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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증권상 부지문구의 효력(2)

“Said to Contain,” “Weight Unknown,” “Shipper’s Load and Count” 등

  • 기사입력 2024.12.02 16:11
  • 기자명 나우경 미국변호사(워싱턴 D.C.), 법학박사
나우경 미국변호사(워싱턴 D.C.), 법학박사

[현대해양] 지난 글에서는 선하증권에 기재되는 부지문구의 의미와 그런 부지문구가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선하증권의 부지문구와 관련한 영국 법리와 몇 가지 대표적인 판례를 검토하고자 한다.

영국은 1924년 헤이그 규칙을 수용한 해상화물운송법(Carriage of Goods by Sea Act, 1924)을 제정하였다. 이후 다시 1968년의 헤이그 비스비 규칙을 전면 수용하며, 1971년 해상화물운송법(Carriage of Goods by Sea Act, 1971: 이하 ‘영국 해상화물운송법(1971)’이라고 부르기로 한다)으로 개정하였다.

한편 영국은 1992년에 140년간 적용되어 오던 1885년 선하증권법(Bills of Lading Act, 1885)을 폐지하고, 새로운 해상화물운송법(Carriage of Goods by Sea Act, 1992: 이하 ‘영국 해상화물운송법(1992)’로 부르기로 한다)을 제정하였다. 다만, 영국 해상화물운송법(1992) 제5조 제5항은 동 법은 영국 해상화물운송법(1971)에 의하여 당분간 법적 효력을 갖고 있는 헤이그 비스비 규칙의 적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해상운송에 대하여 1971년 및 1992년 해상화물운송법이 모두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판례에서 많이 논의되는 영국 해상화물운송법(1992) 제4조와 영국 보통법상 법리인 금반언(Estoppel) 원칙을 우선 살펴보기로 한다. 영국 해상화물운송법(1992) 제4조는 선하증권상의 ‘표시(representation)’(‘표시’라는 표현보다는 ‘진술’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나, 통상 ‘표시’라고 번역하고 있으므로 이를 따르기로 한다)에 관한 조항으로서, 선적되거나 선적을 위해 수령한 화물에 대한 기재를 하고 선장이나 선장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가 서명을 한 선하증권은 선하증권의 적법한 소지자에 대하여 선적 또는 수령된 화물에 대하여 확정적(conclusive)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선하증권에 기재한 화물명세가 화물에 대한 표시인가라는 점이 종종 다투어진다. 만약 화물에 대한 기재사항이 ‘표시’에 해당한다면 보통법상 ‘표시에 의한 금반언(estoppel by representation)’ 법리가 적용된다. ‘표시에 의한 금반언’이란 사람이 일정한 표시(진술)를 하고  다른 사람이 그 기재를 신뢰하고 행동을 한 경우 처음 표시한 자가 자신의 표시를 부정하지 못하게 하는 법리이다. 이를 부정하면 다른 사람이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법원은 선하증권상에 화물 상세(무게, 수량, 외관 상태 등)와 부지문구(또는 부지약관)가 함께 기재되어 있는 경우 화물 상세에 대한 운송인의 표시(representation)가 있는지를 검토한다. 다시 말하면 부지문구에 의하여 화물 상세에 대한 기재사항이 표시에 미치지 못하게 되는지를 검토한다. 만약 화물 상세에 대한 운송인의 표시가 있는 경우라면, 운송인은 화물 상세대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즉, 양하된 화물과 선하증권상의 화물 상세 내용과 차이가 있다면 그러한 차이에 대해 운송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부지문구로 인하여 선하증권 상의 화물 상세 기재가 효력을 잃는다면, 청구권자는 자신이 주장하는 화물이 선적되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한 입증을 하지 못한다면 운송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실패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로 살펴볼 영국 판례는 the “Mata K”호 판례이다(Agrosin Pte. Ltd. v Highway Shipping Co. Ltd., [1998] 2 Ll.L.Rep. 614). 1996년 12월 17일 선주는 원고와 “마타 케이(Mata K)”호 선박을 이용하여 2만 5,000톤의 염화칼륨(muriate of potash)을 라트비아(Latvia)의 벤트스필즈(Ventspils)항에서 한국과 일본의 항구들로 운송하기로 하는 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선하증권은 널리 쓰이는 양식인 Congenbill 양식으로 발행되었으며, “송하인의 화물 기재(Shipper’s description of goods)”와 함께 “무게, 용적, 품질, 수량, 상태, 내용물, 그리고 가치는 알지 못함(Weight, measure, quality, quantity, condition, contents and value unknown)”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선하증권에는 헤이그 규칙이 준거법으로 적용되었다. 선하증권은 선장의 대리권을 받은 용선자에 의해 서명되었다. 양하지에서 1만 1,000톤이 기재된 선하증권의 화물이 2,705톤이 부족하다고 판명되었다. 

판사는 “수량을 모름(quantity unknown)”이라는 부지문구가 선하증권에 기재되어 있다면 선하증권의 화물량에 대한 기재는 사실에 대한 진술(representation)이 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즉 영국 해상화물운송법(1992) 제4조에 따른 선하증권상의 진술이 없는 것이다. 원고는 부지문구를 삽입하는 것은 운송인의 책임을 경감하는 조항을 넣지 못하도록 하는 헤이그 규칙 제3조 제8항 위반이라고 주장하였으나, 판사는 부지문구를 삽입하는 행위는 단지 선주는 송하인이 제시한 화물에 대한 숫자를 표기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하였다. 또 헤이그 규칙 제3조 제3항에 따라 송하인은 (부지문구가 삭제되고) 화물량이 기재된 선하증권을 요구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나 그렇지 못했다고 하였다. 특히 Congenbill에는 부지문구가 기본 양식으로 인쇄되어 있는데, 용선계약서에서 Congenbill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점, 그리고 선주의 위임을 받아 선하증권에 서명한 자는 용선자였음을을 들어 원고(용선자)가 부지문구의 사용을 인지하고 동의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내부를 볼 수 없는 컨테이너 화물이 아닌 산적(벌크) 화물의 운송이고 선장이 선적된 화물의 양을 드래프트서베이 등의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지문구의 효력을 인정한 본 건 판례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본건에서는 부지문구가 기본적으로 포함된 Congenbill 양식이 용선계약서에서 합의되었고, 이와 같이 부지문구가 기재된 선하증권에 서명한 당사자가 바로 이 사건의 원고인 용선자이었다는 점이 많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으로 금반언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부지문구에 대하여 합의하고 서명한 당사자가 이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이 오히려 금반언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선하증권을 인수한 제3자가 소송을 제기하였다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두 번째로 살펴볼 판례는 the “Saga Explorer”호 판례(Breffka & Hehnke GmbH & Co KG and others v Navire Shipping Co Ltd and others, [2012] EWHC 3124)인데 위 판례와 사뭇 다른 결론을 내린다. 이 사건은 2008년에 한국 울산에서 미국과 캐나다 서부로 운송한 철제 파이프에 관한 소송이다. 선하증권 앞면에는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 선적되었다(SHIPPED in apparent good order and condition...)라는 문구와 함께 “만약 화주에 의해서 기재된 화물이 철제품 또는 목제품이면, 앞 문단에 적힌 ‘외관상 양호한 상태(apparent good order and condition)’라는 표현은 수령한 철제품이 눈에 보이는 녹 또는 습기가 없다는 의미 또는 목제품의 경우에는 뒤틀림, 파손, 따내기, 습기, 끝이 갈라지거나 부러짐, 오염, 부패 또는 변색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는 약관이 기재되어 있었다(이와 같은 약관을 소위 ‘레틀라 조항(Retla Clause)’이라고 부른다). 선하증권은 영국을 법정지로 하고 미국 해상운송법(1936)을 편입하는 지상약관이 적용되었다. 선적 시에 화물 검정이 실시되었으며, 검정결과 다음과 같은 내용의 화물 손상이 발견되었다: “부분적으로 녹 오염됨(partly rust stained),” “선적 전 비에 의해 젖고, 부분적으로 녹 오염되고, 표면이 약간 긁힘(wetted before shipment by rain and partly rust stained and slightly scratched on surface),” “선적 전 비에 의해 젖고 표면이 하얗게 산화된 녹 오염이 부분적으로 있음(wetted before shipment by rain and partly rust stained in white oxidation on surface).” 검정보고서에는 위의 손상은 선장에 의해 인지되었으며 본선 수령증에 첨부되었다고 기재하였다. 특히 검정보고서 첨부물에는 위의 화물 손상 상태가 본선 수령증과 선하증권에 기재되거나 첨부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제안서가 첨부되었고 검정인과 일항사가 공동 서명하였다. 검정보고서를 본 송하인은 보상각서(letter of indemnity)를 주기로 하고 무고장 선하증권(화물에 대해 아무런 하자 표시가 없는 선하증권) 발행을 요청하였다. 법원은 선하증권에 화물 손상 상태가 기재되면 화물 대금을 수령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송하인이 보상 각서를 제출하는 대신 무고장 선하증권 발행을 요청한 것이라고 보았다.

법원은 철제품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표면상 산화 또는 녹은 불가피하다고 하며 이를 선하증권에 하자로 기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선장은 화물의 외관 상태에 대해 자신이 본 바대로 정직하고, 합리적인, 그러나 비전문가적인 자신의 의견을 형성해야 한다고 하였다. 레틀라 조항은 주변 공기로 인한 산화와 같이 모든 철제품류에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녹과 습기의 외관 즉 피하기 어려운 표면상의 녹에 대한 단서 조항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며, 레틀라 조항이 모든 종류의 녹에 적용된다는 선주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본 건 레틀라 조항은 허위 진술(false representation)으로서 정직하고, 합리적인, 비전문가의 견해가 아니고 선주를 위한 사기적인 고안(calculation)이라고 하였다.

선하증권의 부지문구의 효력을 인정하였던 다른 영국 판례들과 이번 판례의 차이는, 다른 사례에서는 운송인이 화물의 무게, 수량 또는 상태에 대해 실제로 모르는 상태에서 부지문구를 삽입한 경우로서 부지문구가 실제와 부합하였다면, 이번 사례에서는 선적항에서의 검정 결과를 운송인이 인지한 상태에서 레틀라 조항을 기재하였다는 것이다. 즉, 화물의 무게, 수량, 상태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앞의 사례에서의 부지문구는 사실에 부합하는 기술이었던 반면, 이번 사례에서의 레틀라 조항은 사실과는 다른 허위 기재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한편 the “Mata K”호 사건은 화물의 무게 또는 양에 관한 사건으로 영국법에서 이러한 정보는 원칙적으로 화주가 제공해야 하므로 선주는 이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부지문구를 통상적으로 기재한다. 그러나 화주가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는 별개로 선주 역시 화물의 수량이나 무게를 측정한다면 과연 부지문구의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조심스럽다. 반면 The “Saga Explorer”호 사건에서는 영국법에서 선장이 의무적으로 관찰하고 기재하도록 한 화물의 외관에 대한 사항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한 문구이기에 이러한 부지문구의 효력을 부인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철제품류 수출입에 종사하는 송하인이나 수하인은 철제품류가 녹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 선하증권을 매수할 당시에 선하증권 앞면에 기재된 레틀라 조항을 보고 선하증권 인수를 거부할 수 있다는 점, 신용장 통일규칙에서 레틀라 조항이 기재된 선하증권의 매입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레틀라 조항의 효력을 일률적으로 부인할 것이 아니라, 철제품류에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녹의 정도를 초과하고 선장이 이를 인지한 경우에만 효력이 부인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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