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필자가 연구원으로 재직했던 일본 해양정책연구소는 1980년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냉전 해소의 기미가 보이던 시기에 북극항로의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해 2008년에 마무리했다. 연구 결과는 지구 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북극항로 활용이 가능하므로 해빙 정보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환경오염 최소화와 원주민 생활을 고려한 자원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극항로는 러시아 국방의 최전선으로 상업적 이용이 제한되므로 국제적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일본이 추가적인 연구를 중단한 이유에는 즉각적인 상업항해 이용 가능성이 낮고 러시아의 전쟁 불안, 그리고 러시아의 지나친 대가 요구 등이 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정부는 북극항로 개척을 국정과제로 삼고 부산항을 글로벌 허브로 육성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연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지구 온난화로 항로 이용 가능성이 늘어난다 해도 쇄빙선 의존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여전히 큰 제약이다.
2050년에도 북극은 혹독한 겨울이 6개월 이상 지속될 것이며, 바닷물은 영하 2도에서 얼기 시작한다. 따라서 북극항로가 연중 안전한 상업항로가 될 수 있는지, 비용 경쟁력이 있는지, 실제로 운송할 화물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실제로 해빙 면적은 2020년 355만㎢로 2012년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고, 2030년경에는 300만㎢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이로 인해 북극항로는 수에즈·파나마운하를 대체할 신항로로 주목받고 있으며, 러시아는 이를 적극 추진 중이다. 그러나 높은 건조비와 보험료, 특수 도선사 승선, 쇄빙선 선도 의무 등은 항로의 비용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항행 속도 저하 역시 거리 단축 효과를 상쇄한다.
따라서 북극항로가 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최단항로라 하더라도 부산항이 관문항 지위를 선점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용 가능한 화물은 한정적이며,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항로 활용을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북극항로와 자원개발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원유 수입의 90%를 중동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북극의 천연자원은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조선업계는 북극권 LNG 프로젝트와 쇄빙 LNG선 건조 경험을 축적했다.
결국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항로 자체보다는 자원개발 가능성이다. 러시아의 LNG 기지 건설로 북극항로 물동량은 2010년 대비 10배 이상 증가했으며, 중국 역시 북극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향후 북극항로 상업화는 기상 조건과 LNG 가격에 좌우될 것이다.
우리 역시 해빙 관측 역량을 강화하고 조선업 경쟁력을 활용하며, 국제규범이 작동할 수 있도록 외교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다만 북극항로가 연중 이용 가능해지는 상황은 곧 해수면 상승이라는 인류적 재앙을 동반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