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이 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 부지문구의 효력에 대한 미국 법원의 해석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에서 법을 논할 때는 해당 사항이 주법의 관할 대상인지 연방법의 관할 대상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미국 연방 헌법은 외국과의 해상운송은 연방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정하고 있다(Article3, Section2). 외국과의 해상운송에 적용되는 연방법은 해상운송법(46 U.S.C. App. §§1300-1315: Carriage of Goods by Sea Act, 1936)과 연방 선하증권법(49 USC §§80101-80116: Federal Bills of Lading Act, 1916: Pomerene Act라고도 불린다)이 있다. 연방 선하증권법은 미국에서 출발하여 외국으로 운송되는 경우에만 적용되고 그 반대의 경우(외국에서 출발하여 미국으로 운송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 해상운송법은 1924년 헤이그 규칙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헤이그 규칙과 마찬가지로 운송인이 화물을 수령한 후에 운송인, 선장 또는 운송인의 대리인은 송하인의 요청이 있으면 송하인이 제공한 화물의 표시, 화물 명세(수량, 무게 등), 외관 상태 등을 기재한 선하증권을 발행하도록 하고 있다(§1303(3)). 선하증권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화물을 수령하였다는 추정적 증거가 된다(§1303(4)). 송하인은 자신이 제공한 화물 정보에 대해 보증하며, 부정확한 정보로 인한 운송인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1303(5)). 또한, 헤이그 규칙과 마찬가지로 운송인의 책임을 감경하는 선하증권 조항은 무효가 된다(§1303(8)).
미국 선하증권법은 헤이그 규칙이나 다른 나라의 해상법과는 달리 부지문구가 유효하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1) 화주가 화물을 적재(Load)했고, 2) 선하증권이 화물의 표시(Mark)나 라벨(Label), 화물의 종류, 수량, 또는 상태를 기재하거나, “내용물을 모른다”, “송하인이 적재했다”, “송하인이 무게를 측정하거나 수량을 세었다”는 등의 부지문구가 있는 경우, 3) 운송인이 화물의 일부를 수령하였는지 여부 또는 운송물에 대한 기재가 운송물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는 경우(§80113(b)) 등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 운송인은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다만, 선하증권법은 운송이 미국에서 출발하는 경우에만 적용되어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운송되는 화물과 관련하여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 선하증권법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부지문구의 효력이 쉽게 인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해상운송법이 적용되는 경우에 미국 법원은 대체로 부지문구의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김상만, “해상물건운송에서 선하증권의 부지문구에 관한 미국법의 시사점,” 『서울법학』 제19권 제2호,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연구소, 2011), 292~293쪽). 예를 들어, “~의 무게가 나간다고 고지됨(Said to Weigh),” “송하인이 적재하고 수량을 셈(Shipper’s Load and Count),” “포장 내용물은 송하인에 따름(contents of packages are shipper’s declaration)”과 같은 유보 문구가 있더라도 선하증권에 기재된 무게는 운송인이 기재된 무게의 화물을 수령했다는 추정적 증거(Prima Facie Evidence)가 된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송하인이 제공한 정보의 정확성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있다거나 그러한 정확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선하증권에 그러한 기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Westway Coffee Corp. v. M.V. NETUNO, 675 F.2d 30, 32 (2d Cir.1982)).
Westway Coffee Corp. v. M.V. NETUNO, 675 F.2d 30 (2d Cir.1982) 사건은 브라질에서 미국 뉴욕으로 운송된 커피 1,710카톤(7만 6,608kg)이 적재된 컨테이너들에서 419카톤(20톤)의 커피의 부족손(Shortage)이 발견된 사건이다. 운송인은 송하인이 제공한 정보를 선하증권에 기재하며 “Said to Contain(STC),” “Shipper’s Load and Count,” “Contents of Packages Are Shipper’s Declaration”이라고 부지문구를 기재하였다. 제2 항소법원은 부지문구에도 불구하고 선하증권에 기재된 화물 무게는 운송인이 그러한 화물을 수령했다는 추정적 증거가 된다고 판시하였다. 법원은 화물 무게를 바로 측정해 볼 수 있는 운송인이 무게를 기재함으로써 “그가 실제로 수령한 화물의 무게가 기재된 무게와 다를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할만한 근거가 없으며 운송인은 무게를 점검할 합리적인 수단이 있다”는 것을 표시(Representation)한 것이라고 보았다. 즉 내품을 볼 수 없는 컨테이너에 선적된 경우라고 하더라도, 화물의 무게는 쉽게 검증해 볼 수 있으므로 무게에 대한 부지문구의 효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한편 위 Westway 판례는 컨테이너 운송화물에 대한 판례이지만, 부지문구가 부인된 판례들은 대체로 벌크(Bulk) 화물인 경우가 많다. 이에 197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컨테이너 화물에 대한 법원의 입장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Austracan (U.S.A.) Inc., V. Neptune Orient Lines, Ltd., 612 F.Supp. 578 (S.D. New York, 1985)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컨테이너에 선적되어 미국 오클랜드항에서 양하된 후 철도로 뉴욕까지 운송된 1,350카톤의 참치에 대해서 최종 양하지에서 258카톤이 부족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는 화물의 무게는 다투어지지 않았고 카톤 수량만이 다툼의 대상이었다. 비록 실제로는 화주가 컨테이너에 화물을 적입해 봉인을 한 상태로 운송인에게 전달해 운송인이 컨테이너 안의 내품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만, 선적지의 운송인 대리인이 “Pier-to-House”라고 선하증권에 기재함으로써 마치 운송인이 부두에서 직접 컨테이너에 화물을 적입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법원은 이러한 기재를 신뢰하고 선하증권을 매입한 자들에게 (선하증권의 부지문구에도 불구하고) 선하증권에 기재된 숫자의 카톤에 대해 운송인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판시하였다. 즉 운송인은 자신이 선하증권에 대해 기재한 사항을 신뢰하고 이를 매입한 자에게 다시 부지문구로써 이를 부인하지 못한다는 금반언(Estoppel)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다만, 판사는 (이번 사건은 “Pier–to-House”라는 기재에 대한 금반언으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컨테이너의 운송에서 화주가 공장에서 적재를 완료한 후 봉인하여 운송인에게 전달하는 경우에는 운송인이 내부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이번 사건과 같은 기재가 없었다면) 달리 판단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Bally, Inc., v. M.V. Zim America, 22 F.3d 65 (2nd Cir, 1994) 사건은 가죽제품을 적재한 뒤 이탈리아 레그혼(Leghorn)에서 미국 뉴욕으로 운송된 두 대의 컨테이너들 중 한 대(301카톤 선적)에서 65카톤이 분실된 사건의 판례이다. 송하인이 화물을 컨테이너에 적입한 후 봉인을 하였고, 발행된 선하증권에는 “Said to Contain Shipper’s Load, Stow and Count”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양하지에서 봉인은 손상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으나, 수하인의 창고에서 컨테이너를 열었을 때 부족손이 발견된 것이다. 판사는 선하증권은 선적지에서 선적된 화물의 무게에 대한 추정적 증거는 될 수 있을지라도, 봉인된 컨테이너 내부의 화물 상태는 컨테이너 외관을 검사해서는 발견할 수 없으므로 선하증권이 봉인된 컨테이너 내의 카톤 수량에 대한 추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종합해 보면, 미국 해상운송법이 적용되는 경우, 미국 법원은 부지문구의 유효성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설사 운송인이 내부를 볼 수 없는 컨테이너 운송의 경우에도 무게에 대한 부지문구의 효력은 인정하지 않지만, 컨테이너 내부의 화물 수량과 같이 운송인이 확인할 합리적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부지문구의 효력을 인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영국 법원의 판결과 같이 선하증권 기재사항이 화물에 대한 운송인의 표시(Representation)에 해당하여 금반언의 원칙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봉인되어 운송인에게 전달된 컨테이너 내부의 화물은 운송인이 점검할 방법이 없으므로 부지문구가 기재된 선하증권의 화물의 수량 및 상태에 대한 운송인의 기재사항은 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외에 운송인이 화물의 무게, 수량 등을 확인하였거나 확인 가능한 경우, 부지문구에도 불구하고 화물에 대한 기재 사항에 대해 운송인이 표시하였다고 보아 이후 이를 부인하지 못한다.
한 가지 더 주의 할 점은, 선하증권은 제3자에게 전전 유통되는 문서이므로 운송인이 컨테이너에 자신이 화물을 적입하지 않았으면서도 ‘운송인이 직접 화물을 적입하였다’고 하는 사실과 다른 기재사항을 쓴 경우, 법원은 (부지문구 보다도) 이러한 기재를 신뢰한 제3자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선하증권에 사실과 부합하는 기재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