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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선주사, 다시 해운판 흔들까?

공공 시범거래는 시작… 민간 참여는 과제, 구조 개편 실마리는?

  • 기사입력 2025.07.15 09:08
  • 기자명 임종현 기자

[현대해양]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2022년부터 ‘한국형 선주사’ 모델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공공 주도의 시범사업을 추진해왔다. 선박의 소유와 운용을 분리해 해운사의 재무 부담을 줄이고, 조선업계에는 내수 수요 기반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내년까지 최대 50척의 선박을 공공 선주사를 통해 운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으며 현재 일부 시범 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나, 민간 참여와 제도 정비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공공이 주도하는 ‘한국형 선주사’

한국형 선주사는 선박의 소유권과 운영 주체를 분리해 해운사의 재무 부담을 줄이고, 조선산업에는 내수 수요 기반을 제공하는 구조다. 기본 모델은 간단하다. 선주사가 선박을 발주·보유하면, 해운사는 이를 장기용선 형태로 빌려 운항만 전담하는 방식이다. 선주사는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2018년 4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공공 주도 선박 운용 모델을 처음 추진했다. 그 결과 설립된 한국선박해양은 당시 현대상선(HMM)의 일부 선박을 매입해 재임대하는 구조로 운영됐으며, 일정 부분 자금 유동성과 선복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이를 계승한 한국해양진흥공사(KOBC)는 2020년경부터 ‘세일앤리스백(Sale & Lease Back)’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실질적인 선박 리스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는 해운사가 보유한 노후 선박을 KOBC가 매입하고, 해운사는 이를 일정 기간 임차해 사용하는 구조다. KOBC는 이를 통해 선박 자산을 점진적으로 확보하고 있으며, 해운사 입장에서는 유동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재무 건전성을 개선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KOBC는 S&LB 방식으로 다수의 선박 리스에 참여해 왔으며, 다양한 선종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해양수산부는 이 같은 모델을 확대해 2026년까지 최대 50척 내외의 선박을 공공 선주사를 통해 매입 또는 용선 방식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해운협회와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발표한 2021년 한국형 선주사업 설명회
한국해운협회와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발표한 2021년 한국형 선주사업 설명회

선주사, 왜 다시 필요해졌나?

해운사는 통상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선박을 직접 발주해 보유해왔다. 선박원가의 70~90%를 대출해 15년간 매년 값아가고, 용선기간의 만료와 동시에 소유권을 이전받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이러한 고정비 부담이 경영 악화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코로나19 초기 국적선사의 운항 중단 위기 등은 선박 자산을 ‘소유’하는 구조가 가진 한계를 보여준 사례였다. 불경기가 되면 운임이 급락해 원금을 갚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선주사 모델이 도입되면 해운사는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불황기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다. 반면 선주사는 시황에 따라 선박을 매입하거나 용선해 수익을 창출한다. 또한, 선박을 다수 운용함으로써 조선소와도 지속적인 발주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 조선업계에 안정적인 물량을 제공하는 효과도 있다.

이 같은 분업형 구조는 세계 주요 해운국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일본, 그리스, 독일 등은 선박의 소유와 운영을 분리해 산업 전체의 유연성과 회복탄력성을 높여왔으며, 한국도 이제 이에 대한 제도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 선주사, 여전히 높은 장벽

정부의 선주사 시범사업은 공공 영역에서 선박 리스 구조의 작동 가능성을 시험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궁극적인 해운 생태계 안정화를 위해서는 민간 선주사의 등장과 정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다.

과거 선박펀드나 선박투자회사(SPC) 모델은 민간 선주사로의 진입을 꾀했지만, 세제 혜택 미비, 투자 회수 불확실성, 금융기관의 선박 자산 평가 기피 등으로 제도 정착에 실패했다. 특히 시황 하락기에 발생한 대규모 투자손실은 민간 자본의 이탈로 이어졌고, 이후 민간 선주사 설립 시도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국은 지금도 고가의 선박을 일본·그리스 선주사로부터 장기 용선해 쓰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해마다 상당한 규모의 임대료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해운비용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국부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명예교수는 “공공 선주사 모델은 시장이 불안정한 초기 단계에서 재무적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자율성과 효율성을 갖춘 민간 선주사 모델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책사업에 그치고 산업 생태계는 다시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간 선주사 육성을 위해서는 톤세(총톤세) 제도의 선주사 확대 적용, 선박자산에 대한 금융기관의 평가 기준 현실화, 선주사 전용 법인 설립요건 정비 등이 동시에 추진돼야 하며, 특히 자금조달 환경에 대한 제도적 개선 없이는 민간 참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강조했다.

KOBC가 ‘안전판’ 역할을 수행하며 공공 모델을 운용하는 가운데, 정부는 민간 선주사의 참여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도 병행해 검토 중이다. 해수부는 공공과 민간이 병행하는 이중 구조를 이상적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민간 생태계가 작동하기 위해선 금융·세제·법제 전반의 실질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

해외 성공사례에서 본 시사점

그리스는 가족 기업 중심의 민간 선주사 체계를 기반으로, 자국 해운업체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상선대를 보유하게 됐다. 지난해 기준, 그리스 선주들이 보유한 선박은 약 4,900척 수준으로, 이 중 다수는 해외 해운사에 용선돼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선박 시황이 저점일 때 선박을 매입하고, 고점일 때 매각하거나 고운임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극대화한다.

일본은 계열 조선소를 통한 ‘통합 모델’을 구축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마바리조선으로, 이 회사는 선박 건조부터 선주사 운영, 해운사와의 장기계약까지 포괄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NYK·MOL·K Line 등 대형 해운사는 직접 소유 선박보다 외부 혹은 계열 선주사로부터 임대받는 선박 비중이 높은 편이다.

독일은 한때 KG펀드를 통해 수천 척의 선박을 민간 투자로 조달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 손실과 제도 문제로 대폭 축소됐다. 그러나 KG제도는 여전히 일부 니치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중국은 CDB리스, ICBC파이낸셜리스 등 국영 금융사를 중심으로 선박 리스를 전략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들 사례는 한국형 선주사 제도가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설계되더라도, 민간 주체와의 균형 있는 협력이 병행돼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산업 생태계 선순환, 가능할까?

한국형 선주사 모델이 정착될 경우, 선박 투자와 운항 기능의 분리, 조선소의 내수 발주 확대, 해운사의 재무 건전성 제고 등 세 측면에서 산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KOSHIP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조선소의 내수 선박 수주 비중은 업계 추정으로 약 10% 내외에 머무른다. 이는 대부분의 선박이 해외 선주로부터 발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선주사 모델이 확산될 경우 내수 발주 비중이 최대 20~30%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산업연구원도 관련 정책보고서에서 ‘국내 선주사의 수요 기반이 확대될 경우 내수 일감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분석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해운사가 자산 부담 없이 선박을 운항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며, 조선소 역시 보다 안정적인 국내 수주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박 자산 운용과 운항의 분업화가 산업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부산·울산·경남 등 조선 및 해운 산업이 밀집된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기반 민간 선주사 설립 논의가 일부 시작되고 있다.

다만,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금융기관 및 물류기업과 선주사 설립 방안을 논의하거나 초기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 개편의 시험대 위에 선 한국형 모델

한국형 선주사 제도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한국 해운·조선 산업의 구조 개편을 위한 중요한 실험으로 평가된다. 공공 시범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른 지금, 핵심은 민간 자본의 유입과 시장 친화적인 제도 설계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선주사 모델이 정착되면 해운사는 운항에 집중하고, 선주는 자산 운용에 특화되는 구조가 가능해진다”며, “산업 전반의 효율성과 위기 대응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업계가 함께 나서 공공-민간 병행 모델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따라, 한국형 선주사의 성공 여부는 물론, 장기적인 해운 산업의 체질도 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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