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4,000헥타르 넘는 산림을 태우며 동해안까지 번졌다. 강풍을 타고 번진 불길은 사흘 만인 지난 3월 25일, 영덕군의 지방어항인 노물항과 경정항까지 덮쳤다. 산불이 바닷가 어촌마을을 전소시킨 건 유례없는 일이었다. 배와 그물, 집까지 타버린 어업인들은 삶의 기반을 잃었다. 현장을 찾은 건 피해 발생 약 3주 뒤인 지난달 17일. 불은 꺼졌지만, 항구는 활기를 잃어 조용했고, 어민들은 생계와 복구 사이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
<현대해양>은 피해 어업인의 삶이 어디에서 멈췄고, 무엇이 그 복구를 가로막고 있는지 따라가 봤다. 동시에, 지역과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이 위기를 회복하려 하고 있는지도 함께 짚었다.
대피소, 멈춰선 삶이 머무는 곳

영덕터미널에서 박충권 강구수협 총무지도과장을 만나 함께 국립청소년해양센터 내 마련된 임시대피소로 이동했다.
이동 중 차창 너머로는 붉게 그을린 산이 이어졌다. 언뜻 보면 단풍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모두 불에 탄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아있는 나무가 없습니다. 전부 타버렸어요” 박 과장은 창밖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실제로 이동 간, 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광경이 펄쳐졌다. 나무뿐만 아니라 곳곳에 불타 알아 볼 수 없는 구조물들로 가득했다.
긴급으로 마련된 대피소는 취재가 제한된 공간이었다. 내부는 촬영도 허락되지 않았고, 생활공간이라는 특성상 외부인의 출입은 최소화돼 있었다. 대피소 밖 벤치에서는 김성식 강구수협조합장과 하중광 노물리 어촌계장과 한명의 피해 어업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 계장과 피해 어업인은 노물항에서 어업에 종사해왔다.
하 계장은 산불 피해 당시 상황을 조용히 풀어놓았다. “25일 저녁 5시 50분쯤이었습니다. 불이 산을 타고 내려와 도로까지 넘어왔어요. 그곳에서부터 시작돼 노물항까지 다 타버린 겁니다”라며 “저는 이번 화재로 모든걸 다 잃었어요 집, 차 두 대, 배까지 전소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강구수협은 이들 곁에 있었다. 김성식 조합장은 피해 직후부터 어업인을 지원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했다. “어선 피해자에게는 100만 원, 주택 피해자에게는 70만 원, 그리고 조합원 전원에게 30만 원씩 긴급 생활자금을 지급했습니다. 또 대피소 특성상 씻는 게 어려울 걸 감안해서 목욕쿠폰도 따로 준비해드렸습니다.”
하 계장은 말했다. “강구수협 말고는 해주는 데가 없어요. 정부는 말만 많고, 지금 우리가 얻어먹는 것 말고는 실질적으로 지원해주는 데는 없습니다.” 조합장의 모습은 어업인들 사이에서 ‘보이는 손’이었다. “조합장님은 매일 와요. 하루에 한 번, 많을 땐 오전·오후 두 번도 오십니다. 와서 얘기 들어주시고, 불편한 점 뭐든 다 챙기려고 하세요.” 하 계장은 말했다. 대피소 바깥의 대화는 짧았지만, 말보다 더 많은 것이 느껴졌다. 이곳은 이미 ‘생활’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저 불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사람들이, 당장의 생존을 위해 잠시 멈춰 선 곳이었다.
노물항, 불에 탄 배와 다시 나서지 못한 바다

이야기를 마치고 하 계장과 함께 노물항 현장으로 이동했다. 항구에 가까워질수록 도로 가장자리엔 검게 탄 어구 조각과 녹슨 금속 부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선착장 주변엔 불에 그을린 어선의 골격과 녹아내린 스크류, 산산조각 난 어구 잔해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하 계장은 어항 부지 한쪽으로 이끌며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이 자리에 제 배가 있었습니다. 저쪽도 다 배 있었던 자리예요.” 말없이 따라간 곳마다, 그가 설명하는 ‘작업장’, ‘창고’, ‘그물 쌓아두던 자리’들은 이제 형체조차 남지 않은 채 잔해로 덮여 있었다. 노물리 마을에서만 12척의 어선이 전소됐고, 이 중 상당수는 어업인의 생계 수단이었다.
“배가 다 FRP예요. 불 붙으면 그냥 끝입니다.” FRP(섬유강화플라스틱)는 어선에 많이 쓰이는 재질로 가볍고 단단하지만, 열에 매우 약하다. 불씨가 닿자마자 어선은 빠르게 타올랐고, 주민들은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하계장은 회상했다. 그는 산불이 어촌 항구까지 번졌다는 사실을 처음 들은 사람은 잘 믿지 못한다고 했다. “보통은 산불이 산에서만 난다고 생각하잖아요. 바닷가까지 내려왔다는 얘기 잘 안 믿습니다. 근데 이곳에 와보면 이해돼요. 항구 바로 뒤에 산이 붙어 있고, 항은 도로보다 더 낮아요. 위에서 바람 타고 불씨가 떨어지면, 바로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를 잃은 어민들 중 일부는 중고 어선을 구하기 위해 논산, 금산, 군산 등지까지 다녀왔다. 하 계장도 빚을 내 어렵게 배를 들여왔지만, 면허 조건, 감정평가 비용 등 다시 바다에 나가기까지 여러 절차적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구의 복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전소된 어선의 잔해와 어구들은 항만 구석에 모여 있었고, 소각이나 철거 작업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현장에는 중장비나 안내 시설이 보이지 않았고, 주민들 사이에선 복구 절차에 대한 문의와 기대가 엇갈렸다. 어구 피해는 보상 신청과 관련해 또 다른 난관이 됐다. 그물, 줄, 통발, 부표 등 어업 장비 대부분은 어촌 상점이나 소규모 거래로 현금 구입되는 경우가 많아, 영수증이나 세금계산서가 남아 있지 않은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피해 규모를 증명하기 어려워 보상 신청 자체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어민들도 적지 않았다. 하 계장은 “신청하라지만 증명할 게 없다 보니, 대부분 망설이는 분위기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산불 전날 바다에 넣었던 그물도 아직 그대로다. 배가 없으니 끌어올릴 수조차 없고, 어민들은 바다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물도 돈입니다. 지금은 그냥 두고만 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어민들은 다시 바다에 나서고 있었다. 노물항은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미역 수확의 재철이다. 복구가 채 이뤄지지 않은 항구, 불편한 작업 여건 속에서도 생계를 위한 조업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하 계장은 말을 아꼈지만,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였다.
“뭘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방법이 생기겠죠. 지금은 그냥, 있는 그대로 견디고 있는 겁니다.” 노물항은 불은 꺼졌지만, 그물도, 배도, 사람도 여전히 멈춰 서 있는 바다 위에 있었다.
불에 끊긴 길, 멈춰버린 경정항

그날 오후, 산불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경정항을 찾았다. 취재는 경정3리에서 시작해 2리, 1리 방향으로 도보로 이어졌다. 불에 타 검게 그을린 주택 잔해는 마을 길 양옆에 흩어져 있었고, 골조만 남은 집터와 파손된 구조물 위로 바람에 날린 재가 흩날렸다.
마을을 따라 걷는 길에는 ‘영덕 블루로드’ 표지석도 보였다. 영덕 블루로드는 동해안을 따라 조성된 약 66.5km 길이의 도보여행 코스로, 강구항, 축산항, 병곡면 등을 잇는 지역의 대표 생태관광 자원이다. 경정리는 이 블루로드의 4코스 구간에 해당하며, 이번 산불로 일부 산책로 데크가 소실되면서 현재 출입이 제한된 상태다. 지역 주민들은 “관광객 발길이 뚝 끊겼다”며, 길이 끊긴 이후 줄어든 유동인구를 실감하고 있었다.
경정3리는 특히 피해가 컸다. “여긴 산이 좌우로 둘러싸여 있어서요. 바람이 불면 양쪽에서 불이 들어와요.” 한 경정3리 주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불이 사방에서 덮치니 마당에 나와 불구경밖에 못 했어요”. 일부 주민들은 방파제로 대피했고, “배가 있는 사람들은 민간어선을 탔고요, 외국인 선원들이 나이 든 어른을 업고 도망간 집도 있었어요”는 말도 전해졌다. 실제로 경정3리에서는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수기안토씨가 어촌계장과 함께 밤늦게까지 마을 주민들의 대피를 도왔다. 당시 그는 “할머니 산에 불이 났어요, 빨리 나가셔야 해요”라고 외치며 잠든 주민들을 깨우고, 노약자들을 업고 방파제로 대피시켰고, 덕분에 마을 전원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후일담도 전해졌다.
이날은 마을 철거가 시작된 날이었다. 오전부터 경정3리 일대에서 본격적인 철거 작업이 시작됐고, 불에 탄 마을회관과 제당터가 철거가 됐고, 인근에 굴착기가 배치돼 있었다.
기자가 도착한 오후 무렵엔 작업은 일시 중단된 상태였으며, 현장에는 잔해와 대기 중인 장비들만이 남아 있었다.
현장에는 김광열 영덕군수도 방문해 철거 현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김 군수는 “도로변부터 철거를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항구 인접 구간은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고 말하며 경정3리 주민과 담화했다. 복구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 주민은 “이건 우리 세대가 다 복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딱 봐도 50년은 걸릴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마을의 생계도 사실상 멈춰 있는 상태다. 경정항은 대게잡이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올해는 산불 여파로 대게철이 조기 종료됐고, “배를 띄우는 집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업도 중단됐다. 주변 상권도 관광객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택시기사는 “산책로가 끊기니까 사람들이 안 와요. 밤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했다. 불은 꺼졌지만, 경정항은 아직 복구 이전의 시간 속에 서 있었다. 지역주민들은 그 시간을 조용히 견디고 있었다.

회복과 보상의 과제
다음날 영덕군청을 찾아 정제훈 영덕군 해양수산과장을 만났다. 그는 “현장 조사는 대부분 마무리됐고, 이제는 복구와 보상의 체계를 마련하는 단계”라며, 현재 군이 마주한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무엇보다 이번 산불 피해는 대부분이 사유재산에 집중됐다는 점,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어구와 장비에 대한 피해는 입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 “어구는 많게는 9,000만 원짜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10년 넘게 쓴 장비고, 구입 당시 영수증이나 세금계산서가 없어요. 신청서를 쓰기도 어렵습니다.” 그는 보상을 넘어선 대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영덕군은 현재 어구 피해에 대해 ‘보상’이 아닌 ‘어구 구입 사업 전환’ 방식으로 국비 지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해양수산부 및 경북도와 협의해 자부담 비율을 줄이는 쪽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산 구조도 군청에는 벅찬 수준이다. 정 과장은 “이번 피해액은 약 3,000억 원인데, 일반 재난복구 기준으로는 국비 50%, 지방비 50%로 나뉘고, 그중 약 700억 원이 군 자체 부담으로 책정될 수 있다”며 “우리 군 재정 자립도는 7~8% 수준인데, 이걸 어떻게 감당합니까”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지금의 구조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정 과장은 현재의 융자 중심 지원 구조가 실효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피해 어민들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방식은 융자가 아니라, 직접 보조 방식으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영덕군은 해양수산부와 기획재정부에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이번 복구가 지방 단위의 개별 행정 대응을 넘어서, 국가사업 체계 내에서 처리돼야만 실질적인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실제 영덕군은 중장기 복구를 위해 두 축의 국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정1·2·3리는 해양수산부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에 86억 원 규모로 건의 중이며, 노물항 등은 국토부의 재난복구사업 편입을 통해 기반시설 정비 및 정주 여건 개선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단순 복구를 넘어, 어촌의 환경과 삶의 틀 자체를 다시 짜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편, 생계 회복을 위한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수확 철을 맞은 미역 작업 어민들을 위해 군은 건조기 설치와 수협중앙회와의 수매 협의를 진행 중이며, 긴급 융자와 지원금도 이미 지급이 이뤄졌다. 정 과장은 말끝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제도적으로 책임 있게 대응해줘야 합니다”라며 “그게 없으면, 이 피해는 현장에서 수습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도 관련 지원 방안을 단계적으로 마련 중이다. 수산정책과에 따르면, 우선 보험에 가입된 어선에 대해서는 보험금 지급이 완료됐으며, 수협을 통해 1,500만 원 규모의 생필품 긴급 지원도 지난달 8일에서 10일까지 집행됐다. 이 외에도 어선 임대, 신규 건조 지원, 양식장 복구, 어구 구입 지원 등 다양한 복구 방식이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아직 피해 규모에 대한 세부 확정 절차와 재원 확보 과정이 진행 중이어서, 경영안정자금이나 재건지원 등 주요 항목은 구체적인 시행까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해수부 수산정책과 측은 “행정안전부의 피해 조사는 마무리됐고, 향후 예산 배정 및 세부 심의 과정을 거쳐 지원 규모가 정해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복구와 지원은 이제 행정적 조정과 제도 설계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현장에서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지만, 제도가 구체화되고 재원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회복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