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올여름은 장마와 폭염이 교차하며 유난히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졌다. 기후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상 기후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 특히 해수면 온도의 상승을 꼽는다.
실제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6차 보고서에서는 기후 변화를 일으킨 원인이 인류일 확률을 99%로 지목할 정도로,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가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극단적 기후 현상은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다는 단순히 기후 피해의 희생자가 아니라, 인류를 위한 강력한 완충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맹그로브 숲, 염습지, 잘피림 같은 연안 생태계는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퇴적물 속에 탄소를 장기간 저장하면서 지구의 탄소 순환을 안정시키는 ‘블루카본 생태계’로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염생식물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비식생 갯벌 또한 탄소 흡수원으로 공인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면 넓게 펼쳐진 갯벌에서 눈에 보이는 식물이 거의 없는데, 누가 탄소를 흡수하고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저서미세조류’다.
저서미세조류란?
저서미세조류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 수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닥에 사는 작은 조류(藻類)’인데, 실제로 이들은 갯벌과 해저 표면에 서식하는 크기 수십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단세포 광합성 생물이다. 규조류, 남세균류, 유글레나류 등이 저서미세조에 포함되며, 우리나라 갯벌에서는 규조류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저서미세조류는 물속을 떠다니는 식물플랑크톤과 달리 퇴적물 표면에서 기질에 붙거나 이동하며 살아간다. 늦겨울이나 초봄 갯벌 표면에서 진한 갈색 패치가 관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저서미세조류가 대량 증식한 흔적이다. 겉보기에는 미세한 얼룩처럼 보이지만 이는 탄소 고정과 먹이망 생산을 담당하는 중요한 생물 군집의 증거다. 이들이 색을 띠는 이유는 광합성 색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서미세조류는 식물과 마찬가지로 햇빛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대기와 수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유기물을 합성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기물은 저서생물과 어패류, 철새들의 먹이가 되며, 일부는 파도와 조류에 의해 떠올라 조하대로 이동하여 그곳 생물들의 먹이원이 되기도 한다.
만약 이 유기물이 먹히지 않고 퇴적물 속에 묻히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저장되어 블루카본을 형성한다. 결국 저서미세조류는 갯벌 생태계의 먹이망을 유지하고 탄소를 고정하며, 에너지와 원소 순환을 떠받치는 핵심 역할을 하는 존재다.
갯벌 탄소 흡수의 주역
우리나라의 갯벌 면적 중 염생식물이 서식하지 않는 비식생갯벌은 염습지보다 약 70배 넓다. 이 광대한 공간에서 저서미세조류는 끊임없이 광합성을 하며 탄소를 흡수하고 있다. 단위 면적당 흡수량은 염생식물보다 낮을지 몰라도, 넓은 면적을 고려하면 그 기여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저서미세조류의 생산 활동에는 제약이 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도 갯벌이 물에 잠겨 있으면 광합성을 할 수 없으므로, 간조 때에만 활동이 가능하다. 게다가 온도, 영양염 농도, 광량 등 다양한 환경 요인에 의해 생산성이 좌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온도가 일정 수준까지 상승하면 생산성은 오히려 지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기후 변화 속에서 이들의 기능이 단순히 감소하지 않고 지역·환경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차 생산량 높은 K-갯벌 저서미세조류
흥미로운 사실은 전 세계 보고치와 비교했을 때 한국 갯벌의 저서미세조류는 생물량이 평균적으로 낮은 반면, 일차 생산량은 3~4배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아직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조차(潮差)가 크고 퇴적물 특성이 독특한 한국 갯벌의 환경이 이 같은 생산성을 이끌어낸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한국 갯벌이 국제적으로 저서미세조류 연구의 중요한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저서미세조류는 염습지나 맹그로브 숲과 같이 식생이 발달한 지역에서도 의외의 역할을 한다. 갈대밭이나 맹그로브 숲처럼 빛이 차단되는 환경에서도 일정한 광합성 활동이 이루어지며, 오히려 인접한 비식생갯벌보다 높은 생물량이 보고된 사례도 있다. 이는 저서미세조류가 단순히 ‘식물이 없는 갯벌의 보완재’가 아니라, 식생지와 비식생지 모두에서 먹이망을 유지하고 영양염 순환을 조절하며, 생태계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기후 위기 속 저서미세조류의 의미
우리나라에서 저서미세조류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지는 약 40년 남짓이다. 상대적으로 연구 역사가 짧은 탓에 여전히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저서미세조류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여전히 “맨 갯벌에는 일차 생산자가 없다”는 오해가 존재하지만, 연구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중요성은 더욱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저서미세조류는 단순히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생산한 유기물은 저서생물에서 철새에 이르는 다양한 생물 군집을 지탱하며, 퇴적물의 안정성과 회복력을 높이고, 갯벌이 외부 교란에 대응할 수 있는 생태적 회복탄력성을 강화한다.
빠질 수 없는 퍼즐 조각
다시 말해, 저서미세조류는 갯벌 생태계가 스스로를 유지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영양을 공급하는 원천이다.
특히 기후 위기가 심화되는 시대에, 저서미세조류의 존재는 국제적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탄소 저장량이 뛰어난 맹그로브나 잘피림에 비해 그동안 저평가되었지만, 광대한 면적과 높은 생산성을 고려할 때 저서미세조류는 블루카본 전략에서 빠질 수 없는 퍼즐 조각이다.
따라서 이들의 역할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보전·관리 전략에 반영하는 것은 향후 기후 정책에서 반드시 필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