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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법 개정 왜 방치됐나?

  • 기사입력 2025.07.04 08:24
  • 기자명 임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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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현 기자

[현대해양] 해운업계가 수년 전부터 줄곧 요구한 해운법 개정의 필요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4월, 대법원은 정기선사들의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적용 가능성을 열어두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의 타당성을 재검토하라는 의미지만, 그 이면에는 해운법과 경쟁법 사이의 구조적 충돌이 자리하고 있다. 해운법 제29조는 외항화물운송사업자가 운임이나 선복 배치 등을 공동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일부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해양수산부에 사전 신고하고 화주단체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요건은 존재했지만, 실행 가능한 절차와 기준은 미비했다.

해운업계는 2010년대 중반부터 해운법 개선을 요구해왔지만, 국회 내 정무위·국토교통위에서 화주·소비자 반발에 대한 우려로 논의조차 본격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양수산부 역시 시행령과 지침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정치권과 행정부 모두 해운법의 모호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잠재적 이해관계 충돌에 대한 부담 탓에 결단이 늦어졌다는 분석이 유효하다.

공정위는 2022년, 운임 공동행위를 이유로 23개 선사에 9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해운사는 해운법상 정당한 행위임을 주장하며 소송전에 돌입했다. 최근 대법원이 직접 판단을 내리지 않고 고등법원에 다시 판단을 맡긴 배경에는 해운법의 실효성과 적용 기준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문제는 이중 규제다. 해수부는 일정 요건이 충족된 공동행위라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공정위는 신고 누락이나 협의 미비를 근거로 제재할 수 있다고 본다. 법과 행정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기업은 혼란에 빠지고 있다.

국내 해운법은 EU, 미국 등 주요국의 해운 경쟁 규율과 병존하는 구조 속에 있으며, 국제기구 논의와 정책적 조율이 필요한 영역이다. 정부는 과거 국적선사 보호와 안정적 물류망 확보를 위해 일정 수준의 공동행위를 제도적으로 용인해 왔으며, 팬데믹 당시에는 정기선사 간 협력체계를 통해 수출 물류 안정화를 도모했다. 다만, 이후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간 적용 기준을 명확히 정비하지 못하면서, 공동행위의 정당성을 둘러싼 판단 기준은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해운업은 가격 탄력성이 낮고 시장 변동성이 큰 산업이다.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한 공동행위는 일종의 안전장치이자 생존 전략이었다. 세계 주요국도 해운특례를 인정하거나 별도 규율체계를 두고 있다. 우리 역시 해운법은 존재하지만, 제도는 사실상 형해화(形骸化)된 상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입법 여부를 가르는 논쟁이 아니다. 해운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해, 공동행위에 대한 판단 기준과 절차를 현실화할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그것이 법 개정이든, 시행령이나 고시 개편이든 방향은 명확하다.

공정위와 해수부가 공동행위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지금, 필요한 것은 해석의 충돌이 아닌 해법의 조율이다. 행위의 위법성 여부를 사후에 논쟁하기보다, 산업 구조에 맞는 선제적 기준을 만드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이제 해운법은 다시 손봐야 할 도구가 되었다. 실효성 없는 틀을 고치는 일은 산업을 위한 일이자 정책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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