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함평만 청정어장 재생사업은 단순한 어장 복구사업이 아니다. 어촌계가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고, 지속가능한 어촌경제 기반을 다지는 종합 사업이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함평군 어업인과 관계자들은 지난달 7일부터 11일까지 일본 북규슈 지역을 찾았다. 후쿠오카·기타큐슈·시모노세키 일대를 돌며, 갯벌 보존과 주민참여형 어장 관리, 어촌 6차 산업, 직거래 유통, 어항 재생 사례 등을 직접 보고 들었다. <현대해양>은 이들의 여정을 동행하며, 우리 어촌의 내일을 위한 물음과 해법을 기록했다.
우레시노 온천에서 시작된 견학의 첫걸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각,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6시. 함평만 어업인들과 사업 관계자들이 돌머리커뮤니티센터에 모였다. 인천공항행 버스는 조용히 출발했고, 첫 식사는 함평읍 장터국밥집에서의 콩나물해장국 한 그릇이었다. 일정이 긴 만큼, 뜨끈한 국물로 몸을 데우는 짧은 여유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공항 식당가에서 간단한 점심을 해결한 일행은 오후 1시 45분 비행기를 타고 일본 후쿠오카로 향했다. 도착 후 입국 수속을 마치고, 전세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사가현의 우레시노 사쿠라 온천호텔. 첫 숙소이자 첫 쉼의 공간이었다.
이곳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온천 지역 중 하나로, 매끄럽고 부드러운 온천수와 풍부한 미네랄로 피부 미용과 건강 효능이 뛰어난 미용 온천이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며 첫날의 긴 이동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호텔 석식은 현지식 뷔페와 함께, 참가자들 간의 첫 대면을 겸한 자리였다. 본격적인 견학은 다음날 부터지만, 이 밤의 대화와 분위기 속엔 기대와 긴장, 그리고 질문이 섞여 있었다. “일본 어촌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을까?” “우리 어촌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일 마주할 현장의 풍경들이, 그 답을 줄 예정이다.

갯벌에서 배우다… 주민이 지키는 바다, 체험으로 살아난 어촌
햇볕이 눈부셨다. 아침을 맞은 견학단은, 첫 본격 일정인 ‘히젠 가시마 갯벌 교류센터’로 향했다. 사가현 가시마시는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국제적인 갯벌 보호지역이자, ‘주민 참여형 관리’로 주목받는 곳이다. 센터 앞에서는 가시마 시청 상공관광과의 기시카와 상, 가시마어업협동조합 조합장 그리고 김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가와무라 요시오 사가대학 농학부 교수가 일행을 반겼다.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가시마가 어떻게 갯벌 보전과 지역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기시카와 상은 “이곳은 단순히 갯벌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과 함께 체험·관광·교육을 연계해 운영하고 있다”며 “갯벌은 생태 자원이자 지역의 문화 자산으로, 마을 전체가 함께 지켜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갯벌 체험, 전통 어업 시연, 오렌지로드 탐방, 지역 공예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관광객을 유치하면서도 주민의 일상과 연결돼 있었다. 해설사로 참여하는 주민들, 람사르협약에 따른 갯벌 관리 기준, 그리고 지역 중심의 프로그램 운영 방식은 함평 어민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한 참가자는 “우리도 갯벌은 많은데, 이런 식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고, 다른 이들은 “보존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갯벌의 활용과 교류 등 지역주도형 운영 모델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하계되는 계기‘가 되었다며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눴다.

오후에는 나가사키현 사세보시로 이동해, 마루모 수산의 굴 양식장을 찾았다. 바다 위에 설치된 해상 구조물 형태의 식당, 일명 ‘카키고야’는 관광객이 굴을 구워 먹으며 바다를 즐기는 체험형 외식 공간이다. 견학을 동행하고 있는 양광희 한국어촌어항공단의 자문위원의 간단한 설명과 단체사진을 찍고, 양식장에서 갓 채취한 굴을 숯불 석쇠 위에 올려놓고 직접 구워 먹는 체험을 진행했다. 33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도 참가자들은 숯불 앞에 앉아 이곳의 방식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눴다. 김진숙 돌머리어촌휴향체험마을 사무장은 “우린 그냥 배에서 내리면 끝인데, 여긴 그걸 구워 먹게 만들어 돈을 버네”라며 웃었고, “이런 모델은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고 짧게 말했다. 일상적으로 바라보던 어촌의 자원을 ‘경험’으로 연결하고 ‘서비스 제공’하는 구조가 인상 깊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섬과 항구, 다시 살아난 어촌… 일본의 답은 연결이었다

바닷길을 건넌 아침, 견학단은 기타큐슈 고쿠라항에서 아이노시마 섬으로 향했다. 훼리에 탑승하기 전, 현장에서 기타큐슈 시청 수산과의 오기 상과 오우치다 상이 합류했고, 이들은 아이노시마 섬 일정에 한해 동행하며 안내를 맡았다. 목적지는 미역 양식을 중심으로 관광·가공·체험을 연계한 6차 산업 모델이 자리한 섬이었다.
오기 상은 “아이노시마는 고령화로 위기에 처한 섬이었지만, 청년 그룹과 주민이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어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미역 양식과 체험, 관광, 가공이 함께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고, 오우치다 상은 “작은 섬일수록 외부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곳은 자연 채취와 복원형 미역 양식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 결과물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과 가공 상품이 관광과 연결돼 있다. 관광객들은 해변길을 따라 섬을 둘러보고, 섬 고양이들과 교감하며, 미역과 관련된 설명과 시식 체험을 진행했다. 단순히 시찰에 그치지 않고, 해양자원과 관광, 지역 브랜딩이 엮여 있는 구조였다. 참가자들 중 일부는 “이런 방식이면 젊은 사람들이 어촌에 남을 수 있지 않겠나”, “고양이 관광만 생각했는데 훨씬 복합적인 구조네”라며 새롭게 보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노시마 견학을 마친 뒤, 일행은 다시 훼리를 타고 모지항으로 이동했다.

두 번째 방문지는 모지항 레트로. 붉은 벽돌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이곳은, 과거 일본 근대화의 중심지였지만 도시 쇠퇴로 한때 침체기를 겪었다. 지금은 어항 재생과 문화관광이 결합된 대표적 도시재생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키타큐슈 시청 모지코 레트로과의 후쿠야마 상은 “이 지역은 항만 기능이 약화된 이후, 오래된 건물을 살리고 역사적 맥락을 보존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사례”라며 “관광이 기존 상권과도 연결되며 지역 내 자생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견학단은 구 모지 세관, 구 오사카 쇼센, 레트로 전망대 등을 차례로 둘러보며 항만·철도·근대건축·야경·전시가 하나로 연결된 복합 콘텐츠 구조를 살폈다. 31층 전망대에 오른 참가자들은 간몬해협과 시모노세키 항을 내려다보며, 연안 도시가 가진 입체적인 힘을 실감했다.
행정이 만든 갯벌, 시민이 키운 어장… 바다와 함께 사는 법

다음날 견학단은 일본 근현대 해양활동의 중심지였던 모지코 항 인근 칸몬해협 뮤지엄을 찾았다. 뮤지엄 내부에는 간몬해협을 중심으로 한 지역 해양사와 어업사, 물류와 항만 기능의 변천사 등이 흥미롭게 구성돼 있었다. 전시관 곳곳에는 근대 어선 모형과 해양 생태 관련 자료, 그리고 체험 중심의 공간들이 마련돼 있어,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바다와 사람이 함께 만든 항구의 역사를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해상 컨테이너 크레인 조작 시뮬레이션, 자율운항선박 VR 체험, 항만 통신 시범 시스템은 어린이 교육을 위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에게 해양의 일상화·생활화 가능성을 생각하게 했다. 박재영 함평군 농어촌공동채과 주무관은 “해양사와 어업사를 반영하는 이러한 시설의 아이디어가 인상적이다”며 “지역소멸 극복을 적극적으로 풀어나가는 중요한 방법을 배워간다”라고 말했다.

오후에는 이날의 핵심 방문지인 오이타현 나카츠시로 이동했다. 나카츠시청 임업수산과에 도착한 견학단은 시 관계자들로부터 나카츠 갯벌의 보전·활용 정책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나카츠시청 임업수산과 담당자 나카하타씨는 “나카츠 갯벌은 단순히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배우고 사용하는 공간”이라며 “어민과 행정, 지역 학교와 NPO가 모두 참여하는 공동관리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의 갯벌은 부젠해에 위치하며, 간조 시 3km 가까이 드러나는 넓은 펄 지형과 조간대 습지, 그리고 대나무 울타리를 활용한 전통 어장이 혼재돼 있다. 시는 갯벌을 중심으로 환경교육, 생태관찰, 쓰레기 정화, 어업 체험 프로그램을 병행하며, 지역 주민이 적극 참여하는 실천형 환경 거버넌스를 추구하고 있었다. 곧이어 실제 나카츠 갯벌 현장 시찰이 이어졌다. 이날은 간조 시간대에 맞춰 갯벌이 드러난 상태였다. 펄 위에는 물길을 따라 대나무 울타리 구조물이 일정 간격으로 설치돼 있었고, 이는 전통 어법 복원과 체험형 콘텐츠 운영을 동시에 고려한 설계였다. 어민들이 직접 제작해온 울타리 일부는 도시 아이들의 해설 교육 현장으로도 쓰이고 있다는 설명도 더해졌다.
김종범 어촌어항공단 남서해지사장은 직접 어구들을 만져보며, 임업수산과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갯벌에서 전통어장과 생태관찰, 어업체험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며 “우리나라 어촌이 나아가기 위한 실천적 학습이 됐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몇몇 참가자들은 직접 자료 복사 요청을 하거나, 담당자 이메일을 받아 적기도 했다. 단순한 벤치마킹을 넘어, 직접 적용을 염두에 둔 고민이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하루는 어업 중심이 아닌 갯벌 관리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어촌을 새롭게 조망하게 만든 날이었다.
시장과 부두, 소비지의 힘… 최종 목적지에서 얻은 실마리

마지막 날 아침, 견학단은 일본 수산물 소비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시모노세키 가라토 수산시장을 찾았다. 이곳은 활복어 산지로 유명하며, 도소매시장에 관광·외식이 더해진 복합형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입구부터 활어, 선어, 냉동품, 정형 회 상품들이 정갈하게 진열돼 있었고, 복어, 참치, 성게 등 고급 수산물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우린 노량진 같은 대형 시장이 있어도 이런 체험형 운영은 엄두를 못 냈다”며 “행정이 공간 구조를 이렇게까지 열어주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한 참가자는 “소비자 직판장을 계획중이다”라며 “좋은 참고자료가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이후 일행은 후쿠오카 공항으로 이동해 귀국 수속을 밟으며, 4박 5일간의 일본 선진지 견학 일정을 마무리했다. 현장별 담당자의 설명을 들으며, 직접 보고, 걸으며, 먹으며 얻은 경험은 단순한 자료나 발표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갯벌과 어장, 시장과 항만, 마을과 행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통해 참가자들은 어촌을 지키는 방식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과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번 여정은 일본의 앞선 사례를 따라잡기 위한 답을 찾기보다는, 각자의 마을에서 가능한 변화의 실마리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