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가칭)수산식품유통협회(수산물유통협회)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수산물유통협회 설립을 위한 정관과 조직안 수정본을 마련해 유관단체에 회람토록 했다. 유통·수출지원 단체의 통합·규모화를 위해 수산·유통단체와 공감대를 형성한 후 설립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강도형 전 장관 당시 해양수산부가 수립한 ‘제2차 수산물 유통발전 기본계획(2023~2027)’에 따르면, 해수부는 ‘수산업계와 외식업계 상생 지원’ 목표 아래 2027년까지 유통·수출 지원 단체의 통합·규모화를 위해 수산식품유통협회 설립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수산물 이력제, 수산물 소비촉진사업 등 정부사업을 위탁수행하는 민간단체인 ㈔한국수산회를 중심으로 수산물유통협회를 설립하는 방안이 우선 검토되고 있다. 형태는 민간 사단법인으로 중도매인협회 등 타 협회는 독립회원사로 가입, 통합한다는 안이다. 정부는 법적 틀과 인가, 지원을 맡고, 실제 운영과 설립은 민간이 주도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수산물 유통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단독으로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고, 민간이 가진 혁신 역량을 제도적 틀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다.
수산식품유통협회는 수산물유통법 제53조(유통협회 설립) 1항에 따라 수산물유통사업자가 장관 인가 후 설립, 사업자 권익 보호·복리 증진, 유통 관련 통계 조사, 품질·위생 관리, 종사자 교육·훈련, 국가·지자체 대행사업, R&D, 해외 협력, 홍보 등의 업무를 하게 된다.
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도 관심 가져
현재 수산물 유통 구조는 산지 위판장, 도매시장, 중도매인, 가공업체, 소매상 등을 거치며 복잡하고 불투명한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가격 변동성이 크고 거래 정보가 불충분해 소비자 신뢰가 약하며, 온라인 유통이나 글로벌 수출 시장에 대응할 체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해수부 ‘제2차 수산물 유통발전 기본계획’에서도 이 점은 명확히 드러난다. 이 계획은 온라인 직거래 확대, 유통 이력관리 통합, 비축사업 개편,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대응 등 핵심 과제를 제시하면서, 민간 전문기관의 역할 확대를 강조했다. 특히 협회 설립은 유통제도의 혁신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제시됐다.
현실적으로는 기존 한국수산회를 중심으로 제3의 협회를 설립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한국수산회는 현재 해양수산부 위탁사업을 1,753억 원 규모로 수행하고 있으며, 경영정책본부, 유통소비본부, 수출마케팅본부, 수산정책연구소 등 이미 조직 기반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한국수산회는 협회의 모체로서 기능을 확대하고, 향후 다른 유통·수출 관련 단체와의 통합까지 추진할 수 있는 거점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해관계자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사)전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회장 윤준열)도 협회 설립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주도권은 실제 유통 현장에서 뛰고 있는 도매시장 법인들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 회장은 정부나 기존 단체가 이름만 바꿔 운영하는 협회라면 대표성과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며, 공영도매시장이 갖는 비중과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해 유통인들이 직접 주도하는 협회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수협중앙회 입장
수협중앙회 역시 협회 설립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협은 산지 위판장을 중심으로 한 유통의 핵심 축을 담당해왔고, 가공과 물류, 해외 수출 지원까지 수행해왔다. 따라서 협회가 새로 만들어지면 수협의 기능과 일부 겹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수협은 협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협회가 지나치게 권한을 확대해 수협 고유의 유통 역할을 약화시키는 방향은 경계한다. 수협은 협회가 생산자 중심의 유통을 보조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설정하고, 수협과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에 유통협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노량진수산시장 중도매인 장공순 씨가 회장을 맡았던 (사)한국수산물유통가공협회가 운영되긴 했지만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지적된다. 회원사 기반이 취약했고, 업계 내 이해관계 조정이 원활하지 못했으며, 정부 정책과 연계되지 못해 독립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초기 재정 기반이 부족했고, 공공성과 민간성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현장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 점도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수산물이력제 초기에 수행기관으로 해수부 위탁업무를 대행했지만, 이 업무가 한국수산회로 넘어간 뒤 별다른 재정사업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가 지속됐던 것.
해수부, 수산물 유통개혁 시도
해수부는 인위적으로 유통 단계를 축소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민간 유통 채널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지원과 제도 정비를 통해 시장을 선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회는 정부 정책을 실행하는 전문 파트너이자, 민간 혁신을 제도권에 끌어들여 제도화하는 플랫폼으로 구상된다.
결국 수산식품유통협회 설립은 정부와 민간, 그리고 도매시장 법인과 수협까지 다양한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수산회가 전환 모체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전국 도매시장 법인의 참여와 수협의 협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표성과 신뢰 확보가 어렵다. 과거 한국수산물유통가공협회가 실패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이번에는 제도적 근거와 재정적 기반, 그리고 업계 전반의 합의를 토대로 하는 진정한 거버넌스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수산회도 유통·수출 전문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정영훈 한국수산회장은 “한국수산회를 유통·수출 전문기관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사회를 거쳐야 하고 총회도 거쳐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