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해상풍력은 기후위기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에너지 전환의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해상풍력 발전단지 조성의 현실은 장밋빛 청사진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의 제도적 무관심과 방치 속에 사업자가 경제성만을 앞세워 어업인의 삶의 터전인 주요 조업 어장을 침범하고, 실제 조업에 나서는 어업인들은 정작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이로 인해 전국 곳곳의 바다에서는 어업인들의 거센 저항과 함께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유발되었다.
이러한 난개발과 갈등의 고리를 끊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얼마 전 공포된 ‘해상풍력 계획입지 및 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해상풍력 특별법)’이다.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이 법은 해상풍력 개발의 패러다임을 민간 주도에서 국가 중심으로 전환하고, 어업인과의 상생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사업자가 스스로의 경제성만 고려해 입지를 선점하고, 사후에 갈등을 수습하던 특별법 이전의 개별 법률에 따른 사업(이하 오픈도어(Open door) 방식의 시대는 끝나고, 국가가 책임지고 해양환경과 어업을 고려해 입지를 발굴하는 ‘계획입지’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특별법 제정까지의 진통: 어업인들의 외침과 투쟁
해상풍력 특별법의 탄생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법 제정 이전의 해상풍력 사업은 법이 없는 사실상 ‘무법지대’에 가까웠다. 사업자들은 “풍황만 계측하고 실제 사업 여부는 바람이 좋은지 봐야 알 수 있다”며 어업인들을 안심시키고는 전국 바닷가 곳곳에 수백 개가 넘는 풍황 계측기를 설치했고, 풍황 계측만 하면 공유지인 바다를 선점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경쟁적으로 주요 어장에 해상풍력 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해상풍력 단지 조성이 어업 활동에 미칠 영향은 고려되지 않았으며, 실질적 이해당사자인 어업인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소외됐다. 사업자가 사업 동의의 대가로 제시하는 여러 명목의 금품들은 어촌 사회의 갈등만 증폭시키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에 보다 못한 어업인들은 무분별한 해상풍력 추진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다. 53만 명이 넘는 국민이 일방적인 사업 추진에 반대하는 서명에 동참하며 어업인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수산업계는 △어업인 중심의 민관협의회 구성 △해양환경 및 수산자원 영향의 철저한 검증 △기존 민간사업 입지의 전면 재검토 등을 일관되게 요구했다.
이러한 절박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2021년 발의된 ‘풍력발전 보급 촉진 특별법안’은 풍력 보급 확대를 위한 인허가 간소화에만 초점을 맞췄으며, 결국 어업인들의 더 큰 반발을 샀다. 해당 법안은 부실한 환경성 검토, 어업인 의견 수렴 절차와 기존 사업에 대한 정리 방안 부재 등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어업인들의 끈질긴 투쟁과 국회에서의 지속적인 논의 끝에, 마침내 21대 국회 막바지에 이르러 수산업계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대안이 마련되었고, 22대 국회에서 본회의 통과라는 최종적인 결실을 보게 되었다.

무엇이 달라졌나: 해상풍력 특별법 핵심
해상풍력 특별법은 기존의 사업 추진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네 가지 핵심 장치를 담고 있다.
첫째, 국가 주도의 ‘계획입지’를 전면 도입했다. 기존에는 개별 사업자가 입지를 선정했지만, 내년 3월부터는 정부(산업부, 해수부)가 직접 어업 영향과 해양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입지를 발굴해 사업자를 선정하게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해상풍력 입지정보망’을 공동으로 구축·운영하고, 어업 영향이 적은 지역에 한해 예비지구를 지정하게 된다. 정부가 지정하는 계획입지 외의 신규 해상풍력 사업은 금지되며, 신규 풍황 계측기 설치 또한 법 공포 즉시 금지돼 난개발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둘째, 어업인 참여를 제도화한 ‘민관(民官)협의회’를 의무화했다. 과거 사업자와 일부 찬성 주민 중심으로 동의서 징구를 위해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던 협의 방식에서 벗어나, 수협 등 어업인 단체와 주민 대표, 송전선로 인근지역 주민 대표 등이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법정 민관협의회를 구성·운영하도록 명시했다.
이 협의회는 발전지구 지정, 이익공유 사업 구성, 수산업 활성화 방안 등 핵심적인 사안을 논의하고 사업자 입찰에 반영토록 하는 공식적인 소통창구 역할을 맡는다. 이는 해상풍력의 실질적 이해당사자가 어업인이며, 이해당사자 동의 없는 사업이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법제화된 결과다.
셋째, 해상풍력으로 영향을 받는 수산업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단순한 어업 손실 보상을 넘어 어업인들이 사업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금융 참여 및 투자 우대방안을 제도화했다. 배타적경제수역(EEZ)의 해상풍력 사업에 따른 공유수면 점·사용료를 기금으로 조성해 수산업 지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또한, 해수부 장관이 해상풍력 사업에 따른 영향을 고려해 수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넷째, 해양수산부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했다. 기존 오픈 도어(Open door) 방식에서는 역할이 제한적이었던 해수부가 입지 발굴, 예비지구 지정, 환경성 검토 등 사업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이는 해양공간 관리와 수산업의 주무 부처로서 해수부가 해상풍력 사업의 질서 있는 추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법은 시작일 뿐: 하위법령에 담겨야 할 것들
다만 이번 특별법 제정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법의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고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향후 마련될 시행령,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에 구체적인 내용들이 촘촘하게 담겨야 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계획입지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위법령을 통해 ‘어업 영향이 적은 입지’를 객관적으로 정의하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비지구를 도출하는 구체적인 기준과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이미 허가를 받았거나 추진 중인 기존 사업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특별법 체계로 편입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 수립이 시급하다.
적합하지 않은 입지에서 추진되던 기존 오픈 도어(Open door)사업들이 제대로 된 평가 없이 특별법 체계로 편입되어서는 안 되며, 정부의 정책 지원은 이러한 평가를 거쳐 특별법에 편입된 사업으로 한정돼야 특별법 제정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민관협의회의 대표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민관협의회가 실질적 이해당사자인 어업인들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는 기구가 되기 위해서는 참여 단체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명문화돼야 한다.
보상과 지원만을 노리고 급조된 단체가 참여해 의사결정 구조를 왜곡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민관협의회에 참여하는 지역 수협 및 주요 업종별 수협의 책임성을 담보하고 동시에 그 밖의 참여 단체의 대표성을 확인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운영될 민관협의회가 실질적 이해당사자인 어업인 의사를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민관협의회 세부 운영기준과 참여 어업인 지원방안도 반영돼야 할 것이다.
셋째, 수산업과 상생하는 구체적인 이익공유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법에 명시된 이익공유시 어업인 우대방안을 실체화할 표준 모델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해상풍력 사업으로 영향을 받는 어업인들의 집합체인 지역 수협이 금융기관으로 참여해 사업 수익을 어업인에게 환원할 수 있도록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수협금융을 활용한다면 국가나 사업자의 추가적인 재원 투입을 최소화하면서도 투자, 대출, 여유자금 운용 등 다양한 금융 참여를 통한 잉여금을 어업인에게 환원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어업활동 위축으로 경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역 수협의 경영 안정과 지역 수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상풍력 특별법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안착되기 위해서는 특별법 이전부터 발전사업 허가를 받아 진행하고 있는 104개 오픈 도어 사업 또한 해상풍력 특별법에서 추구하는 입지와 수용성 기준이 반영될 수 있도록 각 사업자의 노력과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해상풍력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전남 영광과 고흥, 충남 태안, 인천 그리고 경남 욕지 해역을 둘러싼 통영·사천·고성·남해·거제 등 전국 각지에서 특별법 이전 사업들로 인한 문제로 어촌사회는 심각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픈 도어 사업 특성상 정부나 지자체의 중재나 문제해결을 위한 여지는 매우 한정적이며 사업자는 오로지 인허가 취득과 사업 추진 외에 근본적인 갈등 해결에는 관심이 없다.
앞으로도 어업인과 주민 입장에서는 해상풍력 특별법 사업과 기존 오픈도어(Open door)사업은 ‘해상풍력 사업’으로만 바라보게 될 것이며, 그 결과 기존 오픈 도어 문제가 특별법 시행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이다.
해상풍력 특별법은 오랜 논의와 진통 끝에 마련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이제 우리 어촌사회에서도 무질서한 개발과 소모적인 대립의 시대를 끝내고, 계획적인 입지 발굴과 투명한 소통을 통해 청정에너지와 수산업이 공존하는 새로운 길로 나아갈 채비를 마쳤다. 특별법의 성공적인 안착은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더불어 사업자, 어업인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신뢰와 협력에 달려있다.
특히 해상풍력 특별법을 통해 발굴된 입지에서 1호 사업이 시작되기까지는 기존 오픈 도어 사업을 정부가 얼마나 잘 관리하고 특별법 수준의 수용성을 확보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각 이해관계자가 하위법령 마련 과정에서부터 긴밀히 소통하여 특별법의 취지를 온전히 살려나갈 때, 우리 바다는 비로소 갈등의 현장에서 상생과 번영의 터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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