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조선과 해운업을 포함하는 해사산업에서 기업들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이슈는 해상탈탄소화이다. 이미 EU와 IMO는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거나 곧 시행 예정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온실가스 고배출 선박에 대한 비용 부담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선사들의 온실가스 규제 대응은 향후 경쟁력뿐 아니라 생존을 좌우할 요인이다.
문제는 단기적인 대세 연료로 보이는 LNG 이후, 중장기적으로 넷제로를 구현할 대체연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경제성과 충분한 공급 가능성 등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선사들은 혼란스럽지만 노후선 교체는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자금 수요를 충족할 금융이 준비되어 있는지도 매우 중요한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금융업계는 더 혼란스럽다. 선사들만큼의 상황 파악과 미래에 대한 판단 역량도 갖추지 못했는데, 어려운 프로젝트의 위험성 판단을 어떻게 하겠는가. 더욱이 공금융이 선박금융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는 정책금융기관의 순환보직제로 변변한 전문가조차 없다. 대부분 금융기관은 선박 프로젝트의 개별 위험보다는 선사의 신뢰도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대형 선사는 여러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 제공 제안을 받고 있지만, 중견·중소 선사들의 자금 조달은 어렵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중견·중소 선사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심각하다. 이 문제에 대한 다른 나라의 대응은 확연히 다르다. 유럽은 EU와 각국 정부가 보조금과 중장기 융자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기업 간 협력과 대응을 유도한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 이후 해양굴기를 강조하며, 대형 해양산업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정부가 일관된 조선·해운 지원 정책을 펼치며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가 해운사, 조선사, 해사 관련 기관, 연구기관, 금융업계까지 포함한 해사클러스터를 소집해 정책을 논의하고 전략을 수립한다. 일본 정부는 2023년 녹색전환 정책을 통해 자국 해운업의 저탄소·무탄소 전환에 2.9조엔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이를 국채, 공금융기관, 투자 활성화 정책 등으로 조달할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주요 해사산업국들은 자국의 체제와 환경에 맞는 대응책을 범국가적 협력이나 정부 주도로 실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조선과 해운 정책마저 이원화되어 2개의 부처가 협력 없이 제각각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조선-해운-연료-금융 등 산업 간 대화나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략은 부재하고 정부의 지원 정책도 단편적이다. 2023년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국책은행 대출금 4.5조원과 1조원 기금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으며, 턱없이 부족하다.
이처럼 통합된 논의조차 없는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정보를 얻고 대출의 위험을 판단해 금융 제공을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박에 대한 금융기관의 문은 더욱 닫힐 수밖에 없다. 이를 해소해 선박에 많은 자금이 투자되고 선사가 경쟁력을 확보하며 산업과 금융이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범국가적인 논의와 협력이 절실하다. 정부와 산업계, 산업계 간, 기업 간의 폭넓은 논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해상탈탄소화는 개별 기업이나 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전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그것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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