는 조항을 통해 MSC의 계약운송인의 지위를 추정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계약과 기존 슬롯 임대차 계약과의 차이는 미사용 슬롯에 대해 임차료를 지급하지 않는 것 뿐이며, 이러한 차별점은 슬롯 임차계약의 본질을 바꿀만한 주요한 계약내용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III) Maersk
Maersk는 Agreement for Transport Service라는 비정형적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따르면 선복의 크기나 화물량을 따로 정하지 않고, Maersk가 지정하는 경우 용선자는 충분한 선복을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의 계약은 일견 Maersk가 화주의 지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은 계약서상 Maersk의 선하증권이 발행된다는 점, Maersk가 계약 운송인임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 등을 중요하게 판단하였다. 결론적으로, 해당 계약에 따라 Maersk 역시 협약상 용선자의 지위를 취득한다고 보았다.
4. 결론
이 판결은 협약상 책임제한을 원용할 수 있는 용선자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해운계약의 다양화로 인해 기존 용선계약의 기준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법원은 (i)계약 당사자가 선복을 사용할 권한이 있는지, 그리고 (ii)선하증권의 발행을 통한 계약운송인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였다. 이는 앞으로 유사한 분쟁에서 책임제한의 주체를 가리는 데 있어 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