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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의 새이야기 96. 을사년 여름, 몽골-알타이 지역을 탐험·탐조하다

  • 기사입력 2025.08.20 07:29
  • 기자명 淸峰 송영한
새끼를 데리고 칼어스 호수에서 먹이 활동 중 한쌍의 회색기러기
새끼를 데리고 칼어스 호수에서 먹이 활동 중 한쌍의 회색기러기

[현대해양] 한반도의 논과 밭에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해지는 초여름, 우리는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몽골 서북쪽의 몽골-알타이산맥으로 떠났다. 알타이산맥은 고비 사막에서 서 시베리아 평원까지 약 2,000km에 걸쳐 뻗어 있다. 이 산의 이름, ‘알타이’는 터키-몽골어로 ‘황금으로 이루어진’이라는 뜻의 ‘알탄(Altan)’에서 유래했다. 알타이산맥에는 3,500개가 넘는 빙하기 호수들이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낸다. 이 지역은 겨울이 길고 혹독하게 춥지만, 해발 1,500m 초원 지대의 여름은 일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알타이산맥의 식물대는 사막, 초원, 삼림, 고산지대로 뚜렷이 구분된다. 소비에트-알타이 지방은 침엽수림으로 울창하지만, 몽골-알타이와 고비-알타이는 삼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사막과 초원에는 여러 설치류가, 침엽수림 지대에는 곰, 스라소니, 사향노루가 서식한다. 야생 산염소(Ibex), 설표(Snow Leopard) 등은 고산지대에서 살아간다.

지난해 몽골 동부 초지와 고비 사막 탐조 여행의 기억을 이어, 이번에는 겨울에 한반도를 찾았던 새들을 만나러 떠난다. 팔당댐의 큰고니, 철원 토교저수지의 기러기와 두루미를 여름의 몽골에서 다시 만나길 바라며 그들의 고향 땅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칼어스 호수와 양 떼(가축)
칼어스 호수와 양 떼(가축)

1일 차, 2025년 6월 9일, 울란바토르 보그드칸 삼림 지역, 보그드칸 Ger-1

수도 울란바토르의 아침은 자동차 경적으로 시작된다. 내 가슴 속에는 말들이 달리는 대초원이 가득하지만, 울란바토르의 교통체증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는 극심한 정체를 피해 공항에서 1시간 거리인 보그드칸 산림지역의 게르에서 1박 했다. 게르 근처 가파른 바위산 절벽에서 야생산염소(Ibex), 말모트, 붉은양진이, 북방쇠박새, 사막딱새 등을 관찰하며 본격적인 몽골-알타이 탐조를 준비했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탓에 밤 기온은 5℃까지 내려가 무척 추웠다. 게르에는 난로가 있었고, 우리는 참나무 장작과 말똥을 말려 만든 연료로 불을 피웠다. 말린 말똥의 화력이 세어 금방 게르 안이 훈훈해졌지만, 짧은 밤에 불씨가 금방 사그라져 연료를 보충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2일 차, 2025년 6월 10일, 호버드(Khovd)시-칼어스호수, 쌍설표 Ger-2

2일 차에는 호브드 시로 향하는 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몽골 서북쪽 국경에서 200km 떨어진 인구 3만 5천의 작은 도시 호브드는 며칠째 러시아로부터 전기공급이 중단되어 정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침을 해결하려던 계획은 차질이 생겨, 식은 치킨버거를 미지근한 물로 먹고 칼어스 호수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들른 주유소 역시 정전으로 주유를 할 수 없었다.

드넓은 초원과 황량한 사막 사이를 달려 마침내 도착한 칼어스 호수. 되르콘 호수의 민물과 칼어스 호수의 염수가 작은 강을 통해 만나는 이곳은 자연의 이질적인 조화가 빚어낸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코발트색 수평선 아래, 우리는 흰머리오리(White-headed Duck), 붉은부리흰죽지, 쇠재두루미, 개리 등 한반도의 겨울 철새들을 다시 만나는 신기함을 맛보았다. 한 쌍의 회색기러기가 7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먹이 활동을 하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었다.

탐조를 마치고 쌍설표(雙雪彪) 게르 촌으로 이동하던 중, 엄청난 모래바람과 폭우가 우리를 덮쳤다. 앞이 보였다 안 보였다 반복하던 도로는 한동안 완전히 사라졌다. 현지 가이드가 지구 온난화로 인한 몽골의 사막화와 이상기후를 설명해주었다. 겨우 게르 촌에 도착했을 때는 씻은 듯이 맑은 날씨가 우리를 맞았다. 난로도 없는 게르에서 옷을 몇 겹 껴입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게르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마치 하늘의 별들이 모두 내려와 속삭이는 듯했다.

기원전 3,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암각화
기원전 3,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암각화
몽골 알타이-자르한트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몽골 알타이-자르한트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3일 차, 2025년 6월 11일, 자르가한트 산(山)-몽골 알타이산맥의 지류 탐험

해발 2천m의 쌍설표 게르 촌에서 아침을 맞았다. 우리는 차량 흔적이 없는 해발 2,800m 지점의 산길 바위틈에서 암각화를 발견했다. 기원전 3천 년 전후, 수렵인이 석기와 청동기를 사용해 바위 표면에 사슴, 산염소, 사람, 새 등을 묘사해 놓은 것이었다. 후대의 번창과 안녕을 기원했을 선조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5천 년 전, 이곳에서 바위에 염소를 새기던 누군가의 숨결을 느끼며 과거와 현재를 함께 호흡했다.

몽골 서부 자르가한트 산 능선을 따라 3,500m까지 오르자 세상은 점점 작아지고 하늘은 가까워졌다. 시야가 트이는 정상, 우리 앞에 펼쳐진 몽골-알타이의 만년설 산맥은 하얀 장막처럼 신묘하게 다가왔다. 눈부시게 찬란하면서도 깊은 침묵을 간직한 풍경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거친 바위틈, 메마른 흙 위에서도 꿋꿋이 피어난 노랑, 연보라, 하얀색의 작은 야생화들은 단아함과 강인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오후 늦게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고 있을 때, 문득 차가운 긴장감이 흘렀다. 약 2km 떨어진 산봉우리 돌 틈에서 알타이의 산신령으로 불리는 설표(눈표범, Snow Leopard)가 나타난 것이다. 잠시 우리를 응시하던 설표는 이내 다른 바위틈으로 사라졌다. 행운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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