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서비스

부터
까지


부터
까지

마음에 가장 오래 남는 바다, 함평만

함평만 청정어장 팸투어 여행기

  • 기사입력 2025.06.09 14:06
  • 최종수정 2025.06.11 09:52
  • 기자명 글. 김성동 beto 책임연구원 사진. 마동욱 객원기자
돌머리어촌체험마을, 무지개 갯벌 탐방로
돌머리어촌체험마을, 무지개 갯벌 탐방로

“함평에 바다가 있어?” 팸투어에 참가한 사람들 절반 이상이 처음 했던 말이다. 광주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조용한 어촌, 함평만. 이곳에서 방앗간 체험, 해수찜, 칠게잡이 등 어촌체험과 함평한우, 게르마늄 낙지 등 지역 미식, 함평만 낙조와 나비축제 등의 생태 관광이 어우러진 이번 팸투어는 로컬여행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함평만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었고,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경험을 선사했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느리고 따뜻한 지역의 리듬에 몸을 맞춰보는 시간이었다.


광주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로 가는 길

2025년 4월 24일 오전, 광주 송정 KTX역 2번 출구 앞에는 가벼운 긴장과 묘한 기대가 뒤섞인 표정들이 모여들었다.

이른 봄비가 채 마르지 않은 일상의 기운을 뒤로하고, ‘함평만 청정어장 팸투어’라는 목적지를 향해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기자, 블로거, 유튜버 등 SNS 채널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 참가자들 중 다수는 함평군을 처음 방문했고, 이 지역에 대해 아는 정보도 많지 않다고 했다. 생소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한 곳이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주최측에서 “광주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창밖으로는 점차 아파트 숲이 낮아지고 초록의 논밭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바다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깝게 다가왔다.

함평군을 대표하는 음식인 육회비빔밥
함평군을 대표하는 음식인 육회비빔밥

금강산도 식후경. 전국적으로 함평군을 대표하는 음식인 육회비빔밥으로 간단한 점심을 마쳤다. 버스는 곧바로 첫 방문지인 돌머리(석두) 어촌체험마을로 향했다. 탁 트인 바다와 넓은 갯벌이 맞이하는 곳이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큼직한 안내판과 데크, 주변 농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단정하게 정비된 체험마을은 관광지라기보다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에 가까웠다. 서해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하늘빛 바다색은 이날의 팸투어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고조시키고 있었다.

김용민 함평군 농어촌공동체과 해양수산팀 팀장의 청청어장 재생사업 브리핑 모습
김용민 함평군 농어촌공동체과 해양수산팀 팀장의 청청어장 재생사업 브리핑 모습

도착하자마자 김용민 함평군 해양수산팀 팀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청정어장 재생사업’이 단순한 어장환경개선이나 기반시설 정비가 아니라 설명했다. 지속 가능한 어업과 어촌 공동체의 회복을 함께 이야기하는 그의 설명은, 그저 관광용 체험이 아니라는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후 본격적인 함평만 어촌마을 체험이 시작됐다.


어촌의 삶을 보고, 함평만 체험하다

돌머리어촌체험마을의 마을기업인 ‘석두쟁이 방앗간’에 들어서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체험이 없는 날은 주민들의 쉼터이고 이야기 공간이다.

방앗간의 공정은 대부분 자동화되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참깨와 들깨가 세척되어 저온압착기로 착유, 기름이 병에 담기는 모습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설명에 나선 마을 사무장은 “주민들이 직접 키운 깨예요. 대량으로 팔기보단 품질로 승부하는 방식이죠”라고 덧붙였다. 체험도 진행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세척과 투입공정에 참여하고 깨 종류에 따라 덖을 온도를 맞췄다. 마지막으로 착유된 기름을 담을 각자의 병에 스티커를 붙이고 이름을 썼다. 바다 옆 마을에, 이렇게 따뜻하고 고소한 기름 내음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이었다.

방앗간체험을 위해 돌머리방앗간으로 이동하는 모습
방앗간체험을 위해 돌머리방앗간으로 이동하는 모습

방앗간 체험을 마치고 바다로 시선을 돌리자 눈에 들어온 것은 파도 대신 갯벌 위를 가로지르는 무지개빛 데크와, 갯내음 섞인 바람이었다. 돌머리해수욕장에는 캠핑존, 카라반존, 유아풀장, 솔밭 데크 쉼터 등을 갖추고 있었다. 다양한 체험거리도 갖추고 있어 2024년 해양수산부 주관 어촌체험휴양마을 1등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들른 주포마을은 함평군 전통 해수찜 체험의 명소다. 유황 성분이 많은 돌을 소나무 장작불에 달군 뒤, 약초를 넣고 해수에 담궈 증기를 만들고, 그 안에 앉아 땀을 빼는 방식이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민간요법이다. 현대식 찜질방과는 다르게, 공간은 조촐했지만 몸을 데우는 열기만큼은 충분했다. “이건 그냥 찜질이 아니라, 약이야”라는 말이 나올 만큼 땀을 흘리는 참가자들의 표정엔 묘한 개운함이 있었다. 이 체험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오래된 삶의 방식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함평군 전통 해수사우나 ‘해수찜’
함평군 전통 해수사우나 ‘해수찜’

땀을 뺐으니, 수분공급이 필요한 시점에 석창마을의 ‘카페 시목으로 이동했다. 폐교를 개조해 만든 이색 공간이다. 내부는 전시와 쉼터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MZ세대에게 입소문이 났다는 설명처럼, 음료와 함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 옆으로는,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해안선이 액자처럼 보였다.


벌체험과 낙조, 함평만의 저녁을 걷다

체험은 이어졌다. 월천마을 해변과 안악해변, 석창의 데크길, 그리고 마침내 학산마을로 이어지는 코스. 오후 내내 이어진 이동과 체험에도 지친 기색은 없었다. 그만큼 신기하고, 낯설고, 그래서 오래 남을 장면들이었다.

함평만 안악해변 갯벌체험 모습
함평만 안악해변 갯벌체험 모습

학산어촌체험마을의 칠게잡이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었다. 장화를 신고 갯벌로 들어서자, 갯벌 아래 숨어 있던 생명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의 청소부라 불리는 칠게는 예상보다 훨씬 날렵했고, 청정어장에 서식한다는 생태보호종인 흰발농게는 작지만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참가자들은 작은 바구니를 들고 허리를 숙여 칠게와 조개를 잡으며 갯벌 생태계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한 참가자는 웃으며 “도시에서 잡는 건 마음뿐인데, 여기선 진짜 뭐라도 잡힌다”며 허리를 폈다. 칠게잡이는 재밌었지만 낙지를 못 잡았다는 아쉬움이 나왔다. 체험을 주도한 학산어촌계장은 “함평만 뻘은 게르마늄이 많이 함유돼 수산물의 맛이 특별하다”며, 특히 다른 지역 낙지보다 맛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참가자들이 시식해 볼 수 있도록 ’함평 게르마늄낙지‘를 제공했다.

함평만 돌머리해변 낙조
함평만 돌머리해변 낙조

체험을 마친 뒤, 다시 돌머리해변으로 이동하니 바다가 하루를 정리하는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무지개 갯벌탐방로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걷는 동안, 붉게 번지는 서해의 낙조가 바닷물과 하늘, 그리고 사람들 얼굴까지 물들였다. 여행지에서 해지는 풍경을 본다는 것은 단지 시각적인 경험을 넘어서, 자신이 멈춰 서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저녁의 정점은 주포한옥마을에서의 바비큐였다. 한옥의 마당에 준비된 석쇠 위로 게르마늄 소라와 함평한우가 익어가는 냄새가 퍼졌다. 학산어촌계장님의 게르마늄 낙지와 지역 청년농부가 직접 재배한 유럽상추와 함평나비쌀로 지은 밥이 더해지자, 이 바닷가 마을은 잠시 ‘로컬 미식의 중심’이 되었다. 참가자들 사이에는 “이런 구성이라면 식도락 여행으로 편성해도 다시 오고 싶을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주포한옥마을에서의 밤과 바베큐
주포한옥마을에서의 밤과 바베큐

밤은 한옥의 처마 아래에서 조용히 내려앉았다. 낙조를 보고, 칠게를 잡고, 낯선 사람들과 식사를 나눈 하루는 그렇게 포근하게 마무리됐다. 파도 소리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하루 종일 만난 생명들과 장면들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비를 따라, 생태 도시를 보다

둘째 날 아침, 함평에서의 하루는 장터해장국 한 그릇으로 시작됐다. 전날 바닷가에서의 노을과 바비큐로 채워졌던 여운이 국물 속에 녹아드는 듯했다. 전날보다 조금은 부드러워진 참가자들의 표정에서, 이틀간의 여행이 익숙해진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 식사 후, 버스는 곧장 ‘함평나비축제장’으로 향했다. 축제가 열리는 엑스포공원 일원에는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이미 많은 관람객들이 입장해 있었다. 축제장은 자율 관람 형태로 진행되었고,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나비박물관, 생태관, 각종 체험부스를 둘러보며 봄기운을 만끽했다.

4월에도 나비를 볼수 있는 함평나비축제
4월에도 나비를 볼수 있는 함평나비축제

이곳은 단지 나비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황금박쥐 전시관, 친환경 테마시설, 지역 먹거리 부스 등이 조화를 이루며 함평이 오랫동안 지켜온 청정지역 브랜드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지역 축제에 이 정도 규모의 생태 콘텐츠가 있는 건 흔치 않다”며 놀라워했다. 특히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많은 점도 인상적이었다.

한 참가자는 “엑스포라는 이름에 걸맞게 구성 요소가 꽤 체계적이다. 나비를 매개로 함평군의 자연과 정책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평했다. 다른 참가자는 “어제 즐겼던 체험처럼 조금 더 지역과 연계된 체험 상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덧붙였다.

짧지만 알찼던 관람을 마치고, 인근 화랑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귀가길에 올랐다. 출발 전만 해도 함평에 ‘바다’가 있는 줄 몰랐다는 참가자들이, 이젠 “다음엔 가족을 데리고 오고 싶다”고 말하며 버스에 올랐다. 체험은 끝났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떠남보다 오래 남는 바다의 기억

함평엑스포공원을 뒤로한 버스가 광주 송정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을 때, 차 안은 조용했다. 길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낯선 바다와 사람, 체험이 이어진 이틀간의 시간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순간이었다.

처음 함평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참가자들 중 절반 이상은 ‘함평에 바다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돌머리 마을의 갯벌 위를 걷던 감촉과 칠게의 빠른 발놀림, 전통 해수찜의 뜨거운 숨결, 한옥 처마 밑에서 본 서해 낙조의 잔상을 품은 채 돌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팸투어는 체험의 양보다 경험의 깊이를 남겼다.

참가자들은 이번 여정을 “생각보다 훨씬 풍성했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이 지역이 가진 정보 접근성과 콘텐츠 노출이 너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전했다.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 지역 정보. 그런 곳에서 오히려 ‘직접 겪고 나서야 알게 되는 가치’가 있다는 걸 이번 여정이 증명해 주었다.

함평만 청정어장 팸투어 단체사진
함평만 청정어장 팸투어 단체사진

함평만은 여전히 조용한 바다였다. 하지만 이번 팸투어를 통해, 그 조용함 속에서 새로운 관광의 방향성과 지역공동체가 함께 가꾼 삶의 형태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에서의 빠른 일상과 비교할 수 없는, 느리고 정직한 리듬이 이곳에는 분명히 존재했다.

떠났지만, 남는 것이 더 많은 여행.

함평만은 그렇게, 광주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가 아니라 ‘마음에서 가장 오래 남는 바다’로 기억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