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지금 우리는 미증유의 대전환 시대를 살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해양 물류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으며,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시대의 개막은 해양 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는 산업의 지형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파고의 한가운데,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에게 해양은 여전히 기회이자 미래다. 그러나 이 기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해양인재’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담대한 실천이 필요하다.
해운 융복합 인재를 지향하는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까지 국제 해운의 탄소 순배출량 ‘0’을 목표로 하면서 해양 산업의 패러다임은 친환경·디지털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암모니아, 수소와 같은 친환경 연료의 도입, 스마트·자율운항 선박의 등장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며, 해양 데이터 시장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만으로는 더 이상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미래의 해양 인재는 전통적인 항해·기관 지식은 물론, 해양금융, 해양 에너지부터 극지 항해 전문가, 자원개발 엔지니어, 해양법 전문가 등 영역이 훨씬 넓어지고 있다. AI와 빅데이터를 다루는 데이터 과학 역량, 친환경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복잡한 국제 규제와 정책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까지 갖춘 ‘융복합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교육 혁신의 출발점으로서 과감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학과 체제의 칸막이를 허물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교과목을 선택하고 융합 전공을 설계할 수 있는 유연한 학사 구조로 나아가고 있다. 인공지능, 스마트 해양모빌리티, 해양치유, 해양에너지 등 미래 유망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강화하며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창의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의 틀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또한, 세계 유수의 해양 분야 대학 및 기관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여 캠퍼스 자체를 글로벌 교육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교육계와 산업계의 협력으로, 융복합 인재의 길을 열자
그러나 미래 해양 인재 양성은 대학의 노력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산업계는 단순히 인력을 소비하는 역할을 넘어, 교육과정 설계부터 기술 개발까지 함께하는 ‘인재 공동 생산자’로 거듭나야 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역량을 교육에 신속히 반영하고, 학생들에게는 질 높은 실무 경험을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재 공동 생산자’ 라는 말은 단순한 재정적 후원이나 채용 연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친환경·자율운항 선박의 실증 데이터를 대학과 공유하고, 산업 현장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교육 커리큘럼으로 공동 개발하는 ‘현장 연계형 리빙랩(Living Lab)’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이 보유한 고가의 R&D 장비와 시뮬레이터를 학생들이 활용하게 함으로써,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현장에서 즉시 적용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도 미래 인재를 선점하고 기술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투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 나아가 미래의 해양 인재는 기술 전문성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한 국제 해양 질서를 꿰뚫어 보는 인문학적 통찰과 글로벌 시민의식을 겸비해야 한다. AI와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왜’ 이 기술을 사용하며, 이것이 사회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성찰하는 능력이다. 해양법과 국제 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바다 위에서 대한민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는 인재,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학이 지향하는 미래 해양 리더의 모습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연 협력이 필요하다.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 부산을 해양 혁신의 전초기지로
세계적인 해양도시들의 성공 사례는 이러한 협력의 중요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해양항만청(MPA)을 중심으로 정부, 산업계, 연구기관이 긴밀히 협력하여 세계 최고의 해양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이들은 공동으로 R&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관련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등 유기적인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특히 부산 역시 이러한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대한민국 해양수도이자 혁신의 전초기지로서 대학과 산업계가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테스트베드이자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해양 분야 신기술의 규제 샌드박스를 제공하고, 해양 스타트업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지역사회가 앞장서야 한다.
이처럼 교육계의 혁신, 산업계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지역사회의 지원이라는 세 바퀴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를 선도할 해양 인재를 길러내는 대의에 가까워질 수 있다. 여기에 정부의 역할이더해져야 한다. 투자는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약속이다.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해양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미래 해양 인재에 대한 과감하고 일관된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와 사회 전체가 해양 인재 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
대전환 시대를 향해
대전환의 시대, 파도는 우리에게 위협인 동시에 새로운 항로를 열어주는 기회다. 올해로 개교 80주년을 맞은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지난 세월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켜온 개척자 정신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100년도 거뜬하도록 다가오는 미래의 바다를 이끌어갈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해양 인재를 키워내는 데 모든 역량을 쏟을 것이다.
한 명의 해양 인재를 키우는 것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최첨단 선박 한 척을 진수하는 것과 같다. 교육계, 산업계,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선박이 해양강국의 미래로 순항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