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지난 5월 21일, 북한은 청진조선소에서 대대적으로 추진한 5,000 톤급 신형 구축함 진수식에서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관한 가운데 선체는 측면 진수 도중 기울며 파손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수 실패 사실은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됐다.
이 사건은 단지 기술적 실패를 넘어서, 진수가 얼마나 어려운 기술인지, 동시에 상징적 의미가 큰 의식임을 다시 한번 부각시켰다. 진수는 배를 물에 띄우는 순간이지만, 때로는 국격을 띄우기도 하고 추락시키기도 한다.

고대부터 이어진 진수의 문화
고대 그리스와 바이킹은 진수 의식을 통해 신에게 항해의 무사와 번영을 기원했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는 진수식이 왕실과 귀족의 권위를 드러내는 의례로 자리 잡았고, 영국 해군은 19세기부터 여성 귀빈이 진수줄을 도끼로 절단하는 관행을 도입했다. 이는 새로 건조된 함정에 생명을 부여하는 의식으로, 오늘날까지 전통처럼 이어지고 있다.
진수줄을 자르는 여성 대모의 역할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배의 안녕과 안전 운항을 기원하는 ‘대모의 축복’으로 여겨진다. 진수식에서 도끼로 밧줄을 끊고 샴페인 병을 선체에 깨뜨리는 장면은 오늘날에도 해군·상선의 진수식 하이라이트로 자리 잡았다. 일부 국가에서는 진수줄이 한 번에 끊기지 않으면 불운이 따른다는 미신이 있어, 사전 리허설과 예행연습이 따로 진행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2014년 7월 4일 항공모함 HMS 퀸 엘리자베스 진수식에서 직접 진수식에 참여했으며, 미국의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은 2016년 10월 29일 해군 잠수함 USS Illinois 진수식에서 대모로 참여해 진수줄을 절단하고 함정에 이름을 부여했다.
해양 강국인 영국, 프랑스, 일본은 진수식에서 전통 의복이나 군악대 연주를 곁들여 행사로서의 격식을 높인다. 한국 해군도 주요 함정 진수식에 대통령 부인, 해양수산부 장관, 해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해 도끼 절단과 축포를 터뜨리는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한 기술 절차가 아닌 국가 상징의 무대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순신도 겪은 진수 실패, ‘낙과(落架)’의 교훈
진수 실패는 당연히 현대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지휘하던 이순신 장군 역시 함선 진수 과정에서 좌절을 겪었다.
『난중일기』에는 급히 건조한 전선을 진수하던 중 배가 받침대에서 굴러떨어져 파손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이를 “전선을 낙과(落架)했다”고 표현했으며, 이는 진수 준비 부족으로 인한 사고임을 암시한다.
당시 조선 수군에게 전선 한 척은 전투력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이었다. 전란 상황에서 발생한 진수 실패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작전 전체에 지장을 주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순신은 이후 더 철저한 진수 준비와 감독을 강화했으며, 이 일화를 통해 오늘날 진수 전 수십 회의 점검과 시뮬레이션이 관행화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진수는 완공의 끝이 아닌, 또 하나의 위기 관리 구간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조선 시대에도 진수에 적합한 계절과 조류, 기후까지 고려한 준비가 이뤄졌다고 전한다. 여름 장마철에는 강수량과 진흙으로 슬립웨이가 약해질 수 있어 선체가 미끄러지거나 뒤틀리는 위험이 있었다. 이순신의 실패도 그런 자연환경과의 부조화 속에서 발생한 사례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진수란 무엇인가: 주요 방식과 기술
진수는 선박 건조 완료 후 처음으로 물에 띄우는 과정이다. 이 작업은 선체 무게가 수천 톤에 달하는 만큼 고도의 공학 기술과 안전 관리를 필요로 하며,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방식이 있다.

중국은 2018년 7월 3일 055형 구축함 두 척을 동시에 횡진수하는 데 성공했으며, 미국과 유럽은 주로 부유식 진수 방식을 선호해 진수 시 충격을 최소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대형 수송함이나 잠수함의 진수에 부유식 진수 방식을 확대 적용 중이다. 반면 중소형 선박이나 상선은 여전히 종진수가 주류인데, 횡진수의 위험도 때문에 종진수가 선호되는 편이다.
남종호 한국해양대학교 조선해양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횡진수는 구조적으로 부력과 복원력의 미세한 균형을 요구하기 때문에, 진수 각도나 속도, 균형 제어에 실패하면 선체가 한 방향으로 기울 수 있다”며 “횡진수는 종진수보다 위험도가 높아 국내 대형 조선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에어백(airbag)을 이용한 진수 방식도 일부 도입되고 있다. 이 방식은 고무 풍선을 선체 하부에 설치하고 공기를 주입해 부양시키는 것으로, 저비용 소형 선박 진수에 적합하지만, 대형 함정에는 적용이 제한적이다.
또한 함정 자동 진수 제어 시스템도 개발 중인데, 이는 센서와 AI 기반의 균형 제어를 통해 진수 중 사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이다.
준비가 99%: 진수의 보이지 않는 절차들
진수의 성공은 철저한 준비에 달려 있다. 먼저 슬립웨이(slipway)라 불리는 경사면을 설계하고, 활주면에 왁스나 윤활제를 도포한다. 선체는 발묶음(木楔)으로 고정되며, 진수줄을 끊는 순간 쐐기가 해체되며 배가 미끄러지듯 바다로 진입하게 된다.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 드래그 체인(drag chain)을 연결하고, 착수 지점에서는 밸러스트 수를 조절해 선체 균형을 잡는다. 진수 후 배가 정박지에 안착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불의의 사고를 방지해야 한다. 진수는 단순한 미끄러뜨리기가 아니라 정밀한 시스템과 팀워크가 요구되는 기술 행위다.
실제 진수 전 점검 리스트는 100개가 넘는 경우도 있으며, 윤활 상태, 기울기, 진수 속도, 선체 장력 등을 측정해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 진수에 참여하는 인원은 기술자, 감리, 안전요원, 작전 통제관 등 수십 명에 달하고, 일부 대형 함정 진수는 드론을 띄워 공중에서 실시간 촬영 및 분석도 이뤄진다.
북한 구축함 진수 실패 무엇이 문제였나?
북한의 진수 실패는 진수 운반대차의 불균형이 원인이었다. 선미 쪽 대차가 먼저 움직이며 균형이 무너졌고, 함수는 거치대에 걸린 채 뒤늦게 추락하며 선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위성사진에는 구축함이 반쯤 물에 잠긴 채 좌초된 모습이 포착됐고, 이후 공기주머니(에어백)를 이용한 수작업 방식으로 선체를 세우는 장면이 관측됐다.
남종호 교수는 “진수는 일종의 ‘부력과 복원력의 싸움’이며, 이번 사고는 진수 속도나 방향 제어 실패로 인해 균형을 잃고 언밸런스가 발생한 사례”라며 “특히 횡진수에서는 선체가 한쪽으로 들어가면서 기울어질 경우, 복원력이 따라오지 못하면 바닥이나 대차에 과도한 하중이 걸려 구조적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기술자들을 처벌하고 내부 인사 조치를 취했으며, 김정은은 이를 ‘국가 자존을 추락시킨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진수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방력 과시와 체제 선전의 무대로도 기능한다는 점을 반영한다.
북한의 조선소는 전통적으로 어선이나 중소형 함정을 건조하던 시설이 많아, 대형 구축함급 진수 경험과 설비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부분 도크식 진수를 채택하며, 종진수를 중심으로 체계적 시스템이 정비되어 있어 대형 선박 진수 사고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며 “이번 북한 사례는 기술적 노하우와 시설 부족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실패”라고 말했다.
세계의 진수 사고 사례들
진수는 각국에서 다양한 사고를 낳아왔다. 대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이들 사례는 진수가 단순한 공정이 아닌, 수많은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 고위험 기술임을 입증한다. 특히 진수 실패는 단순한 기술 사고를 넘어, 국가적 자존심과도 연결된 문제로 확산되기 쉽다.

바다로 향하는 가장 위험한 첫걸음
진수는 단순한 선박 진입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한 나라의 기술력, 해양력, 문화의 총체가 응축된 순간이다. 북한 진수 사고는 진수의 기술적 난이도와 상징성을 동시에 보여준 사건이다. 진수는 철저한 준비와 숙련된 기술이 없다면 한순간에 국가의 체면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공학적 퍼포먼스’이자 정치적 이벤트다.
진수의 의미는 그 이상이다. 함선이 처음으로 바다를 만나는 순간은, 인류가 미지의 영역으로 향해 나아가는 의지이자,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이다. 진수줄을 끊는 도끼 한 번, 밧줄이 떨어지는 그 찰나에 수년 간의 땀과 노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진수는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시작되지만, 그 이면에는 긴장과 책임이 공존한다.
앞으로도 해양 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은 진수 기술의 내실을 다지는 동시에, 그 의미와 전통을 더욱 살리는 방향으로 진수 문화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진수는 배가 아니라 ‘국가의 신뢰’를 띄우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