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섬의 가치를 ‘섬의 크기’로 평가할 수 없다. 평가해서도 안 된다. 또 섬 주민들 수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 전자라면 부동산업자가 할 일이고, 후자라면 정치나 행정의 잣대로 범하는 그릇된 기준이다. 또 하나가 더 있다. ‘너 섬에 살아 봤냐’는 말이다. 스스로 섬을 고립시키는 언술이다. 그 말이 나온 배경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할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이 있다.
섬은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할 의미가 있다. 그것이 ‘섬의 권리’이다. 특히 육지 중심의 사고로 섬의 가치를 논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그래서 섬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정책이나 개발 행위를 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작은 섬이지만 지구의 오랜 역사를 품고, 그 세월에 기대어 살아온 작은 섬이 적지 않다.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에 추도가 그런 섬이다.
낭도리는 낭도, 사도, 추도를 아우르는 행정리이다. 낭도는 고흥반도와 여수반도를 잇는 팔영대교, 적금대교, 낭도대교, 둔병대교, 조발대교 등이 이어지면서 육로와 연결되었다. 또 낭도와 사도를 잇는 인도교도 계획 중이다. 이러한 연륙·연도교 사업이 마무리되면 남은 섬은 추도뿐이다. 다행스럽게 최근 추도에 여객선이 다니면서 활력을 찾고 있다.

자연유산에 기대어 산다
우리나라에서 1972년 경남 하동군 수문동 해안에서 처음 공룡알 화석이 발견되었다. 지구상에 공룡화석이 처음 발견된 것은 1676년 영국 잉글랜드 한 채석장이다. 당시 옥스퍼드대 교수는 공룡화석을 거인의 뼈로 이해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하동, 경기 화성, 전남 보성, 여수, 해남, 경남 고성 등에서 공룡 알, 뼈, 발자국 등이 발견되었다. 특히 특히 전남 여수, 보성,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는 공룡알 화석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중 여수에서는 사도, 낭도, 추도, 적금도 그리고 무인도인 목섬까지 공룡 발자국 화석은 3,600여 개가 발견되었다. 이중 추도에서만 1,759에 이른다. 이중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화석인 길이 84미터 73개의 조각류 보행렬도 있다. 추도에 있는 공룡발자국이다. 처음 추도를 방문했던 20년 전만 해도 이 보행렬은 흔적이 뚜렷했다. 또 보행렬 주변에는 물결무늬 흔적도 또렷했다. 이러한 유산은 2003년 2월 ‘여수 낭도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라는 유산명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국가유산청 웹페이지 자료에는 ‘공룡화석은 총 3,546점으로 이중 사도 755점, 추도 1,759점, 낭도 962점, 목도 50점, 적금도 20점’이라고 소개했다. 또 공룡도 조각류, 수각류, 용각류 등 발자국이며, 이 앞발을 들고 뒷발로만 걷는 조각류 발자국이 81%‘에 달한다고 했다. 공룡화석 외에도 규화목, 식물화석, 연체동물화석, 개형충, 무척추동물, 생흔, 연흔, 건열 등 퇴적구조가 발견되어 지질연구와 학습장으로 손색이 없다.

한때 10여 가구가 살았던 마을은 모두 흙 한 줌 없이 돌담으로 바람을 막았다. 그 돌담도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층이다. 마치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돌로 담장을 쌓고 골목길을 만들었다. 구들장을 놓는 돌로 이용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파도와 바람을 피하고, 추위를 피할 다른 선택이 없었고, 퇴적암층의 가치도 알지 못했다. 그 담장은 2007년 11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추도 돌담은 평평한 것부터 둥근 것까지 다양한 돌을 서로 맞물린 형태로 쌓아 주변 풍광과 잘 어우러진 섬마을 경관을 잘 보여 준다. 이제 돌담은 돌담대로, 남은 공룡화석지는 공룡화석지대로 지키고 보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섬은 뱃길이 복지다
낭도에서 추도로 가는 뱃길은 평일에는 하루 세 번, 주말에는 다섯 번, 성수기 주말에는 8회나 열린다. 여객선이 없어 사선을 이용하거나 유람선을 이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천지개벽할 일이다. 낭도에서 배를 타고 잠깐 사도를 들렀다가 추도에 내렸다. 여객선이 다니는 것을 기념해 승무원에게 기념사진도 부탁했다. 주민들도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생긴 도선은 해양수산부가 추진하는 ‘소외도서 하로 운영 지원사업’ 덕분이다. 도선이 다니지 않고 대체교통수단도 없는 섬 주민의 ‘보편적 교통권’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다. 이 사업은 인건비, 유류비 등 선박 운항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한다. 여수에는 대운두와 감도를 운항하는 섬섬여수 1호, 소두라도와 횡간도와 월전을 오가는 섬섬여수 2호 그리고 추도와 낭도를 오가는 3호가 선정되었다. 일반 여객선이나 도선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추도 주민들에게 특별선이었다.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배였던가. 처음부터 추도에 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추도에 한때 초등학교가 있었고, 여수에서 출발해 백야도와 상화도와 하화도(꽃섬이라 부르기도 함)를 거쳐 추도와 사도와 낭도를 오가는 배가 있었다. 그런데 선박회사 배가 운항하는 노선이라 주민이 몇 명 살지 않는 추도는 제외되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가장 큰 섬이 낭도가 여수와 고흥 사이 섬들을 잇는 다리가 이어지면서 자동차를 이용하게 되면서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오랫동안 사선을 이용해 섬을 오가야 했다. 한 번 집에 다녀오는데 비용만 10만 원이었다. 여수에서 서울까지 KTX를 이용하는 비용을 10분 거리에 지불했다.
섬 교통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상, 항공, 섬 안에 교통도 있다. 추도처럼 작은 섬은 국가의 교통정책에서 늘 소외되곤 했다. 섬 주민도 적으니, 비즈니스를 하는 선사나 유권자의 숫자로 사업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정치나 행정은 관심이 없었다. 한국섬진흥원이 연구한 자료(여객선 공영제 등 섬 교통체계 혁신 방안 연구, 2022)에 따르면, 연안 여객선 항로는 일반항로 77개와 보조항로 27개 등 모두 104개 항로이다. 보조항로는 정부 운항손실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 연안여객선 164척 중 선령이 20년이 넘은 여객선도 27척에 이른다. 뱃삯을 책정하는 기준도 거리당 요금이 버스나 KTX, 도시철도보다 적게는 5배, 많게는 10배 이상 비싸다. 유인섬 464곳 중 섬 안에 대중교통수단 있는 섬은 91곳으로 20%에 불과하다. ‘100원 택시’ 등 대체교통수단도 59곳으로 13%에 불과하다. 이들 섬 중에서 육지와 교량이 연결된 섬은 95개로 20.4%이며, 나머지 366개인 약 80%가 여객선이나 도선 등 배를 이용한다. 나머지 섬들은 과거 추도처럼 큰 비용을 지불하고 사선을 이용한다.

작은 섬에 주민이 살아야 한다
여객선이 있지만 운항하지 않아 일 년의 1/3, 1/4을 교통이 두절 되는 섬도 있다. 울릉도, 백령도, 흑산도(가거, 만재 등), 거문도 등이다. 또 추도처럼 여객선도 도선도 다니지 않는 섬도 적잖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여객선공영제가 절실하다. 섬내 그리고 섬과 육지 혹은 섬과 섬, 그리고 섬 내에 교통인프라는 생명을 살리는 ‘골든타임’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부는 오랫동안 도서종합개발계획(섬발전종합개획으로 명칭변경)을 통해 교통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통사각지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 물류비용도 육지보다 비싸다. 섬 교통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전환이 필요하다. 여객선공영제가 그 중에 하나다. 신안군은 지난 5월 (재)신안교통재단을 출범해 공영선박 운영의 전문성과 공공성 확보‘를 하겠다고 했다. 이 재단은 군 소유 공용선박의 전문성, 책임감, 안전성을 개선하고 편리성을 향상시킬 계획이다.


추도는 면적 0.11제곱킬로미터에 해안선 2.1킬로미터의 아주 작은 섬이다. 마을 뒤와 학교 뒤에 밭농사를 지을 땅이 있고, 가장 긴 골목인 50미터 이르는 가장 긴 골목에 두 개의 우물이 있었다. 선창에서 그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섬마을의 상징인 300여 년이 된 느릅나무가 자라고 있다. 추도에 가장 많은 사람이 살았던 때는 1960년대 말이다. 추도분교가 문을 열었을 때다. 당시 11가구 110명이 살았다. 그리고 16년간 졸업생 16명을 배출하고 1983년에 문을 닫았다. 한 대 1가구 1명만 거주하기도 했다. 지금은 7가구 9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어렵다는 여객선도 다니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에는 조영희씨 등 주민과 백섬백길을 기획한 사단법인 섬연구소(소장, 강제윤)를 비롯한 전라남도 섬발전지원센터 등 추도에 관심이 전문가들의 역할도 컸다. 그 동안 섬이 무인도화 되는 것을 막겠다는 정책과 반대로 추진되는 정책으로 작은 섬은 무인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여수시는 내년에 여수세계섬박람회를 준비 중이다. 섬에 없는 자원도 마련해야 할 만큼 절박한 시기이다. 하물며 섬에 있는 있는 자원도 주목하지 않는다면 여수세계섬박람회는 물론 사후 활용도 여수엑스포처럼 반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