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신석정(1907년∼1974년)의 본명은 석정(錫正), 석정(夕汀)은 아호다. 1907년 전라북도 부안군 동중리에서 태어났다.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향리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926년 박소정 규수와 성례를 올렸다. 1930년 상경하여 지금의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 전문학교 박한영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회람지 『원선(圓線)』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를 신석정은 박한영 스님 밑에서 불전을 배우는 한편 시문학사를 드나들던 때'라고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노장철학과 타골을 탐독하면서 만해 한용운 스님을 자주 찾아다니던 무렵'으로 시적 기법과 정신을 크게 영향을 입었다고 했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24년 4월 19일자 《조선일보》에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1931년 10월 '시문학' 3호에 '선물'을 발표하고,
그 잡지의 동인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전개하였다. 박용철·정지용·김영랑·김기림 등과 교류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1939년 첫 시집 『촛불』을 간행했다. 여기에 유명한 「임께서 부르시면」,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등이 들어있다. 이 시집으로 신석정은 목가 시인의 면류관을 쓰게 된다. 하지만 선생은 이 시기에도 단지 아름다운 자연만을 읊조린 것이 아니다. 「나는 어둠을 껴안는다」나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 등 망국의 하늘 아래 고통스러워하는 시를 썼다. 첫시집 『촛불』에 이어 1947년에는 제2시집 『슬픈 목가(牧歌)』를 간행하였다.
6·25사변 이후 태백신문사 고문을 지내다가 1954년 전주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55년부터는 전북대학교에서 시론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961년에 김제고등학교, 1963년부터 1972년 정년퇴직 때까지는 전주상업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67년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라북도지부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신석정의 첫 시집『촛불』은 1939년 11월 간행되었다. 그즈음 “노장철학과 도연명, 타고르의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노장철학과 유교적인 감성으로 자연과 동화된 일체의 경지를 추구했다. 신석정의 시적 상상력은 소년적인 꿈이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나타난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고, 청빈과 지조를 중시했던 가정환경으로 인해 지적 성격을 지녔다. 그리하여 식민지적 현실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에서 꿈의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현대문명의 잡담을 멀리 파한 곳에 한 개의 유토피아를 흠모하는 목가시인 신석정임을 잊을 수 없다”고 김기림 또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동양적인 사상과 자연의 세계에서 구현되는 이미지를 토대로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현실의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현실 바깥 존재들과 개방적 세계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촛불』에 실린 바다를 노래한 「먼 항해」도 그의 이런 시 세계를 엿보게 한다.
시인은 우선 첫 연에서 푸른 바다와 하늘 사이에 기거하는 바다의 갈매기를 등장시키고 있다. 천지 사이에 생존하는 갈매기의 등장은 자연친화적인 그의 시 세계의 지향점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그 자연 속에서의 한 주체인 갈매기의 날개가 비에 얼마나 젖었을까를 염려하고 있다. 자연친화를 넘어 자연동화적인 시인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 동화적인 심성은 저 먼 수평선으로부터 밀려오는 물결들에 감응해 그들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에 관심한다. 그러나 물결이 들려주고자 하는 그 이야기를 마지막 수신자인 해안의 바위는 한 번도 들어 준 적이 없다고 노래한다. 이렇게 자연친화적인 시인의 정서는 모든 사물을 쉽게 의인화하고 있다. 물결은 수없이 해안가로 밀려와 파도소리를 내고 있지만 해안의 바위는 한 번도 그 말을 들어준 적이 없으므로 냉정한 녀석들이다 라고 하는 시인 표현은 흥미롭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인은 <강아지 새끼처럼 기어 덤비는 푸른 물결이 황혼을 전별할 때까지>, <해안에 앉아서 바다에 쓰는 나의 해양시를 소리 높이 읊으랴>고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는 갈매기를 향해 <바다는 아직 한 사람의 시인도 손을 대어 본 적 없는/푸른 원고지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바다를 푸른 원고지로 인식하고 있는 시인의 바다 인식은 자연인 바다가 바로 시인 자신과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는지를 암시해주고 있는 부분이다. 자연은 바로 시인의 시적 바탕을 이루고 있는 토대임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제 바다인 이 푸른 원고지 위에다 흔적을 남기는 갈매기를 향해 <나의 젊은 해양시인이여!>라고 명명하면서 자신의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바다의 푸른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떠나서는 날이 멀은 내 푸른 옛꿈의 영농한/진주를 캐어오>는 꿈이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시인은 갈매기를 향해 <저- 수평선 넘어로 나를 데불고 먼 항해를 하지 않으려느냐?>고 청원하고 있다. 암담한 일제 강점기의 현실 속에서 그 현실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초월적 지향이 「먼 항해」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자연친화적인 순수시인들의 시가 현실 초월의 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을 초극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