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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창고업자도 선하증권 소지자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

  • 기사입력 2024.07.24 14:50
  • 최종수정 2024.07.24 14:52
  • 기자명 나우경
나우경 미국변호사, 법학박사
나우경 미국변호사, 법학박사

선하증권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어려운 단어이긴 하지만 선하증권의 법적 성질을 잘 나타내는 용어 하나가 있다. 바로 ‘상환증권성’ 이다. 

‘상환증권’이란 “증권과 상환하지 않으면 채무의 변제를 할 필요가 없는 증권”을 말한다(정영석, 『선하증권론, 법과 실무』(텍스트북스, 2008), 43쪽). 즉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이란 운송인은 선하증권을 상환 받지 않으면 화물을 인도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며, 이는 운송인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상법 제129조도 “화물상환증을 작성한 경우에는 이와 상환하지 아니하면 운송물의 인도를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법 제861조 상 선하증권에도 준용된다고 하여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을 규정하고 있다.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을 인정하는 이유는 운송인이 운송물을 인도할 때는 반드시 선하증권을 (상환)받고 인도하게끔 하여, 운송인이 운송물을 인도한 이후에 또 다른 권리자가 나타나 화물 인도를 청구하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위의 책, 44쪽). 

그런데, 요즘은 선박 속력이 빨라져 특히 대부분의 컨테이너 운송에서는 컨테이너 운송 선박이 선하증권보다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한다. 만약 운송인이 컨테이너를 부두 컨테이너 야드에 계속 쌓아 둔다면 금세 장소가 모자라게 될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운송인은 관세청의 ‘보세화물 관리에 관한 고시’에 따라, 선하증권을 상환 받지 않고, 화주가 지정하는 보세창고로 화물 이송을 허가하게 되는데, 이때의 화물 이송은 화물 인도가 아니라는 것이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단이다(대법원 2006. 12. 21. 선고 2003다47362 판결).

화주가 지정한 보세창고로 화물을 운반할 때, 운송인은 보세창고 업자로부터 “운송인의 화물인도지시서(Delivery Order)를 받기 전에는 화물을 인도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화물을 보세창고로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그러한 각서나 약정 없이 화주의 지시에 따라 일단 화물을 보세창고로 운반하게 된다. 만약 운송인과 보세창고 간에 아무런 약정이나 각서 같은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보세창고는 화주에게 화물을 인도할 때 운송인의 지시나 허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 또는 선하증권을 회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해상운송화물이 통관을 위하여 보세창고에 입고된 경우에는 운송인과 보세창고업자 사이에 해상운송화물에 관하여 묵시적 임치계약이 성립하고, 보세창고업자는 운송인과의 임치계약에 따라 운송인 또는 그가 지정하는 자에게 화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9. 10. 15. 선고 2009다39820 판결, 대법원 2023. 12. 14. 선고 2022다208649 판결).

여기서 임치계약은 보관계약을 의미한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운송인과 보세창고업자 사이에 각서나 합의서가 없더라도 묵시적인 보관계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세창고업자는 운송인의 지시에 따라 화물을 인도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보세창고업자가 그러한 의무를 위반하여 운송인이 선하증권 소지자에게 손해배상을 하였다면, 보세창고업자는 (묵시적 임치계약에 따라서) 운송인의 손해를 보상하여야 할 책임을 지게 된다.

한편 보세창고업자가 화물을 무단 반출하는 경우에 화물을 인수하지 못하여, 손해를 입은 정당한 선하증권 소지자는 운송인뿐만 아니라 보세창고업자에게 직접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선하증권 소지자는 운송인에게 화물 인도를 청구할 수 있으며, 보세창고 업자가 화물을 무단 반출하여 운송인이 선하증권 소지자에게 화물을 인도할 수 없게 된다면, 운송인은 선하증권 소지자에게 화물을 인도하지 못하는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데 선하증권 소지자는 자신과(또는 선하증권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보세창고 업자에게도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을까? 

보세창고업자가 운송인의 화물인도지시서 없이 화물을 무단 반출하였고 화물(및 선하증권)에 대하여 화주와 담보계약을 체결한 신용장 발행 은행이 운송인과 보세창고업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우리나라 대법원은 보세창고는 운송인의 이행보조자로서 “보세창고업자도 해상운송의 정당한 수령인인 선하증권의 소지인에게 화물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고 “나아가 보세창고업자는 화물 인도 과정에서 운송인이 발행한 화물인도지지서가 화물을 인도할 수 있는 근거서류로 적법하게 발행되었는지 등을 확인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23. 12. 14. 선고 2022다208649 판결).

다만, 이 사례에서 신용장 발행 은행은 선하증권을 취득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보세창고에 대한 은행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즉 보세창고업자는 화물을 무단 반출한 일에 대하여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하여는 손해배상 의무가 있으나, 선하증권을 소지하지 않은 은행에 대하여는, 아무리 은행이 신용장 발행은행으로서 화주와의 계약 관계에서 화물에 대한 권리를 얻었다 하더라도, (은행이 선하증권을 소지하지 않는 한) 손해배상을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에 따라 운송인은 화물 인도 시에 선하증권을 확보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법원은 보세창고업자가 운송인과 묵시적 임치계약 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운송인의 이행보조자로서 선하증권을 상환 받고 화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아무런 명시적인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운송인과 사이에 묵시적 임치계약(보관계약) 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나라 법원의 독특한 입장이다. 나아가 법원은 운송인의 이행보조자로서 보세창고업자에게 대하여도 화주의 선하증권 소지여부를 확인하거나 운송인의 화물인도지시서의 적법성 여부를 확인할 의무를 인정하였다.

이러한 대법원 판례는 보세창고업자와 화주 사이에 보관계약이 체결된 경우에도 적용되는 사항이라고 보는바, 보세창고업자는 화주와 자신이 직접 계약을 하였는지와 상관없이 운송인의 화물인도지시서를 확보하고 화물을 인도하는 등 화물 인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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