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서비스

부터
까지


부터
까지

부유 퇴적물, 보이지 않는 교란의 시작

  • 기사입력 2025.11.14 10:15
  • 기자명 박신영 서울대 블루카본사업단 박사
서울대 블루카본사업단 박사
서울대 블루카본사업단 박사

[현대해양] 기후 변화 대응과 해양 개발이 동시에 추진되는 오늘날, 바다는 에너지와 자원의 보고이자 인간 활동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그곳은 인간의 발길이 가장 늦게 닿았지만, 변화는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해사 채취, 준설, 항만 확장과 같은 해저 공사로 인해 발생하는 부유 퇴적물 때문이다. 부유 퇴적물은 미세한 점토와 실트, 유기물 입자가 물속에 떠다니는 상태를 말한다. 겉보기에는 일시적인 탁도로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빛을 차단하고, 아가미나 여과기관을 막으며, 세포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복합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입자의 표면에는 금속이나 유기오염물질이 흡착되기 쉬워 단순한 물리적 교란을 넘어 화학적 오염 매개체로도 기능한다. 우리나라 연안에서는 서해와 남해를 중심으로 매년 수백만 세제곱미터의 모래가 채취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탁도가 급상승하기도 한다. 표층수의 투명도가 떨어지고 저서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며, 어류와 패류의 산란장도 영향을 받는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모래는 자연물이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어업인들은 “조업 구역이 흐려지고 어획량이 줄었다”고 호소한다. 이처럼 과학적 불확실성과 사회적 갈등이 맞물린 채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결국 핵심은 명확하다. 부유 퇴적물이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그 결과를 사회적 합의로 풀어내는 일이다. 이제 바다의 흐려진 빛 속에서,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입자들이 해양생명에 남기는 흔적을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세입자가 만든 그림자, 바다의 빛을 가리다

부유 퇴적물의 가장 즉각적인 영향은 빛의 차단이다. 바닷속 일차생산자인 미세조류와 해조류는 햇빛을 통해 광합성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양 먹이망 전체가 유지된다. 그러나 미세입자가 수면에 퍼지면 빛이 바닥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그 결과 광합성 효율이 떨어지며 성장률이 둔화 되고 군집 구조가 바뀐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식물성 플랑크톤의 문제가 아니다. 미세조류는 해양 먹이사슬의 출발점으로, 이들의 생산성이 낮아지면 조개·게·어류 등 상위 생물의 성장과 생존에도 연쇄적인 영향이 이어진다. 밝고 투명하던 연안이 탁해질수록 해양 생태계의 에너지 흐름은 서서히 약화된다.

해저의 생명, 미세입자 속에서 버티다

갯벌과 조하대에 서식하는 조개, 굴, 가리비 등 이매패류는 부유 퇴적물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다. 입자를 걸러 먹는 ‘여과섭식자’인 이들은 탁도가 높아지면 먹이를 섭취하기보다 미세입자를 걸러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아가미와 패각 안쪽에 쌓이는 침전물은 호흡을 어렵게 만들고, 점액 분비를 증가시켜 대사 부담을 키운다. 특히 어린 개체일수록 알이나 유생 단계에서는 이러한 영향이 훨씬 치명적이다. 세포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는 미세입자가 세포막을 손상시키거나 발달을 지연시킬 수 있다. 결국 하나의 개체가 자라 성체가 되기까지의 ‘세대 연결 고리’가 끊기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는 눈앞의 개체 피해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은 개체군의 재생산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숨쉬기 위한 투쟁, 어류의 보이지 않는 반응

물고기에게 탁한 물은 곧 ‘숨쉬기 어려운 바다’를 의미한다. 아가미 사이로 흙먼지가 들어가면 산소 교환 효율이 떨어지고, 에너지를 더 소모해야 한다. 탁도가 높을수록 어류의 활동량과 섭식 행동이 감소하며, 산란장을 회피하는 행동도 나타난다. 이러한 반응은 단순한 생리적 불편함을 넘어 서식지 이용과 어획량의 변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닥에 가까이 사는 저서성 어류는 퇴적물과의 접촉이 많아 영향을 크게 받으며, 활동성이 높은 어종일수록 탁도를 피하기 위해 더 넓은 구역으로 이동한다. 이 변화는 어장 구조를 바꾸고 어업 생산성에도 장기적 영향을 미친다.

복합 스트레스 시대의 새로운 평가 틀

부유 퇴적물은 해양 생물에게 단일한 자극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탁도 상승, 금속 흡착, 용존산소 저하, 그리고 수중소음이나 전자기장 등 다양한 인위적 요인과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한 가지 요인만으로 생태 영향을 판단하는 방식은 점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해양환경 연구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합·누적 평가’와 ‘특성 기반 접근법’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단순히 종별 차이를 넘어서, 각 생물이 가진 서식 특성·활동 시간·발달 단계 등 ‘생태적 성격’을 반영해 민감도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런 접근은 특정 어종이나 시기, 지역에 맞는 맞춤형 관리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남은 과제, ‘보호 기준’의 실질화

현재 국내외의 퇴적물 기준은 주로 화학적 오염물질 농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입자의 물리적 영향, 즉 부유 퇴적물로 인한 탁도와 생리적 스트레스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일부 해역에서는 참고지침 수준의 탁도 관리값이 제시되고 있으나, 법적 보호기준으로는 아직 미흡하다. 해역별로 생물상과 환경조건이 다른 만큼, 지역 특화형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단기 실험 중심의 데이터만으로는 개체군 수준의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 모니터링을 통해 탁도 변화와 어획량, 산란장 분포, 생태계 구조 변화를 함께 추적해야 한다. 이러한 과학적 축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불확실성을 줄이고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바다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투명한 시선

부유 퇴적물은 해양 개발이 가져온 필연적 부산물이지만, 그 영향이 명확히 드러나기 전까지 종종 간과되어 왔다. 그러나 바다가 흐려질수록 우리의 시야도 함께 흐려진다. 탁도는 단순히 물의 색이 아니라 우리가 해양을 얼마나 이해하고 존중하는가를 비추는 지표다. 바다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거대한 실험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속 가능한 개발과 생태 보전의 균형,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신뢰의 조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모래와 생명이 함께 숨 쉴 수 있는 바다, 그것이 우리가 향해야 할 진정한 ‘청정 해양’의 의미일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