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대한민국 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하늘길을 열고 있다. 경북 울릉도와 전남 흑산도에 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서해 최북단 백령도까지 공항 계획이 가시화되면서다. 외딴섬에 공항이 들어서면 뱃길에 의존하던 교통체계가 단숨에 항공 생활권으로 바뀐다. 반나절 넘게 걸리던 뱃길을 1시간 남짓한 비행길로 바꾸는 이 사업들은 섬 주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하지만 기대의 이면에는 깊은 그늘이 존재한다. 공항을 짓기 위해 국립공원의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국립공원 해제, 철새 충돌, 높은 결항률 우려가 맞물리며 환경·안전 논란은 한층 거세다. 수십 년 묵은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라는 명분과 미래 세대를 위한 생태 보전이라는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 공항은 단순한 지역 SOC(사회간접자본, Social Overhead Capital)가 아니다. 동해의 울릉은 독도와 인접한 영토 수호의 전진기지이고, 흑산은 서해 남단 해양영토 관리와 직결된다. 백령 또한 서해 NLL(북방한계선, Northern Limit Line) 최전선에서 군사·안보적 함의를 지닌다. 섬 공항을 둘러싼 논쟁은 곧 국토 전략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이 사업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한국 사회가 개발·보존·안보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선택할지 묻는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3色 섬 공항, 어디까지 왔나
울릉공항은 세 곳 가운데 가장 공정이 앞서 있다. 2020년 착공해 현재 공정률이 61%에 달하며,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총 사업비는 6,073억 원으로, 울릉도 서쪽 사동한 인근 해상에 1,200m 활주로를 갖춘 국내 최초 해상공항으로 조성된다. 본래 50인승 소형 항공기를 전제로 했으나, 항공사업법 개정으로 80석 항공기까지 운항 가능하도록 ‘3C 시계비행공항’으로 설계가 변경됐다.
시계비행(VFR, Visual Flight Rules)이란 조종사가 육안으로 활주로나 지형지물 등을 확인하며 이착륙을 확인하는 비행 방식으로, 기상 조건이 좋지 않을 때는 비행이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어 결항률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 이에 안개·강설이 잦은 울릉 기후 특성상 안전성과 결항률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활주로 이탈방지시스템(EMAS) 설치 등 안전 대책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흑산공항은 10년 넘게 표류하다 2023년 국립공원 해제를 계기로 다시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남 신안군 흑산도 해안과 산지를 절개·매립해 1,200m 활주로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80인승 소형 항공기 전용 공항을 목표로 한다. 당초 사업비는 1,800억 원대였으나, 환경 저감 대책과 설계 변경으로 현재는 6,000억 원 안팎으로 늘어난 상태다. 개항 목표는 2028년으로 제시됐지만, 조류충돌 위험, 잦은 안개, 활주로 길이 논란 등 안전 문제와 환경 훼손 논쟁이 겹쳐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특히,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구역을 해제하면서 조건부 승인이 이뤄진 만큼,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백령공항은 현재 기획재정부의 사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당초 2030년 개항을 목표로 논의됐으나, 사업비 급증과 수요 논란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활주로 길이 1,200m 규모로 민간 소형 항공기 운항을 전제로 하지만,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남다르다. 서해 최북단, NLL과 맞닿은 지리적 위치 떄문에 유사시 군사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국방부와 국토부의 협의, 환경 영향 검토 등 넘어야 할 절차가 많아 단기간 내 본궤도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기대와 우려의 교차…쟁점은?
섬 공항 건설을 향한 주민들의 열망은 단순한 ‘편의’ 수준을 넘어선다. 배가 한 달 중 열흘 넘게 묶이는 상황에서, 의료·생필품 수송마저 불안정하다. 주민들이 수십 년간 ‘하늘길’을 요구해온 배경에는 생존권에 가까운 이동권 문제가 자리한다.
노상래 와스코 대표(항공전문지 월간항공 발행인)는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울릉도는 1년 중 3분의 1은 배가 뜨지 못한다. 응급환자가 섬에 갇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공항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에서 반나절 걸리던 길이 1시간으로 줄면 관광객 수는 압도적으로 늘어난다. 울릉도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연 40만 명 이상, 많게는 80만 명까지 본다”며, 공항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수치로 짚었다. 그는 또 “독도와 맞닿은 울릉에 공항이 들어선다는 건 단순한 교통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와 주권 상징성까지 함께 얽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환경과 안전 문제를 ‘돌이킬 수 없는 위험’으로 본다. 흑산공항 부지는 국립공원 일부를 해제하면서 추진되고 있지만, 철새 도래지와 겹쳐 항공 안전성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류종성 서경대 교수는 “흑산공항은 국립공원 지역이 포함돼 있고, 철새 도래지와 겹친다”며 “환경 훼손뿐 아니라 항공 안전 문제까지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류 교수는 “철새 충돌 위험은 레이더로만 막을 수 없다. 해외에선 새 전문가를 상시 고용해 관리하지만, 소규모 공항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사업 타당성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했다.
또한, 류 교수는 책임의 주체도 짚었다. 류 교수는 “개발하는 쪽에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할 구체적 자료를 들고 설득해야 한다. 설득이 부족하다면 갈등은 풀리지 않는다”며 “충분한 데이터와 보완책 없이 서두를 경우 갈등이 정치적으로만 소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속가능한 균형점’ 찾기
각각의 공항은 서로 다른 단계에 서 있다. 울릉공항은 공정률이 60%를 넘겼지만, 흑산공항은 환경·안전 논란 속에 타당성 재검토가 이어지고 있고, 백령공항은 사전타당성 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완공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갈림길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단계는 달라도 공통된 질문은 같다. 교통권 확대와 환경·안전 보전 사이,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가.
노상래 와스코 대표는 안전을 위한 기술적 보완을 강조했다. “세 섬 모두 활주로가 1,200m라 대형기는 이착륙할 수 없다. 조종사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조건에서 비행해야 하니 계기비행 장치 같은 보완이 필수”라며 “섬 항로 특성상 (저가항공사들의) 출혈 운항이 불가피해 정부 지원이 뒤따라야 안전도 담보될 것”이라 조심스레 의견을 전했다.
류종성 서경대 교수는 환경 관리의 책임과 더불어 제도적 한계를 짚었다. 류 교수는 “울릉은 매립 대신 기둥 구조를 택해 환경 영향을 최소화했지만, 흑산·백령은 철새 충돌이 항공 안전과 직결된다”며 “환경 관리비용은 전체 공사비의 1~2%에 불과하다. 이런 작은 비용을 줄이다가 사업이 좌초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섬 공항은 대부분 지방정부가 정치적으로 먼저 추진하다가 안전·환경 문제가 불거지면 중앙정부가 뒷수습하는 구조”라며 “정부 차원에서 정리해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섬 공항의 성패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각 공항이 안고 있는 쟁점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우리 사회가 개발과 보존, 지방과 중앙의 역할 분담을 어디서 어떻게 조율할 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활주로에 비행기가 오르기 전까지, 판단은 국민의 몫으로 남아있다.-web-resources/image/9.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