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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 왕국 완도, 감축 없이는 미래도 없다

생산 급증·소비 부진에 가격 하락 지속…
정부·지자체·어업인 모두 “구조 전환 필요”

  • 기사입력 2025.09.09 08:52
  • 최종수정 2025.09.09 10:04
  • 기자명 나준수 기자

[현대해양] 8월 전복 출하량은 2,300톤으로 전망됐다. 전국 생산량의 70%를 책임지는 완도에서조차 가격은 1kg당 2만 원 선에 머물며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산은 늘고 소비는 줄어드는 불균형 속에서 어업인들은 “더 키울수록 손해”라며 한숨을 내쉰다. 이에 완도군은 전복 산업 안정화를 위해 노화·보길을 시작으로 가두리 감축사업을 본격화해 4,000여 칸 철거에 나섰다. 하지만 단순한 감축만으로는 위기를 막기 어렵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대해양>은 완도의 주요 전복 산지 노화도를 찾아, 양식어업인·행정·협회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생산은 늘고, 가격은 떨어지고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8월 전복 수산관측’에 따르면, 지난 7월 전복 출하량은 2,719톤으로 집계됐다. 이는 6월보다 20.9% 늘어난 것이자, 전년 동월 대비 21% 증가한 규모다. 여름철 고수온기에 피해를 줄이려는 조기 출하와 보양식 수요가 맞물리면서 공급량이 크게 늘어난 결과다. 그러나 출하량 증가가 곧바로 어업인 소득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산지가격은 오히려 내려갔다. 지난 7월 활전복 산지가격은 kg당 20,406원으로 전월 대비 소폭 하락했으며, 8월 전망치 역시 2만 원 선에 머물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여전히 7% 가까이 낮은 수준이다. 가격 하락은 계절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보양식 수요가 집중되는 복날과 말복을 지나면 소비가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출하 가능한 양식 물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완도의 상황은 더 뚜렷하다. 완도는 지난해 1만6,341톤의 전복을 출하하며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했다.

‘전복의 고향’이라 불릴 만큼 전국 공급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지만, 그만큼 가격 하락의 직격탄도 고스란히 맞고 있다. 양식 기술 발달과 어린 전복인 치패(稚貝)의 개량으로 폐사율은 줄고 성장 속도는 빨라졌다. 과거보다 출하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물량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결국 문제는 ‘많이 키워도 남는 게 없다’는 역설적 구조다. 어업인들이 전복을 더 길러도 가격이 받쳐주지 못하는 탓에, 추가 생산이 오히려 손해로 돌아오는 상황이다. 수요는 정체된 반면 공급은 꾸준히 늘어나는 불균형 속에서, 산지 가격은 몇 년째 회복되지 못하고 하락 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완도의 전복 산업이 직면한 ‘생산의 덫’은 이제 구조적인 위기로 번지고 있다.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전복 해상양식장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전복 해상양식장
치패를 들고 설명중인 김광근 ㈔완도군전복협회 회장
치패를 들고 설명중인 김광근 ㈔완도군전복협회 회장

더 키울수록 손해… 어업인들의 목소리

완도의 어업인들은 공통적으로 “남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말부터 꺼낸다. 양식장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해마다 치솟고 있는데, 시장에 내다 판 가격은 갈수록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료와 인건비, 사료값은 모두 상승세를 이어왔고, 특히 사료비는 몇 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김광근 ㈔완도군전복협회장은 “2톤을 팔아도 3,000만 원 남짓인데, 운영비만 매달 천만 원이 나간다”며 “폐사는 줄었지만 생산량이 늘면서 가격이 떨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생산성이 높아진 것이 오히려 어업인들의 수익을 잠식하는 모순을 낳았다는 점이다. 교잡 전복 종자의 보급으로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양식 기술이 개선되면서 과거보다 짧은 기간 안에 더 많은 물량을 출하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소비가 그만큼 늘지 않자 가격은 끝없이 밀려 내려갔다. 어업인들의 표현처럼 ‘많이 키울수록 손해’가 되는 역설적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유통 구조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덤’이다. 도매시장에서는 일정 물량을 얹어주는 방식이 거래 관행으로 자리 잡아 왔다. 거래를 원활히 하고 신뢰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기능해온 것이다. 그러나 생산비가 급등하고 가격이 하락하는 지금은, 같은 덤이라도 어업인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한 어업인은 “이전에는 덤을 주더라도 남는 게 있었지만, 지금은 얹어주는 양이 그대로 손실로 이어진다”고 털어놨다.

현장에서 들려온 목소리들은 결국 같은 결론으로 모였다. “과거에는 바다만 바라봐도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팔아도 남는 게 없다.” 생산비 증가, 가격 하락, 유통 관행의 무게가 겹치면서, 완도의 전복 산업은 더 이상 어업인들에게 안정된 생계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감축인가, 어떻게 시행되나

완도의 전복 산업은 이제 ‘감축’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과거에는 전복이 천천히 자라고 도태되는 양이 많아 시장이 자연스럽게 조절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교잡 전복 종자의 보급으로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먹이 공급과 사육 밀도 조절 같은 양식 기술이 발달하면서 폐사율은 눈에 띄게 줄었다. 어업인들의 입장에서는 더 많이, 더 빨리 출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급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 소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완도군 자료에 따르면, 가두리 시설량은 2013년 66만5,000칸에서 2019년 100만 칸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107만 칸에 이르렀다 . 생산량 역시 같은 기간 9,298톤에서 2만3,000톤 이상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 그 결과 가격은 가파르게 떨어졌다. 2018년 10미 기준 전복 가격이 kg당 3만 원대였던 것이, 2024년에는 2만3,000원으로 23%나 하락했다 .

방현수 완도군 수산경영과장은 “전국적으로 약 100만 칸의 전복 가두리가 있는데, 이 가운데 77만 칸이 완도에 집중돼 있습니다.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최소 20만 칸을 줄여야 한다”며 “단순한 시설 철거만으로는 부족하고, 입식량 조절과 소비 촉진을 병행해야 산업이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완도군은 이를 위해 ‘전복 가두리 감축사업’이라는 대규모 정책안을 마련했다. 사업기간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 사업 규모는 총 468억 원이다. 이 중 80%에 해당하는 374억 원을 국비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도비와 군비가 분담한다. 사업 내용에는 단순 시설 철거뿐 아니라 폐업 가두리 보상, 철거·해체비, 폐기물 처리까지 포함돼 있다 .

감축사업의 필요성은 군청 건의안에도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양식 기술 발달과 교잡 전복 종자의 보급, 소비자들의 작은 전복 선호로 출하 기간이 짧아지면서 생산량은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가격 하락으로 어업인 경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따라서 감축은 단순히 어장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산업 자체의 위축을 막기 위한 ‘구조 전환’ 차원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현장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고래현 노화읍 전복협회 부회장은 “나이 든 어업인들이나 노후 시설을 가진 집은 버티기 힘들어 감축에 참여했다”며 “이제는 살기 위한 선택이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어업인은 “삶의 기반을 내놓는 고통이지만, 줄이지 않으면 다 같이 무너진다”고 털어놨다.

젊은 어업인이나 부양가족이 많은 집은 당장은 감축에 나서기 어렵지만, 그들 역시 ‘생산만 늘려서는 길이 없다’는 점에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감축은 어업인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생존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내세우는 보상과 지원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전복 산업의 내일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의 감축 논의는 어촌의 기반을 단순히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전복 출하 작업
전복 출하 작업

소비 촉진과 구조 전환의 과제

감축만으로는 전복 산업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공급을 줄이는 동시에 소비를 넓히지 않으면 가격 안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완도군은 이를 위해 대형마트, 홈쇼핑과 연계한 판촉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전복 선물세트를 기획하거나, 소비자 접근성이 높은 온라인몰과 협업하는 방식이다.

방현수 과장은 “감축은 산업 구조를 안정화하는 과정이고, 동시에 소비 저변 확대가 뒤따라야 효과가 유지된다”며 “전복을 제수용이나 보양식에만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소비 다변화를 위한 시도는 이미 시작됐다. 손질 전복, 전복죽·전복장, 냉동 전복살 등 가정간편식(HMR) 제품이 일부 유통망에서 판매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조리 편의성이 높아져야 전복을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요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한 어업인은 “줄이는 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전복이 많이 팔려야 우리도 살 수 있다”며 “손질하고 소포장해서 팔면 생각보다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전복 가두리 감축사업을 설명하고 있는 방현수 완도군 수산경영과장
전복 가두리 감축사업을 설명하고 있는 방현수 완도군 수산경영과장

문철인 완도소안수협 조합장도 소비 기반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가격을 올릴 수 없다. 현재 가격에서라도 빨리 소비시켜야 한다”며 “전복은 유럽·미국 등에서는 거의 소비되지 않아, 결국 국내 소비를 늘리려면 학교 급식이나 군납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변화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지난 8월 양식관측보고서에서 “전복 산업은 생산·유통 구조가 활전복 중심으로 고착돼 있어, 가공품·간편식 시장 확대가 병행되지 않으면 가격 변동성이 반복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판촉 행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가공·수출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출 역시 중요한 돌파구다. 완도 전복은 이미 중국, 미국, 동남아 시장에 일부 진출해 있지만, 물량과 품목이 제한적이다. 방현수 과장은 “가두리 감축으로 생산을 조절하면서도, 수출 전용 가공라인을 확보해 새로운 시장을 열어야 한다. 그래야 전복 산업이 안정적으로 재편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완도의 전복 산업을 되살릴 길은 두 갈래다. 공급을 줄여 시장의 균형을 맞추는 일, 그리고 소비를 확대해 전복을 일상 수산물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일. 어업인들의 체감과 행정의 대책, 전문가들의 분석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완도 전복이 다시 도약할 수 있을지, 지금의 구조 전환이 그 분기점이 되고 있다

양식장을 설명 중인 고래현 노화읍 전복협회 부회장
양식장을 설명 중인 고래현 노화읍 전복협회 부회장

전복의 고향, 내일을 선택하다

노화도의 바다는 한여름 뙤약볕에도 고요했다. 항구에 늘어섰던 전복 가두리 중 일부는 이미 철거돼 빈 바다 위에 점처럼 흔적만 남아 있었다. 철거를 면한 가두리에서도 전복을 돌보는 어업인의 표정은 무겁기만 했다. ‘더 키울수록 손해’라는 말이 현실이 된 자리에서, 감축은 산업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자, 동시에 삶의 기반을 내놓는 고통이었다.

고래현 노화읍 전복협회 부회장은 “감축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는 버틸 수 없으니 하는 것”이라며 씁쓸히 웃었다. 한 어업인도 “줄이지 않으면 다 같이 무너진다”는 말로 심정을 대신했다. 그들의 말 속에는 위기에 내몰린 어촌의 내일에 대한 불안이 묻어 있었다.

행정은 감축과 소비 촉진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계와 전문가들은 구조 전환 없이는 위기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가장 절실한 목소리는 현장에서 나온다. 어업인들은 여전히 바다를 지켜내려 애쓰지만, 그 바다는 더 이상 과거처럼 풍요만을 약속하지 않는다. 결국 완도의 전복 산업이 다시 설 수 있을지는, 감축이라는 고통스러운 선택과 소비 확대라는 새로운 시도가 함께 결실을 맺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철거된 가두리는 어업인들이 감당한 희생의 증거이자, 동시에 우리 어촌의 내일을 향한 물음표였다.

완도군 전복 가두리 감축 사업
완도군 전복 가두리 감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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