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지난달 8일, 경북 영덕 강구항. 이날 하루에만 참다랑어 1,300여 마리, 약 180톤이 잡혔다. 이는 경북 지역의 지난해 연간 총 어획량인 164톤을 단숨에 뛰어넘는, 그야말로 기록적인 어획량이었다. 하지만 이 ‘만선’의 결과는 풍요가 아닌 혼돈이었다. 국제 어획 할당량인 쿼터는 순식간에 소진됐고, 갈 곳 잃은 참치는 kg당 2,000 원대까지 가격이 폭락하며 부두에 쌓여갔다. 결국 막대한 양의 귀한 수산자원이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번 ‘참치 쇼크’는 단순한 일과성 해프닝이 아니다. 이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외부 충격에 우리 수산업의 낡은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압축된 재난’이었다. 쿼터 관리의 허점, 처리·유통 인프라의 부재, 국제 협상에서의 외교적 리스크 등 수십 년간 누적된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이번 기사는 현장 어업인부터 연구기관, 산업계, 정부 당국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태의 다층적 원인을 심층 분석하고, 대한민국 수산업이 나아가야 할 근본적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기후변화가 몰고온 거대 참치떼의 출현

여러 관계부처에 취재해본 결과, 이번 사태의 배경이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지난 56년간 동해 수온은 지구 평균의 두 배가 넘는 1.9℃나 상승했고, 국립수산과학원 원양자원과는 지난달 31일 지속가능한 어업과 자원관리 워크숍에서 2021년부터 제주와 남해 동해안에서 참다랑어의 알과 유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관측됐다고 밝혔다. 아열대성 어종인 참다랑어가 동해를 새로운 산란장이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우리 해역의 아열대화와 함께 이미 수년간 관찰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150kg을 넘나드는 ‘거대 참치’ 떼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예측 가능한 현상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이변이었다는 반응이다. 이토 토모요키 일본 요코하마 수산연구소 연구원과 국제 다랑어 협의회 ‘ISC’(International Scientific Commitee for Tuna and Tuna-like Species in the North Pacific Ocean) 24차 총회 등 다수의 학술 연구에 따르면, 태평양참다랑어는 연령에 따라 회유 경로가 명확히 구분된다. 일본 근해에서 산란한 어린 개체들 중 상당수는 태평양을 건너 북미 연안에서 수년간 성장기를 보낸 뒤, 성체가 되어 다시 서태평양의 산란장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kg 미만의 소형어와 100kg이 넘는 대형어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성장 단계에 있으며, 각기 다른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기존의 소형어 무리가 몇 달 만에 성장한 것이 아니라, 산란을 위해 북태평양에서 돌아온 완전히 다른 성체 무리가 이례적으로 연안으로 유입된 현상으로 분석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결국 이번 사태는 기후변화가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해양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 쿼터, 인프라, 그리고 시장

지난달 8일의 기록적인 어획량은 연쇄적인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이는 단순히 한두 가지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국내 연근해 어업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첫째, ‘쿼터의 역설’이다. 이번에 이슈가 된 참다랑어는 여러 나라의 바다를 오가는 ‘고도 회유성 어종’으로, 자원 고갈을 막기 위해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와 같은 국제수산기구가 국가별로 연간 잡을 수 있는 총량을 엄격하게 할당한다. 이것이 바로 어획 할당량, 즉 ‘쿼터(Quota)’다. 하지만 자원 보존을 위한 이 제도가 오히려 대규모 자원 낭비의 원인이 되는 역설이 발생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경북도 해양수산과 관계자 “지난달 8일 거의 180톤 정도가 어획된 것으로 파악됐는데, 180톤은 작년 1년 전체 경북도에서 어획된 164톤을 넘는 수치였다”며 하루의 어획량이 1년 치를 넘어섰던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둘째, ‘처리·유통 인프라의 부재’라는 민낯이 드러났다. (특)한국원양산업협회 관계자는 “쿼터를 2,000톤 더 확보했더라도 연근해의 이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쿼터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잡은 고기를 상품으로 만들 능력이 없다는 데 있었다. 150kg짜리 거대 참치를 신속하게 해체할 전문 인력, 소위 ‘칼잡이’도, 대규모 물량을 급속 냉동해 보관할 창고도 연안 항구에는 전무했다. 경북도 해양수산과 관계자는 “강구 수협의 자체 냉동 저장 창고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잡은 고기를 제때 처리하고 보관할 시설이 없으니, 상품 가치는 속절없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9일 어획 쿼터 280톤을 긴급추가 배정했으나, 결국 이미 상품 가치를 잃고 폐기될 처지에 놓인 참치에 사후적으로 면죄부를 준 셈이 되었다. 한 어업인은 이 상황을 “이미 폐기된 쓰레기에 쿼터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셋째, ‘국내 소비 시장의 한계’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신선 참치에 대한 대중적 소비 기반이 넓지 않다. 이번에는 이마트 등 대형 유통사가 일부 물량을 소화했지만, 갑자기 쏟아진 공급량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니 가격은 폭락했고, 이는 어민들의 경제적 손실로 직결됐다.
결국 이번 사태는 ‘쿼터 부족’이라는 표면적 문제를 넘어, 어획 이후의 가치사슬이 준비되지 못한 것을 확인한 사태였다.
“관리도 못 하면서 쿼터 더 달라?”

국내의 혼란은 곧 국제적 망신과 외교적 부담으로 번졌다. 국제공동자원인 참다랑어를 관리하지 못하고 대량으로 버린다는 소식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국립수산과학원 원양자원과 관계자는 “폐기량에 대해 언론에서 수백 톤이 버려지고 있는 것을 외국에서 모두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향후 쿼터 협상에서 한국의 입지를 악화시키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최대 경쟁국인 일본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공격 빌미를 제공했다. 한국원양산업협회 전문가는 이미 시작된 외교적 압박을 언급했다. “일본에서는 우리 기사가 이렇게 많이 나가니 ‘한국은 처리도, 관리도 안 되는 쿼터를 많이 갖고 있다며 오히려 쿼터를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과학적 근거를 쌓아 어렵게 쿼터를 늘려놓아도, 관리 부실이라는 오명 하나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를 포함한 여러 국제수산기구에서 어획 후 폐기 문제는 각국이 언급을 꺼리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자원의 민감성 때문에 암묵적으로 묻어두던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한국은 스스로 그 상자를 열어버린 셈이 되었다. 수과원 원양자원과 관계자는 “그나마 지금까지는 폐기량에 대해서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묻어두는상황이었는데, 너무 공개가 돼 버렸다”고 말하며 “나중에 국제적 쿼터 협상에 나가게 되면 ‘뉴스 보니 이런 식으로 다 갖다 버리던데 쿼터를 더 달라고 하느냐’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미래를 향한 길, 해수부의 역할과 시스템 재설계
동해안 참다랑어 쇼크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대한민국 수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줬다. 이는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단순히 쿼터를 확보하는 외교전을 넘어, 확보한 자원을 관리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국내에 구축하는 것 이야말로 정부의 핵심 책무다.
해수부가 쿼터 관리에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정된 국가 총량을 업종별 기여도와 형평성을 고려해 배분해야 하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해수부는 사태 발생 직후 유보량을 긴급 배정하는 등 사후 조치에 나섰고, 장기적으로는 경북도와 협력해 포항과 영덕에 총 218억 원 규모의 급속 냉동 가공시설 건립을 추진 중이다. 포항은 내년 12월, 강구는 2029년 12월 준공이 목표다. 사후약방문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제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법상 참치와 관련된 연안 어업이 없지 않으냐”고 지적하며, 근본적인 법·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새롭게 나타나는 어업을 포괄할 수 있도록 「어업법」을 개정하고, 어선에 냉동·가공 설비를 탑재할 수 있도록 「어선법」의 경직된 규제를 풀어야 한다. 또한, 자원 변동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수산자원관리법」을 현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제도 개선은 단순히 규제를 바꾸는 것을 넘어,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선(先) 관리 역량 강화, 후(後) 쿼터 확보’가 새로운 외교 전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수부는 동해안의 특정 항구를 ‘참다랑어 허브 항만’으로 지정하고, 어획-가공-유통-판매-관광으로 이어지는 종합적인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어획 즉시 내장을 제거하고 영하 50도 이하로 급속 냉동할 수 있는 전처리 시설과 대규모 냉동 창고를 어항에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자원의 낭비를 막고 어민 소득을 보장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는 이제 동해안에 참치뿐만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과제들을 계속해서 보내올 것이다. 이번 사태를 값비싼 교훈으로 삼아 우리 수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참치 쇼크’는 언제든 우리를 덮칠 수 있다. 그야말로 기후변화에 발 맞춰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