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용선계약에는 합리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 책임을 규정하는 조항들이 있다. 예를 들어, 불가항력 조항(Force Majeure)은 당사자의 합리적인 노력에도 해소되지 않는 경우에 적용된다. 또, 하역업체의 과실로 인한 손실을 선주가 부담할 때 용선자에게 문제해결에 대해 합리적인 노력 수준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조항의 문제는 해석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부담해야 하는지가 계약 내용에 없으므로 분쟁의 원인이 된다.
영국 대법원에서는 최근 RTI Ltd v. MUR Shipping BV[2024] UKSC 18 사건에서 위와 같은 불확실성의 중요한 결정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 판례를 소개함으로써 차후 용선계약 작성 시 도움을 주고자 한다.
2. 사실관계
당사자는 2016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터키에서 우크라이나로 약 28만 톤(MT)의 보크사이트를 운송하는 장기운송계약(COA, Contract of Affreightment)를 체결하였다. 2018년 4월 6일 미 재무성은 용선자인 RTI의 모회사를 러시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였고, 선주인 MUR은 이를 근거로 4월 10일 계약서상 불가항력 조항를 주장하며 선박을 지정하지 않았다. 용선자는 선주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운임을 유로화(EUR)로 지급하고, 그로 인한 추가비용까지 부담하는 제안을 하였으나 선주는 수용하지 않았다. 4월 23일 미 재무성은 2018년 10월 23일까지 용선자의 영업활동을 허가하였고, 이에 따라 4월 25일 선주는 선박을 지정하고 용선자의 유로화 지급을 수용하였다.
용선자는 선주의 계약 이행 거부기간 동안 대체선박을 투입하였고 이로 인한 손실에 대해 선주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3. 계약서 상 관련 조항
분쟁이 된 조항은 다음과 같다.
Clause 20. Freight payment Freight rate USD xxx per matric ton ...
Clause 36.1 ... neither Owners nor Charterers shall be liable to the other for loss, damage, delay or failure in performance caused by a Force Majeure Event as hereinafter defined.
36.3 A Force Majeure Event is an event or state of affairs which meets all of the following criteria:
...
(c) It is caused by ... any rules or regulations of governments or any interference or acts or directions of governments ... restrictions on monetary transfers and exchanges;
(d) It cannot be overcome by reasonable endeavors from the Party affected.
4. 하급심의 판단
당사자들은 중재를 개시하였다. 중재인은 용선자의 모회사가 재제대상이 된 것은 불가항력 조항의 요건은 성립하나, 운임의 유료화 지급을 통해 해결될 수 있으므로, 위 36.3(d) 조항에 따라 선주는 불가항력 조항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위 쟁점은 법원에서 다시 다투어졌다. 1심 법원은 계약상 미화(USD)로 지급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로화로의 지급 제안은 선주에게 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불가항력을 조항을 주장할 수 없다는 중재판정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항소심은 위 미화 지급 요건이 반드시 미화로만 지급하라는 의미는 아니며, 정해진 시간에 선주의 계좌에 미화로 환산될 수 있으면 충분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유로화 지급 수용은 합리적인 노력이 범주 안에 포함되며, 이를 이행하지 못한 선주는 불가항력 조항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보았다.
5.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1심 법원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합리적인 노력은 계약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계약을 변경하거나 대체하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이 계약에서의 이행조건은 미화로 운임을 지급하는 것이며, 제재는 미화 송금의 지연을 초래하므로 계약 이행의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유로화 결제가 지연을 해소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를 극복(Overcome)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유로화 결제를 수용하는 것은 합리적 노력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합리적인 노력이 계약 이행 범위를 넘어서 행해져야 한다면, 계약서에 명확한 범위와 내용이 기재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계약의 조건이나 당사자의 권리 또는 의무의 변경을 초래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계약서에 명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선주의 유로화 지급 거부가 합리적인 노력의 범위가 아님을 인정하고, 용선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였다.
6. 결론 및 시사점
이 판결은 계약 문구인 '합리적인 노력'의 범위가 당사자의 계약상 권리나 의무를 초과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여 조항 해석의 가이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판결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해석은 계약문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 법원은 The Gravelor [2023] EWHC 131(Comm) 사건에서 제재로 인한 용선료 지급 지연에 대해 당사자가 “협조하고 가능한 모든 필요한 수단을 진행한다”라는 취지의 계약문구를 넓게 해석하여 계약 변경에 이르는 행위도 '협조'의 범위라고 고려한 바 있다.
계약서 상 명확한 문구 명시는 차후 불필요한 분쟁을 피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