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1. 서론
정기용선 계약 상 선박의 보험가입은 원칙적으로 선주의 책임이다. 그러나 기본 보험조건에서 담보가 불가한 항해(얼음지역 항해, 또는 전쟁 및 해적위험 지역으로 항해 등)를 지시하는 경우, 용선자는 선주가 해당 항해를 위해서 부담해야 하는 추가 보험료를 보상한다. 이때 용선자가 추가 보험료를 보상하더라도 선박이 직면하는 사고 위험에 대해서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는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2024년 초 영국 대법원은 비록 용선자가 선주의 추가 보험료를 보상했더라도 그 대가로 용선자의 배상책임을 면제시키고 당사자 사이에 모든 손해를 보험으로만 처리하기로 했다는 명확한 합의가 있지 않다면 선주는 기존 권리에 따라서 여전히 구상청구가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렸다(“The Polar Case” (Herculito Maritime and others v Gunvor International BV and others [2024] UKSC 2).
2. 사실관계 및 소송결과
2010년 10월, 탱커선박 “Polar”호는 항해용선계약에 따라 러시아에서 화물을 선적한 후 수에즈운하를 거쳐 싱가포르로 항해하던 중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다.
이 납치는 약 10개월간 계속되었고, 협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770만 달러의 석방금을 지급하며 풀려났다. 이 석방금은 해적위험지역 통항을 대비하여 선주가 가입한 납치보험 (Kidnap & Ransom)에서 지급되었으며 보험자는 화주도 석방의 이득을 얻었으므로 공동해손 법리에 따라 약 500만 달러의 분담금을 요구했다.
이에 수화주는 해당 항해를 위한 추가 보험료를 항해용선계약 상 용선자가 지급한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해적의 납치위험을 보험으로만 해결하기로 합의했으며 자신에 대한 공동해손 분담금 청구는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수화주는 비록 자신이 항해용선계약서 상 당사자는 아니지만 선하증권의 소지인으로써 선하증권 상 용선계약이 편입된다는 문구를 근거로 용선자와 동일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음을 피력하였다.
런던중재에서 중재부는 수화주의 상기 주장을 인정하며 선주의 분담금 청구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선주는 법원에 항소하였고 1심 법원, 항소심 법원 그리고 대법원 모두 선주의 주장을 받아들여 분담금 청구가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특히, 대법원은 과거의 판례들을 분석하며 용선자가 단순히 선주의 보험료를 부담하기로 한 사실만으로는 해당 손해를 보험으로만 처리하고 용선자에게 구상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용선자가 선주의 추가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단순히 선주가 위험지역으로 항행을 거부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대가라고 해석하였다.
대법원은 1980년 이라크 전쟁 시 Baltime 계약양식에 따라 선주가 항행여부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보유하고 선박의 억류 시 시간 손실을 모두 용선자가 부담한다는 계약조건을 근거로 선주와 용선자가 전쟁위험을 보험으로만 해결하기로 합의했다고 해석한 The Evia(No.2) 판결은 아주 예외적인 판결로 신중히 적용되어야 한다고 구별하였다. 아울러, 비록 선하증권에 용선계약이 편입되는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용선계약서의 추가 보험료 조항을 수화주에게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결하였다.
3. 분석 및 시사점
법원은 본 사건이 단순히 계약 해석의 문제임을 강조하였다. 즉, 보험료 부담 주체나 구상권 포기 여부 등은 당사자 사이에 얼마든지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 보듯, 조항이 불명확한 경우, 용선자는 위험지역 통항을 위한 선주의 추가보험료를 부담하면서도, 선주의 기존 권리에 따라 사고발생 시 다시 구상 청구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만약 선주와 용선자 사이에 전쟁/해적 위험 등을 선주의 추가보험으로만 처리하기로 합의한다면, 명확한 문구를 삽입하는 것 외에도 선주는 구상권 포기에 대하여 보험자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한편, 용선자는 항시 용선자 배상책임보험(Charterers’ Liability Insurance)를 통해 용선자의 비즈니스 특성으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선박손상에 대한 선주의 구상 청구에 대비해야 한다. 추가로 해적에게 몸값을 지급하는 행위가 불법인지에 대한 논의가 많은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영국법원은 2011년 항소법원 판결(Masefild v Amlin 2011)에서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대금이 테러리즘에 사용될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이 있는 경우, 불법으로 간주된다(Terrorism Act 2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