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미 정부의 자국 조선·해운 정책이 급변하는 가운데 우리의 전략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 발의된 ‘미국을 위한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 S.A.A)’은 미국의 상선 선대를 대폭 확충하고, 해군 함정 건조 역량 강화 등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의 조선·해운 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본 사안은 단순한 민간 차원의 시장 참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해운 및 상선 선대 확충은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의 관할에 속하며, 해군 함정 건조는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의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함정 건조에는 미국과의 군사 기밀 협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이에 따라 정부 대 정부(G2G) 차원의 협력과 조율이 선행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국무총리실 또는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하여, 국방부, 산자부, 해양수산부(해수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등 주요 부처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민간 조선·해운 산업과 연계된 통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과의 한·미 협력 강화를 통해 양국 간 경제 및 국방 협력을 확대하는 ‘윈-윈(Win-Win)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해운·조선업: 미국 상선 선대 확충 대한 전략적 대응
S.A.A 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현재 약 80척 규모의 미국 국적 상선 선대를 250척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 해운업계는 이 기회에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으로 모색해야 하며, 진출 전략을 몇 가지 제언한다.
우선 한국 해운사의 지분 및 사업권 확보이다. HMM, 팬오션, SM상선 등 국내 주요 해운사가 미국 해운사 및 투자 기관과 협력하여 미국 내 상선 운송 사업에 지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외교적 지원과 정책 협력이 필수적이며, 한·미 양국 간 해운 협력을 공식적인 의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한국 조선소에서 미국 국적의 상선을 건조하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 미국 선사들의 발주가 한국 조선소로 유입될 수 있도록, 한국 조선업의 친환경 선박 기술, 경제성, 인도 기간 단축 등의 경쟁력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또, 선박 금융 및 리스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한국 조선소가 건조한 선박을 미국 선사들이 채택할 수 있도록 금융 지원을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 한국 해운사의 선박 매각 및 활용 방안이다. 현재 국내 해운사가 보유하고 있는 한국 국적의 선박을 미국 해운사 또는 정부 프로그램에 매각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 해운업체가 미국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동시에 국내 조선소에서 신규 선박 발주를 촉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해군 함정 건조: 전략적 접근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
미국이 추진하는 해군 함정 건조 사업은 일반 상선 건조와 달리 프로젝트성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사업에서는 실적 도면(Reference Design), 기자재·무기체계, 건조 공법 등 세 가지가 핵심 요소인 점을 착안하여 다음과 같은 전략을 강구해 볼 수 있다.
먼저 실적 도면의 활용 전략이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이미 이지스 구축함(KDX-III, 세종대왕급)과 3,000톤급 중형 잠수함(장보고-III급) 등의 설계·건조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 조선소가 미군 함정을 건조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이때 미국의 무기체계와 조달 기준을 고려해 미국 실적 도면을 활용해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한·미 양국 간의 기술 협의와 정책적 조율을 통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기자재 및 무기체계 현지화(Localization) 전략도 필요하다. 미국산과 한국산을 혼합해 사용하는 방식을 통해 가격 경쟁력과 성능, 품질을 모두 확보해야 하며, 미국의 방위산업(방산) 조달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한국 기술이 일정 부분 채택될 수 있도록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조선소 운영과 생산 기반의 현지화 전략도 필수적이다. 미국 시장에서 군함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한국 조선업체가 미국 내 생산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 공동으로 미국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를 인수했듯이, 한국 조선소가 미국 내 조선소를 인수하거나 합작 투자를 통해 현지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방안이나 △한국 조선업체가 미국 내 선박 설계 회사를 인수하여, 미국 방산 조달 기준에 맞는 함정 설계를 직접 주도하는 방안, △한국 조선업체가 미국 방산 기업과 합작 투자(JV)를 추진하여, 현지에서 무기체계를 조달하고, 일부 부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강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차원의 대응 필요성
하지만 국내 해운·조선업계에서 위와 같은 전략을 펼치더라도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정책적 주도와 미국과의 외교적 협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이에 한국 정부는 국내 산업계와 긴밀하게 협의하며 내부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치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국무총리실 또는 대통령실 산하에 ‘한·미 조선·해운 산업 협력 컨트롤 타워’가 설치되어야 한다. 이 기구는 해수부(해운), 산자부(상선), 국방부(해군 함정), 방위사업청(무기체계), 과기부(기술 개발) 등의 관계 부처 간 통합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둘째, 한·미 정부 간 공식 협의 채널 구축이다. 미국 정부와 해운 및 방산 협력을 위한 G2G 협의체를 구성하여 사업 초반부터 정책 및 기술 협력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한국 관련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한국 조선·해운 기업들이 미국 내 법적·제도적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법·제도적 지원 정책의 마련이 필요하다.
이렇게 국가 주도의 정책 아래 전략적으로 접근했을 때, 미국의 새로운 법안(S.A.A.)을 기회로 한국 조선·해운 산업의 경쟁력이 전 세계 시장에서 한층 더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