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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바다를 위한 에세이 15. 식어가는 여름밤의 열기, 해수욕장을 다시 위대하게

  • 기사입력 2025.09.17 11:50
  • 기자명 채동렬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현대해양] 지구온난화로 인해 여름의 기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해안의 어촌 마을은 점점 더 식어간다. 열대야로 인해 공기만 뜨거울 뿐, 사람들의 발길이 매년 줄어들어 어촌 경제는 활기를 잃고 있다. 그나마 국내 해안을 찾는 관광객들의 대부분은 물놀이에서부터 먹고 즐기기까지 각종 편의시설이 완비된 대형 리조트와 호텔에 머물고 있어서 해수욕장 주변이 예전처럼 북적이지는 않는다.

한때 여름 해수욕장은 국민적 여가의 상징이자 어촌 경제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피서철이면 발 디딜 틈 없던 모래사장은 한산해지고,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성행하던 상업활동들이 점차 사라져 간다. 젊은 기운으로 가득하던 한여름 밤의 들뜬 분위기와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기타치며 노래부르던 낭만적인 여름휴가를 추억하고 그리움을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해변과 모래사장이라는 자연자원을 우리 모두 행복하게 누리기 위한 방안을, 어떻게 하면 해수욕장을 다시 뜨겁게 달궈서 어촌지역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려 한다.

교통 접근성의 역설과 구조적 한계

과거에는 도로망이 지금처럼 잘 갖추어지지 않았고, 자가용도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차나 시외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해수욕장을 찾았다. 그 시절의 해수욕장은 힘들게 찾아가야 하는 먼 여행지였지만, 동시에 단란한 가족의 여름 휴가지였고 불타는 청춘들이 여름에 반드시 즐겨야 할 필수 코스였다. 가난하던 시절에 선택지가 제한된 휴가철이었기에 전국의 해수욕장은 교통의 불편함과 바가지요금에 불친절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호황은 해수욕장 스스로의 경쟁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시설을 현대화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지역은 큰 노력 없이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그 결과 다수의 해수욕장은 체계적인 관리나 혁신적인 기획을 통해 경쟁력을 축적하지 못했고, 오히려 ‘현상 유지’에 머무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전국 주요 해수욕장이 고속도로와 연결되고, 자동차를 보유한 사람도 대다수에 이르지만 오히려 방문객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는 교통접근성의 향상이 해수욕장만의 이점으로 작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워터파크, 리조트, 해외여행 등 수많은 대체 관광지가 동일한 혜택을 누리면서 해수욕장은 더 이상 ‘멀더라도 꼭 가야 하는 곳’이 아닌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의 선택’으로 전락했다. 결국 노력 없이 얻은 과거의 호황은 혁신을 촉발하지 못했고, 오늘날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원인이 된 것이다. 해수욕장의 침체는 단순히 해변관광업체의 문제에 그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어촌 지역이 발전과 도약의 기회를 만들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과거의 해수욕장은 단순한 피서지가 아니라 역동적인 여름 휴가의 상징이었지만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는 SNS에 기록할 만한 특별한 경험이 더 중요하다. 캠핑·글램핑, 해외여행, 테마파크 등 다양한 여가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실내 물놀이시설의 엄청난 발전은 해수욕장을 상대적으로 매력 없는 선택지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해안 지역 주민들이 기대하던 ‘한 철 장사’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코로나19 팬데믹은 단순한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공공장소 이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남겼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해수욕장은 방역 불안에 노출되었고, 이후에도 ‘밀집 공간 기피’라는 심리가 일부 지속되었다. 이는 해수욕장이 지닌 공간적 특성에 기인한 취약점으로, 안전과 위생을 강조하는 새로운 수요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해수욕장의 침체는 곧바로 어촌지역의 침체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수요자 행동의 변화는 지역의 균형발전에도 큰 걸림돌이 되었다.

워터파크와 리조트는 주차, 숙박, 식음료, 안전관리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많은 해수욕장은 여전히 편의시설이 낙후되어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오늘날 소비자는 불편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시설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 기대 수준과 지역 서비스 체계의 괴리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지금 이 순간부터 변화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러한 차이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대표적인 해변휴양지로 성장한 포르투갈 알가르브 지역이 주는 교훈

전 세계의 해수욕장은 근대화와 산업발전의 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소비하는 가운데 형성되었으며, 해변은 단순한 피서지가 아니라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포르투갈 남부의 알가르브(Algarve) 지역이다. 알가르브는 파루(Faro)를 중심도시로 한 포르투갈 남부 해안지역을 가리키는 집합적 지명인 동시에, 공식적으로는 16개 기초자치단체(Concelho)로 구성된 행정지역(NUTS II 단위, 우리나라의 광역자치단체와 같은 개념의 행정집합체)이다.

포르투갈 남부의 알가르브(Algarve)
포르투갈 남부의 알가르브(Algarve)

포르투갈은 한반도의 70% 크기, 인구 1천만 명 규모의 작은 나라지만 대항해시대의 주역으로 수산업이 발달한 전형적인 해양국가다1). 알가르브는 정어리·고등어·멸치를 생산하는 전통적인 수산업의 중심지로 오랫동안 수산업과 정어리 통조림 산업이 지역경제를 떠받쳤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어족 자원이 고갈되면서 알가르브 어촌은 빠르게 침체했다. 이 지역을 지금처럼 부유한 곳으로 전환시킨 것은 적극적인 해변휴양지 개발 정책이었다. 1960~70년대에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의 국민들이 물가가 저렴한 해외의 휴양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포르투갈 정부는 알가르브를 국가 관광 거점으로 지정하고 파로(Faro) 국제공항을 확충했으며, 공항과 주요 해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망을 구축했다. 이후 대규모 리조트와 골프장, 마리나 시설에 민간투자가 이어지면서 알가르브는 사계절 관광이 가능한 리조트형 해변휴양지로 발전했다. 200km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수십 개의 해수욕장이 조성되었고, 언론과 여행업계에서는 알가르브를 ‘유럽의 바캉스 수도’라 부르며 집중적으로 마케팅했다. 1960년대에 유럽을 대표하는 해변 휴양지는 프랑스의 코트 다쥐르,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안, 스페인 코스타 델 솔 등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에 알가르브가 새롭게 주목받으며 유럽인의 대표적 여름 휴양지로 부상했다.

알가르브 지역의 성공은 단순히 아름다운 해변에만 기댄 결과가 아니었다. 이 지역은 연중 300일 이상 맑은 날씨와 기암절벽·해식동굴이 형성하는 경관으로 세계적인 명성이 있었다. 그러나 ‘프라이아 다 마리냐(Praia da Marinha)’라는 지역의 해수욕장을 ‘세계 10대 해변’으로 각인시키고 알가르브 지역을 유럽의 대표적인 해변휴양지로 발전시킨 것은 변화하는 수요자의 요구에 맞추어 관광지로서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킨 노력의 결과였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러한 성공이 단순히 아름다운 해변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지역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원인을 간략하게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다른 지역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관광상품을 다양하게 공급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관광지로 개발되는 초기에 알가르브는 해수욕과 골프 중심의 휴양지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더 경쟁력있는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서 관광상품의 다변화를 시도한 것이 큰 효과가 있었다.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라고스(Lagos)와 실베스(Silves)의 성곽 같은 역사문화유산, 와인과 수산물을 중심으로 한 미식 관광, 어촌 마을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했다. 또한 ‘로타 비센티나(Rota Vicentina)’라는 포르투갈 특유의 친환경적이고 체험적인 하이킹 코스가 주목을 받으면서, 알가르브는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여행지로 발전했다.

둘째, 알가르브의 또 다른 강점은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관광친화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문화적 분위기이다. 휴가를 보내기 위해 알가르브를 방문한 은퇴자들이 이 지역의 포용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어 대거 정착하면서 다문화적 사회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이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꾸준히 방문하면서 관광 수요가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현지 주민들 또한 관광업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이방인을 환대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안정된 사회 환경과 개방적인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관광객들이 머물고 싶은 곳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지역의 마케팅 전략이다. 알가르브는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주요 시장을 정조준해 집중적인 홍보를 펼쳤다. 그 결과 ‘Europe’s Leading Beach Destination’이라는 국제 관광상을 거듭 수상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였고, 영화·TV·SNS를 통한 이미지 확산에도 성공했다. 여기에 저가항공(LCC)을 활용한 접근성 강화까지 맞물리면서, 알가르브는 전 세계인이 찾는 휴양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의 해수욕장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알가르브의 성공사례를 참고하되 무조건적으로 따라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알가르브는 지중해성 기후와 유럽 관광시장의 특수한 조건 속에서 성장했지만, 우리의 해수욕장은 전혀 다른 환경과 맥락에 놓여 있다. 따라서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우리 해수욕장이 지닌 고유한 장점과 우리가 처한 현실을 토대로 새로운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많은 부분은 관광산업분야의 전문가들이 검토해야 할 내용이겠지만 어촌경제를 연구한 필자는 “해수욕장을 단순한 물놀이 공간에서 벗어나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복합 관광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촌의 생활문화, 수산물과 음식, 지역 축제와 고유의 문화예술을 해변 관광과 결합한다면, 해수욕장은 단순히 ‘바다에 몸 담그는 공간’을 넘어 지역 정체성을 체험하는 장場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식어가는 한여름밤의 해변이 다시 뜨겁게 달구어질 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1) 포르투갈 국민들은 수산물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수산업은 매우 중요한 지역산업이다. 정어리는 국민 음식으로, 리스본의 여름 축제에서는 지금도 ‘구운 정어리(sardinha assada)’가 빠지지 않는다. 멸치 역시 한국처럼 말린 후에 육수를 우리는 요리에 쓰이는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문화적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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