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조선·해양 산업이 디지털화와 탈탄소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조용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경남 거제 옥포동에 본사를 둔 주식회사 이삭(ISSAC E&C)이다.
㈜이삭은 조선·해양플랜트 기술 서비스, 커미셔닝(Commissioning; 시운전), 엔지니어링에 이르기까지 선박의 전 생애주기를 관리하는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0년 설립된 ㈜이삭은 조선소와 선주사 사이에서 기술적 연결 고리 역할을 해오며, 전통적 시운전 서비스에서 나아가 고부가가치 기술 국산화와 통합 ICT 솔루션까지 영역을 넓혀왔다. 2022년 말 신동디지텍 인수를 통해 항해통신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 조선·해양 디지털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LNG 선박 1세대, 바다를 기술로 설계하다
㈜이삭의 창립자이자 대표이사인 권종호 사장은 항해사 출신이다.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국 최초의 LNG선 ‘현대유토피아호’ 인수 멤버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LNG 기술 1세대의 기틀을 닦았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에서 시운전 엔지니어로, 글로벌 에너지 기업 BP에서 FPSO 프로젝트 감독관으로 활약하며 선박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기술 해기사’**로 성장했다.
그는 “시운전은 조선소의 기술을 선주에게 인계하는 마지막 관문”이라며, 이 과정을 국산화하고 고도화하고자 ㈜이삭을 창립했다. 첫 프로젝트는 성동조선의 소규모 시운전이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던 프로젝트에 ‘밑져야 본전’이란 각오로 참여한 것이 오늘의 기반이 됐다.

국산화로 연 100억 절감, 글로벌 해양플랜트 정조준
해양플랜트의 시운전 비용은 척당 수백억 원. 과거에는 이들 작업의 대부분이 외국계 기업에 의해 독점됐다. ㈜이삭은 여기에 도전장을 던졌다. 한국, 필리핀, 인도 등 유경험 인재로 구성된 팀을 꾸려 삼성중공업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FPSO 시운전 국산화를 실현했다. 실제로 기존 대비 70% 이상 비용을 절감해 국내 조선소의 수익구조 개선에도 기여했다.
또한 ‘플랜지 관리 시스템(FMS)’을 비롯해 기존 외국 기업이 보유하던 고부가 툴을 독자 개발하며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역량도 확보했다. 현재 이삭은 LNG선, FLBT, FSRU 등 고급 선박에 필요한 시운전 및 기술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으며, 글로벌 고객들과도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신동디지텍 인수, 항해통신 기술 내재화의 시작
2022년, ㈜이삭은 항해통신 분야 국내 2위 기업 신동디지텍의 인수에 성공했다. 이로써 조선·해양 기술 기반 기업에서 ICT 통합 시스템 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신동디지텍은 한때 일본 FURUNO와 손잡고 국내 시장을 양분하던 강자였지만, 조선 불황 속 적자 누적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삭은 신동디지텍의 250여 개 거래선과 축적된 기술력에 주목했고, 단기간 내 재도약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권 대표는 “이제는 기자재도, 기술도, 솔루션도 국산화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며, ICT·항해통신·친환경 선박 기술의 융합을 통해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람 중심 경영, 바다에서 찾은 비전
권 대표는 “바다는 사람을 만든다”고 말한다. 6년 3개월의 승선 생활과 30여 년의 현장 경험은 그에게 사람의 중요성과 책임을 각인시켰다. ㈜이삭은 전 직원의 워라밸을 보장하며, 매달 매출의 1%를 기부하고, 수익을 직원들과 공유하는 기업 문화를 실천 중이다.
그는 “위기를 이겨내면 그것이 곧 성장이 된다”며, 조선업 불황기에도 좌초하지 않고 일거리를 찾아 나섰던 날들을 회고했다. 최근에는 **‘바다의 쿠팡’**이 되겠다는 목표 아래, 선박에 필요한 서비스를 즉시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 비즈니스 구축도 구상 중이다.

끊임없는 도전과 내재화의 길
㈜이삭은 단순한 기술 대행회사가 아니다.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설계하고, 시운전하고, 통신 시스템을 구축하며, 해체 후까지 책임지는 선박의 전 생애주기 서비스 기업이다. ㈜이삭은 고부가가치 기술의 국산화를 실현하고, 디지털 전환과 탈탄소화의 흐름을 가장 앞에서 이끌고 있다.
이들의 항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권종호 대표는 “가장 좋은 기술은 고객의 문제를 가장 빠르게 해결하는 기술”이라며, 국내 조선산업이 세계를 선도하는 데 있어 ‘이삭’이 그 물밑 힘이 되겠다고 밝혔다.
지속 가능한 성장 위한 포트폴리오 다각화
㈜이삭은 기존의 커미셔닝 서비스 외에도, 선박 운영비 절감 솔루션(VOP), 친환경 연료 대응 시스템, **해양플랜트 해체(Decommissioning)**까지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 EEC사와의 협업을 통해 기존의 비환경적 해체 방식에서 벗어나, 규제를 충족하는 ‘친환경 해체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친환경 선박 해체업에도 도전장을 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지난 6월 26일 ‘안전하고 환경친화적인 선박 재활용을 위한 국제협약(SRC 2009, The Hong Kong Convention for the Safe and Environmentally Sound Recycling of Ships, 일명 홍콩협약)’이 발효됐다. 이 협약은 국제노동기구(ILO), 국제해사기구(IMO), 바젤협약(BC) 사무국이 2009년 5월 홍콩 외교 회의에서 채택한 후 16년 만에 시행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동남아 시장 공략도 본격화됐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 조선소와 협력하여 스마트 조선소 및 패키지 기자재 수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는 단순한 해외 진출을 넘어 한국 조선기술의 시스템 수출로 확장된 개념이다.
“리사이클링을 넘어 업사이클링으로”
권 대표는 “단순한 리사이클링을 넘어 업사이클링으로 나아가려 한다”며, 조선소 근무 경력과 승선 경험을 살린 해기사 출신 CEO다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해양 분야에서 기술 컨설팅, 특히 커미셔닝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이삭의 신동디지텍 인수는 ㈜이삭의 정체성 확립과 사업 확장에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이삭과 신동디지텍을 합친 임직원 180여 명(신동 약 20명 포함)이 지난해 일군 매출은 130억 원에 달한다. 임가공으로 이룬 것으로서 중소기업 기준에서 적지 않은 실적이며, 조선·해양 분야 중소기업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ICT 기술과 연계한 해상풍력발전·신재생에너지·친환경 선박에 대한 권 대표의 관심은 ㈜이삭의 항해에 더욱 기대감을 갖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