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선하증권은 보통 세 통을 발행한다. 발행된 세 통의 선하증권 중 한 통의 선하증권을 선하증권 소지인이 운송인에게 제시하면 운송인은 선하증권 소지인 즉 수하인에게 화물을 인도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통의 선하증권은 어떻게 되는가, 왜 선하증권은 세 통을 발행하는가, 이와 같은 관행에는 어떤 법적인 근거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선하증권을 몇 통 발행해야 한다고 정해진 법은 없다. 아마도 과거에 우편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한 통의 선하증권만 발행했다가 이 선하증권을 분실하면 화물을 인도받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것이기에, 이를 방지하고자 선하증권을 여러 통 발행해서 그 중의 한 통만으로도 화물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운송인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이렇게 여러 통의 선하증권을 발행해도 되는가? 만약 발행된 여러 통의 선하증권을 여러 사람이 각각 한 통씩 들고 와서 자신이 진정한 권리자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법으로 여러 통의 선하증권을 발행하는 경우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면 편리할 것이다. 우리나라 상법 제857조는 수통의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그 중 한 통을 소지한 자가 화물의 인도를 청구하면 선장은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그러한 경우에는 나머지 선하증권은 효력을 잃는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운송인과 선하증권 소지인과의 관계에 우리나라 상법이 적용된다면 선하증권 한 통만을 받고 화물을 인도한 운송인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선하증권은 서로 다른 국가 간에 운송되는 화물에 관하여 발행되는 증서이며, 모든 국가의 법에 우리나라 상법과 같이 여러 통의 선하증권이 발행되는 경우에 관한 법규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통의 선하증권이 발행되고, 그 중 한 통의 선하증권에 근거하여 화물을 인도할 수 있다는 법률이 없는 경우를 위해서 계약 조항을 삽입하는 방법이 있다. 여러 통의 선하증권이 발행되는 경우에는 발행된 선하증권 중 한 통의 선하증권에 의해서 화물을 인도할 수 있고 이 경우 나머지 선하증권은 무효가 된다는 내용의 계약 조항을 운송계약에 삽입함으로써 운송인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벌크화물 운송에 많이 쓰이는 CONGEN B/L (2007)에는 “IN WITNESS whereof the Master or Agent of the said vessel has signed the number of Bills of Lading indicated below all of this tenor and date, any one of which being accomplished the others shall be void(선장이나 대리인은 아래에 기재된 수량의 선하증권에 서명하였으며, 그 중 어느 하나가 제시되면 나머지 선하증권은 무효가 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하증권에는 이러한 취지의 문구가 기재되어 있어 계약 조항으로써 운송인을 보호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문구가 선하증권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선하증권 소지인이 클레임을 제기하는 국가의 법에 우리나라 상법과 같은 조항이 없다면, 운송인은 각각의 선하증권 소지자 모두에게 화물을 인도해야 하는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우편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굳이 여러 통의 선하증권을 발행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전자선하증권과 같이 유통 중 분실 위험이 거의 없는 경우에는 선하증권을 한 통만 발행하고 있는 점을 볼 때, 분실의 위험이 없다면 굳이 선하증권을 여러 통 발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물론 종이 선하증권의 경우에 만에 하나 선하증권을 분실한다면, 법원에서 이미 발행된 선하증권의 효력을 부인하는 제권판결(除權判決)을 받아야 하고, 이러한 과정에 수개월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종이 선하증권의 경우에는 아직도 여러 통의 선하증권을 발행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신용장이 개입된 경우에 대부분의 은행은 발행된 선하증권이 모두 제출되는 것을 신용장 대금 지급의 조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종이 선하증권의 경우에도 여러 통의 선하증권을 발행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우편물의 분실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우편시스템에서는 선하증권을 여러 통 발행하는 관행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여러 통의 선하증권을 발행하는 경우는 아니지만, 통관 목적 등을 위해 선하증권 ‘사본’을 여러 통 발행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이러한 경우에 운송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본’이라고 도장을 찍어서 발행해 주면 되는가? 선하증권 사본의 효력을 법원에서 어떻게 볼지 모르기 때문에 운송인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요청을 받는다면, 발행된 사본이 원본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선하증권이 ‘유통 불가능한 사본(Copy Non-Negotiable)’이라는 말과 ‘통관목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Customs Purpose Only)’는 내용을 모두 기재해서 발행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러 통의 선하증권을 발행할 경우에 각각의 선하증권에 발행 통수와 몇 번째 선하증권이라는 것을 어떻게 표시하는지에 대해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3통의 선하증권을 발행하면서 발행되는 선하증권 오른쪽 상단에 첫 번째 선하증권에는 ‘1/1’이라고 기재하고, 두 번째 선하증권에는 ‘2/2’, 세 번째 선하증권에는 ‘3/3’이라고 기재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기재는 선하증권을 인수하는 사람이 도대체 선하증권이 총 몇 통 발행되었는지 알기에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선하증권 기재사항은 운송인과 선하증권 소지인 사이의 약정 사항을 기재한 것이다. 선하증권을 여러 통 발행하는 경우에는 우선 총 몇 통이 발행되는지를 기재한 후에, 발행되는 선하증권에는 각각 ‘1/3’, ‘2/3’, ‘3/3’ 등과 같이 제3자가 보기에 몇 통의 선하증권이 발행되었고 그 중에 몇 번째 선하증권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이상으로 선하증권을 여러 통 발행하는 이유와, 우리나라 상법에서는 운송인은 발행된 선하증권 중 한 통에 의해서도 화물을 인도할 수 있고 이 경우 나머지 선하증권은 효력을 잃는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 법으로 위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니 선하증권에 그러한 취지의 약관을 기재해 두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선하증권 기재사항은 운송인과 소지인 사이의 약정이라는 점에서 통관 목적의 사본을 발행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취지의 내용을 쉽게 볼 수 있도록 기재하여 사본에 의하여 화물이 인도되는 경우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과, 선하증권을 여러 통 발행하는 경우에 발행 통수와 순번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기재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