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국내 최대 해운사 HMM(옛 현대상선)이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 본사 부산 이전설과 민간 매각설이 기업 의지와 관계 없이 나돌고 있다. HMM의 본사 이전은 대선 ‘공약’의 이름으로, 민간 매각은 ‘효율’의 명분으로 추진되지만, 정작 해운의 본질인 경쟁력과 주권은 논의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HMM 본사는 서울 여의도, 주요 운항·터미널 거점은 부산항이다. 이원적 구조가 수십 년간 유지돼왔지만, 지난해부터 본사 부산으로 이전설이 확산됐다. 그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해양수도 부산’ 육성이 있다. 해수부는 대통령 공약 이행의 일환으로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해운·물류 클러스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해수부와 산하기관, HMM 본사 등의 이전을 그 핵심과제로 설정했다.
문제는 이 과정이 HMM의 기업 의사와는 별개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해수부 관계자는 “국가 해운산업의 균형 발전 차원에서 부산으로의 본사 이전이 불가피하다”고 밝히며, “정부가 직접 이전을 강제하지는 않지만, 정책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HMM 내부 분위기는 다르다. 한 HMM 간부는 “이전은 아직 내부 검토 단계일 뿐이다. 노조 동의, 인력 재배치, 가족 이주 등 현실적 허들이 많다”며,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회사 입장에서는 조직적 혼란을 감수하기 어렵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국가경제 전체 GDP 기여도는 0.02% 미만에 불과하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국가 차원의 물류비 절감이나 생산성 향상 효과도 제한적이다. 김형수 KDI 연구위원은 “이전은 상징성과 지역 정치효과는 크지만, 국가 물류체계 효율성이나 산업 경쟁력에는 직접적 영향이 없다”고 분석했다.
민영화 논의와 포스코 인수설
부산 이전 논의가 채 정리되기도 전에, 지난 8월 포스코그룹이 HMM 인수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소식은 해운업계를 다시 술렁이게 했다. HMM의 대주주 구조는 다음과 같다. 산업은행(20.7%) + 한국해양진흥공사(19.9%) = 총 57.9% (공공지분).
정부는 2023년부터 공적자금 회수를 목표로 매각을 추진해왔으나, 하림·SM상선·LX그룹 등과의 협상은 번번이 무산됐다. 이때 포스코가 ‘국가 전략적 민영화 파트너’로 거론된 것이다.

포스코의 논리-공급망 효율화와 물류비 절감
포스코는 매년 철광석·석탄 등 3억 톤 규모의 원자재를 수입한다. HMM을 인수하면 자체 해운망을 확보해 연간 약 2,000억 원의 물류비 절감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또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수출 물류를 HMM 네트워크와 통합함으로써 철강-해운-에너지 공급망 통합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해운 전문가들은 “단기적 효율보다 장기적 리스크가 더 크다”고 입을 모은다. 최수범 인천대 물류경영연구소 소장은 “HMM의 민영화 자체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비(非)해운 자본 중심의 인수는 산업 생태계를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HMM의 본사 이전이나 민영화는 정치적 접근보다 산업적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해운업계 반발…“해운생태계 붕괴” 우려
지난 9월 11일 부산항발전협의회는 “포스코의 HMM 인수는 해운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처사이며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며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철강산업이 침체할 경우, HMM이 보조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 △자가화물 운송 중심의 해운 진출은 물류비 절감 효과가 없고, 오히려 기존 해운사의 운항권을 잠식해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 있음 △해외 사례(브라질 발레, 일본 JFE)의 실패처럼 비해운기업의 해운 진출은 지속 가능성이 낮음 등이었다.
이에 더해 한국해운협회는 지난달 2일 포스코 회장에게 HMM 인수 철회 건의서를 제출했다. 해운협회는 건의서에는 “1990년대 포스코 자회사 거양해운이 자가화물 운송 한계로 실패했던 전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명시됐다. 또한 해운협회는 “해운업은 전문 경영이 핵심이며, 비전문 대기업의 진출은 오히려 해운자원의 집중과 국가 물류체계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영화, 속도보다 구조
최수범 교수는 “HMM의 민영화 자체는 불가피한 흐름이다. 다만, 문제는 ‘언제’와 ‘어떻게’인데 공공기관이 단기적 회수 논리로 접근하면 국가 해운주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간 이양은 필요하지만, 반드시 산업 생태계와 전문 경영체제가 보장되어야 한다. 해운 전문성 확보가 전제되지 않으면 HMM은 ‘공적자금 회수용 기업’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 HMM 고위 간부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간부는 “포스코 인수는 아직 공식적으로 오간 바 없다. 다만, 인수 기업의 자본력과 산업 시너지는 중요하다. 아무리 공적지분 회수라 해도 해운의 전문성과 기업 자율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해수부 “논의된 바 없다”…그러나 추진 중?
해수부는 최근 “현재 HMM 매각과 관련해 관계기관과 논의한 바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해수부 내부와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민영화는 이미 단계적 로드맵에 포함돼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또한 본사 이전 문제는 ‘대통령 공약 이행사업’으로 사실상 해수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HMM의 의지와 관계없이 국가정책 차원에서 이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현장의 반발을 낳고 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해운재건 프로젝트로 살아난 HMM은 한국 해운의 상징이자 산업 주권의 바로미터가 됐다.
부산 이전은 지역 상징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국가 전체 산업효율로 보면 제한적이다. 포스코 인수는 재무적 시너지가 가능하나 해운 전문성과 공공성이 결여될 경우 국가 해운주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HMM의 본사 이전이나 민영화는 정치적 접근보다 산업적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산업의 논리’ 위에서 답 찾아야
최수범 교수는 “HMM의 본사 이전은 상징적 정책으로서 의미는 있지만, 이전이 곧 해운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산 이전은 장기적으로 ‘해운 클러스터 완성’의 한 조각일 뿐, 현재 구조에서는 부분 이전이나 복합 본사 체제가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또한 민영화에 대해 “HMM은 더 이상 공적자금 의존형 기업이 아니라 자립적 경영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포스코처럼 산업 외 기업의 단독 인수는 해운 전문성 결여와 생태계 교란 위험이 크다”며, “조건부 민영화+공공감독 병행’ 모델이 유일한 현실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HMM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의 상징이다. 민영화는 가능하되, 정부가 황금주(golden share)를 보유해 해운안보와 공공성을 견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HMM은 더 이상 구제의 대상이 아니다. 한진해운 파산 10년, HMM은 한국 해운의 상징이자 실험대가 됐다. 부산 이전은 지역경제에 활력을 주겠지만, 산업적 효율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부분 이전+현장 조직 강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민영화는 불가피하지만, 단독 인수보다는 공공감독형 민영화, 즉 정부가 공공성의 울타리를 유지한 채 민간의 자율과 효율성을 병행하는 이중 구조 모델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박명섭 성균관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HMM은 더 이상 구제의 이름이 아니라 성장의 모델로 남아야 한다. 정치의 논리가 아니라 산업의 논리로 해운 주권을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