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최근 새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북극항로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북극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해상 루트로, 기존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항로보다 항해 거리가 약 40% 단축되어 물류비 절감 효과가 크다. 그러나 실제 상업화는 여전히 기후 조건, 국제 규범, 안전성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제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북극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 협의체인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는 미국·러시아·캐나다·북유럽 5개국 등 북극권 8개국이 정회원이며, 한국을 포함한 13개국이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다.
북극이사회는 군사·안보보다는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개발, 원주민 권익 보장을 핵심 의제로 다루며, 북극항로와 기후변화, 해상 안전 협력을 논의한다. 한국도 2013년 옵서버로 가입해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활용한 연구에 참여해 왔다. 이는 향후 북극항로 시범사업 추진의 국제적 정당성과 협력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런데 북극항로를 물류·무역에 한정하지 말고 관광과 문화 교류의 시범사업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북극해 탐험 크루즈는 미주나 유럽 출발이 대부분이라 비용과 시간 부담이 컸다. 그러나 부산항 또는 포항·속초항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 사할린, 캄차카, 북해도 등을 연결하는 북극해 크루즈 투어를 한다면 접근성이 크게 높아지고, 극동 러시아와 북일본의 자연·문화 체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이를 북극 특유의 툰드라 기후, 활화산 지형, 야생동물 서식지와 더불어 베링해 크루즈, 북해도의 온천 관광을 결합하면 차별화된 관광 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지역의 항로는 여름철(6~9월)에는 해빙이 소멸되어 일반 크루즈선도 운항이 가능하며, 겨울철에는 아이스클래스 선박이나 쇄빙선 보조가 있으면 가능하다.
러시아 연해주 관광국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한 팬더믹 기간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대러시아 경제제재 조치로 크루즈 운항 중단 조치가 있기 전까지 블라디보스토크와 캄차카의 주도인 페트로파블롭스크에는 연간 10여 차례 이상 탐험·중대형 크루즈선이 기항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북극항로를 물류에서 관광으로 확대하면 부산은 동북아 해양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 동시에 한국 해양관광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러시아 극동 및 일본 북부와의 인적·문화적 교류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부가 항로 안전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민간이 크루즈 관광상품 개발과 홍보를 담당한다면 시범사업은 안정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이는 물류 상업화 이전에 안전성과 경제성을 검증하는 유효한 수단이자 대한민국 해양 전략을 실현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
결국 북극항로는 단순한 항해 경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미래 해양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이자 관광·외교·물류를 아우르는 복합 모델이다. 그 첫걸음을 북극해 크루즈 시범사업으로 열어가는 것이 대한민국 북극항로 정책을 현실화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