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세계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격랑 속에 놓여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 강화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시대 앞에서 재생에너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 풍력발전, 특히 해상풍력발전은 가장 유망한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다라는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고, 대규모 전력 생산이 가능한 만큼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와 세계풍력협의회(GWEC)에 따르면, 2024년 세계 풍력시장은 한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 117GW의 신규 풍력 설비가 설치되며 누적 용량은 1136GW에 달했다. 전년도보다 크게 늘어난 이 수치는 풍력이 이미 세계 에너지 시장의 주류로 편입되었음을 보여준다. 그중 육상풍력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해상풍력도 8GW가 추가되며 누적 78.5GW로 성장했다.
GWEC는 향후 10년간 해상풍력이 441GW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중국은 2024년 단일 국가로서만 79GW를 새로 설치하며 독보적 위상을 구축했고, 유럽과 미국, 아시아 태평양 신흥국들도 적극적으로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숫자의 화려함만큼이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풍력산업은 공급망 병목, 원자재 가격 상승,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기조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대형 터빈 블레이드, 해저케이블 등 핵심 부품은 특정 기업·국가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고, 희토류와 영구자석 등 전략 자원은 여전히 중국 의존도가 높다.
여기에 금리 상승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신규 투자를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2023년에서 2024년 사이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평균 비용은 20% 이상 증가했다.
걸음마 단계 한국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2023년 말 기준 국내 누적 풍력설비는 1.97GW로, 이 중 해상풍력은 158MW, 전체의 8%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2030년까지 해상풍력 12GW 보급 목표를 내걸었지만,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달성이 쉽지 않다. 두산에너빌리티와 유니슨이 8MW급 터빈을 상용화하고 10MW급 개발에 도전하고 있으나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는 여전히 기술 격차가 크다. 항만, 설치선, 인증 체계 등 기반 인프라도 부족하다.
그러나 기술·인프라 부족만큼이나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주민 수용성이다. 해상풍력 단지는 대규모 공간을 차지하며, 기존 어업 활동과 직접 충돌할 수 있다. 어민들은 어장 축소, 어획량 감소, 생계 위협을 우려한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서 인허가받았어도 주민 반발에 부딪혀 좌초된 사업이 적지 않다.
주민수용성은 단순히 ‘찬성·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학적으로는 수용성은 ‘정책이나 사업이 주민에게 받아들여지는 정도’를 의미하며, 갈등을 푸는 열쇠는 정보 접근성·공정한 절차·실질적 참여·경제적 보상이 엮여 있다. 주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거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됬다고 느낄 때 갈등은 심화한다.
주민들은 금전 보상만큼이나 절차적 공정성과 참여 기회를 중시한다. 초기 입지 선정 과정에서 의견이 배제됬다는 느낌을 받으면, 이후 보상이 아무리 커져도 신뢰를 회복되기 어렵다.
또 주민들은 단기 보상보다 장기 이익 공유 구조를 선호한다. 발전소 수익 일부가 지속적으로 지역사회에 환원되거나, 주민이 발전 지분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때 수용성이 높아진다.
논문 중 ‘해상풍력발전단지 수용성에 관한 연구 - 해상풍력발전에 대한 인식 조사결과를 중심으로(부경대학교(2022))’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피해보상 산정 방식과 관련해 국민들은 연령·지역·교육·소득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3자 전문기관을 선정해 평가하는 방식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이는 수용성 해법을 위한 논의가 ‘공정함’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뜻한다. 주민이 얼마나 충분히 정보를 제공받고, 얼마나 공정하게 절차에 참여했으며,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제도를 경험했느냐가 핵심이다. 즉, 정보 접근성, 공정한 절차, 실질적 참여 보장이 주민수용성의 세 가지 축이다. 아무리 많은 금전적 보상을 제시하더라도, 절차가 불투명하거나 주민이 배제됬다는 인식이 있으면 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반대로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공정한 절차와 참여 경험이 확보되면 주민들의 수용성은 높아진다.
덴마크는 주민이 풍력발전 지분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여 ‘주민투자제’를 운영한다. 주민이 직접 투자자가 되어 수익을 공유하니 반대가 줄고,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높아졌다. 독일 역시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을 통해 주민들이 발전소의 공동 소유자가 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영국은 발전단지 내 어업 활동을 제한하지 않고, 일정 공간을 열어두어 어민의 생계와 공존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러한 해외 사례들은 주민수용성을 단순히 ‘보상’의 문제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참여와 공유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주민이 의사결정의 한 축이 되고, 발전소 수익이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에 환원될 때, 풍력산업은 지속 가능한 길을 걸을 수 있다.
한국도 일부 지역에서 주민참여형 REC 제도 등을 시범 운영하고 있으나, 아직 제도적 기반이 약하다. 김 교수 연구에 따르면 주민들은 단순 보상금보다 장기적 이익 공유 모델을 선호한다. 이는 풍력발전소가 오랫동안 지역사회와 공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2025년 공포된 ‘해상풍력 특별법(해풍법)’은 의미가 크다. 해풍법은 절차 상 민관협의회 설치 의무화 등을 통해 주민 의견을 반영할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현재 시행령을 마련하는 단계이다.
해풍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주민 참여는 입지 선정 초기 단계에서부터 보장돼야 한다. 단순 설명회 수준이 아니라, 입지 선정 과정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이익 공유가 투명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셋째, 정보 공개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 해상풍력의 환경적 영향, 어업 손실 추정, 경제적 편익 등을 주민이 손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협의체는 지역 어민과 주민이 실제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피해보상이 공정하게 집행될 때 비로소 제도 효력이 담보된다.


해상풍력 사업이 성공하려면
이 같이 해상풍력 사업이 성공하려면 사업 자체의 성공을 위한 금융의 뒷받침도 필수다.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초기 투자비가 막대하고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금융조달 없이는 추진이 어렵다. 보통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구조를 활용하는데, 이는 특정 프로젝트의 미래 수익성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우고, 개발사·금융기관·시공사·운영사·전력 구매자 등이 모두 참여한다. 문제는 한국의 금융시장이 여전히 해상풍력 같은 장기·대규모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해외의 경우 영국의 녹색투자은행(GIB), 캐나다 인프라은행(CIB), 미국의 청정에너지 대출 프로그램, 호주의 청정에너지금융공사(CEFC)는 모두 해상풍력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의 안정적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도 2024년 3월 금융위원회가 ‘기후위기 대응 금융지원 확대방안’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민간 기후금융 활성화를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재 조성된 펀드 규모는 여전히 미미하다. 수십조 원이 필요한 해상풍력 프로젝트 자금 조달에는 한참 못 미친다.
결국 한국이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축이 맞물려야 한다. 첫째, 공급망과 기술 강화다. 국산 부품 비중을 높이고, 부유식 해상풍력 같은 차세대 기술을 선점해야 한다. 둘째, 주민수용성 확보다. 정보 제공, 공정한 절차,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고, 수익공유제와 주민참여형 제도를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금융지원 확대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리스크를 분산하고, 공적 금융과 민간 자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녹색금융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해상풍력은 단순히 전기를 만드는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사회와 함께 가야 하는 사회적 산업이자, 금융·기술·정치가 어우러진 복합 프로젝트다. 바람은 이미 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바람을 어떻게 잡아내느냐이다. 정부와 기업, 금융권, 주민이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한다면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해상풍력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해상풍력은 단순한 에너지 전환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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