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서비스

부터
까지


부터
까지

모두의 바다를 위한 에세이 17. 뱃놀이와 세일링, 한국형 해양레저산업이 가야 할 길은?

  • 기사입력 2025.11.17 11:25
  • 기자명 채동렬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재학 박사

 

[현대해양] 인간은 왜 배를 타는가? 우리나라의 뱃놀이 문화는?

인류가 배를 만들어 바다로 나아간 것은 생존을 위한 어업이나 교역이 목적이었지만, 문명이 진전되면서 ‘놀이로서의 항해’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귀족들이 요트를 타며 자연과의 교감과 정신적 여유를 추구했고, 이로부터 오늘날의 서구식 세일링 문화가 발전했다. 이른바 ‘놀이배(pleasure craft)’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여유를 즐기면서도 자연에 도전하는 삶의 태도를 상징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배를 탄다는 행위는 오랫동안 생업과 관계된 것이었다. 어촌의 배는 어획활동을 뒷받침하는 수단이자 연안지역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을 싣고 가는 운송수단이었고, 국민들 다수의 친수(親水)활동은 계곡과 시냇물에서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의 왕과 사대부들은 봄·가을에 풍류로서 뱃놀이를 즐겼다고는 하지만 항해의 즐거움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호수와 같이 잔잔한 수면에 배을 띄워서 시회(詩會)를 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행사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과 성종이 신하들과 함께 뱃놀이를 즐기며 풍경을 감상했다는 기록이 여러 번 등장한다. ‘주유(舟遊)’라 불리던 이 문화는 자연 속에서 사색과 교류를 즐기는 정적인 행위였다. 그들에게 배는 물살을 가르는 도전의 수단이 아니라 자연과 한 호흡 쉬어 가는 ‘물에 뜬 정자’ 같은 존재였다.

 

부산시 수영만 요트경기장
부산시 수영만 요트경기장

마리나항만을 중심으로 한 해양레저산업은 왜 육성되지 않는가?

우리가 조상대대로 이어온 전통이 이러한데, 해양수산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동안 서구식 해양레저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마리나항만과 같은 시설 구축에만 정책 역량과 예산을 집중해왔다. 그렇게 해도 요트산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전문가와 관련 협회·단체의 의견을 들어서 ‘요트조종면허’와 ‘소형동력선박조종면허’ 취득 지원사업을 시행하게 되었다. 그 후 십여 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은 서서히 여가를 즐기는 공간으로 ‘바다’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수단으로서 직접 ‘배’에 타고 그 행위를 즐기는데 관심도 커지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서양식 세일링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토양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고 우리 국민들은 해양레저 활동이 새로운 산업으로 육성될 만큼 활발하게 뱃놀이와 세일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해양레저정책은 산업으로서의 해양만을 보았고, 문화로서의 해양은 보지 못한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주도한 요트산업 육성 정책 추진의 논리는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1만 불을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마이카(my car)시대가 열렸듯이 3만 불이 넘어서게 되면 요트를 소유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었다. 수 천 억원 규모의 재정투자를 예고한 제1차 마리나항만 기본계획(2009년 수립)은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사업량이 축소되었지만 그래도 큰 예산이 투입되었다. 여러 곳에 새로운 모습의 마리나항만이 조성되었지만 계류시설은 빈 곳이 많았고 기대와 달리 마리나항만 주변 친수공간에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권은 형성되지 않았다. 

이러한 착오의 원인이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문화가 시설 조성만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있지는 않은가? 세일링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생활습관과 감성이 결합된 문화다. 어릴 적부터 물 위에서 노를 젓고, 물살을 타며, 바람의 방향을 읽어 본 경험이 여러 세대를 거쳐 축적되어 오면서 형성된 것이 서구식 요트 문화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물 위에서의 균형이나 조류의 흐름을 체험한 적이 없으며 조정이나 카약, 카누처럼 노를 젓는 활동조차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으니, 바람을 타는 항해는 당연히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바다보다는 강이나 호수가 비교적 덜 두렵고 조금은 더 익숙한 공간이다. 춘천의 소양강댐과 포천의 산정호수는 이미 오래된 유원지이며, 강촌마을은 8-90년대 수도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 야유회와 엠티 장소가 아닌가? 지금도 많은 도시에 호수공원이 있고 그 주변 산책로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계곡과 강을 낀 캠핑장을 예약하는 것이 더 힘들 정도로 우리 국민들은 물가를 좋아하지만 아직 바닷물 위에서 배를 타고 거침없는 항해를 하는 것은 두려움이 앞선다.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국민이 바다로 향하기 전에 먼저 물과 친해지는 단계가 필요하다. 단순히 수영이나 안전교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 위에서 균형을 잡고, 스스로 조종하며, 자연의 흐름을 느끼는 경험이 쌓이는 과정이 중요하다. 

한강에서는 이미 시민들이 주말마다 조정과 카약,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으며, 춘천과 충주 등 지방에서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수상레저센터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물 위에서의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몸으로 물살을 느끼고, 바람의 방향을 읽고, 자신의 힘으로 배를 움직이는 경험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배우는 일이다. 강과 호수에서 익힌 물 감각은 결국 더 넓은 바다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만들어낸다. 세일링은 결코 갑자기 시작되는 문화가 아니다. 내수면의 체험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바다의 역’ 정책의 성공 요인은 생활·문화공간을 형성한 것이었다.  

해양수산부가 섬의 유휴어항에 소규모의 자본으로 조성한 ‘역마리나’ 역시 세일링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은 현실에서는 ‘공급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실패한 결과를 낳은 것으로 평가된다. “섬과 어촌에서 자유롭게 항해하고 싶어도 요트를 정박할 공간이 없다”, “계류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요트를 구매하겠다”는 동호인들의 의견에 따라 도입했지만, 그 동호인들은 아직 대도시에 근접한 계류시설을 선호한다. 

우리나라의 ‘역마리나’ 조성 정책은 일본의 ‘바다의 역(うみの駅, Umi-no-Eki)’ 사례를 참고해 조성한 시설이다. 일본에서는 ‘바다의 역’ 개념이 등장하기 전인 1993년에 ‘도로의 역(道の駅, Michi-no-Eki)’사업을 시행했다. 일본에서 ‘기차역’은 단순한 정거장이 아니라, 철로변 지역의 주민과 여행객을 연결하는 공공 플랫폼으로 상점거리와 각종 생활·문화서비스가 제공되는 공간이다. 이러한 기차역과 같은 공간을 도로변에 조성해 도로변 지역을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로 무료 주차장과 화장실, 특산품 판매장, 관광안내소, 문화체험공간을 함께 갖춘 거점을 조성했다. 그 결과 ‘도로의 역’은 지역 산업과 문화를 되살리고, 지방의 생활경제를 연결하는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이 성공적인 모델을 바다로 확장한 것이 바로 ‘바다의 역’이다. 1990년대 후반 일본의 마리나산업은 버블경제의 붕괴로 큰 타격을 입었다. 요트는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전락했고, 피셔리나라고 불리던 일본의 소형 레저선박 정박항은 텅 비어갔다. 이때 국토교통성과 일본마리나협회(JMIA)는 방향을 바꾸었다. “마리나는 배를 위한 시설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원칙 아래, 2004년 ‘바다의 역 네트워크(海の駅ネットワーク)’가 공식 출범했다.

‘바다의 역’은 요트의 정박만을 위한 계류공간이 아니라 어촌 주민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생활형 해양플랫폼이었다. 소형선박 정박시설과 급유·급수 기능 외에도 식당, 특산품 매장, 해양체험관, 방재시설이 결합되어 있었다. 해양레저는 물론 교육, 관광, 지역경제의 순환을 모두 엮은 복합거점이었다. 요코스카의 ‘후카우라 우미노에키’는 해군기지 인근에 위치해 해상안보 전시관, 해군카레 레스토랑, 수산시장과 연계되어 있고, 히로시마의 ‘온도노세토 파크’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카약과 요트 체험을 즐기며 숙박·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발전했다. 토토리현의 ‘사카이미나토 바다의 역’은 수산시장과 연계해 지역 어촌의 경제를 되살린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일본에서 ‘바다의 역’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는 마리나항만이 전문가나 선박 소유자의 공간이었다면, 시행 이후 바다는 어촌 주민의 생활공간으로 바뀌었다. 개인 요트를 소유하지 않아도 누구나 바다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어촌은 관광과 식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가마쿠라고코마에역 해안철도
가마쿠라고코마에역 해안철도

한국형 세일링 휴양산업 정착을 위해   

2010년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우리나라 해양레저 활동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요트 인프라가 확충되고 어릴 때부터 서구식 해양레저문화를 접해 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직접 세일링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현재 수도권의 마리나 선석은 1,000석을 넘어섰고, 부산·경남권에서도 도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요트투어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세일링은 일부 동호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여가의 영역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제는 ‘한국형 세일링 문화’를 전제로 한 해양레저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분야는 수상·수중 활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호기심과 도전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이다. 바다로 나가기 전에 국민이 물과 친해지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강과 호수에서 노를 젓는 경험이 세일링의 첫걸음이 되고, 그 경험이 쌓일 때 마리나는 비로소 문화공간으로 살아난다. 바다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곁에 다가오는 공간이 아니다. 바다는 강물의 끝에서, 생활의 물가에서, 천천히 다가와야 한다. 

‘요트’와 ‘바다’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다. 카누·카약, SUP 등 비교적 저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무동력 수상레저기구를 ‘강’에서, ‘호수’에서, 그리고 바닷가에서 국민이 직접 다루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이에 발맞추어 정부가 국민의 생활 속으로 세일링 문화를 정착시키는 플랫폼을 제공한다면 “한국형 뱃놀이(세일링) 휴양산업”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