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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23. 침몰선 인양 비용에 대한 가해 선주의 배상책임

  • 기사입력 2025.04.22 23:09
  • 기자명 이상협 변호사
이상협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상협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현대해양] 1. 들어가며

해운기업은 해상에서 선박을 이용하여 영업을 수행하므로 필연적으로 여러 종류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해운기업이 조우하게 되는 다양한 위험 중 가장 대표적인 위험이 바로 선박충돌이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달로 선박충돌 사고가 감소하는 추세에 있으나, 한번 발생하게 되면 선박이 전복되거나 침몰하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피해 선주는 가해 선주를 상대로 선박충돌로 인하여 입게 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게 될 것인데, 과연 피해 선주가 해사안전법,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이하 ‘공유수면법’) 등에 따라 부담하게 되는 선체 인양 비용까지 가해 선주가 배상하여야 하는지가 문제 될 수 있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선박충돌을 일으킨 가해 선주가 피해 선주에 대하여 선체 인양 비용 등에 대한 배상책임을 부담하는지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7다56455 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2. 사실관계

원고 A는 피해 선박의 선주였고, 원고 B, C는 피해 선박에 대한 보험자들이다. 한편, 피고는 가해 선박의 선주였다. 피해 선박은 2010. 4. 20. 여수시 근방 해상에서 가해 선박과 충돌하였고 이로 인하여 해수가 선내에 유입되어 침몰하였다. 여수해양경찰서장은 2010. 8. 24. 구 해상교통안전법 제9조 제3항, 제1항에 따라 피해 선박의 구난을 명하였다. 여수시장도 2010. 5. 7. 원고 A에게 피해 선박 인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서를 2010. 6. 21.까지 제출할 것을 지시하였고, 2014. 4. 3. 공유수면법 제6조에 따라 피해 선박의 제거를 명하였다. 그 후 원고들은 피고 소속 선원의 과실로 인하여 충돌사고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에 대하여 상법 제878조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원고 A가 주장한 손해 항목 중에는 피해 선박을 인양하기 위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1심은 원고 A의 선체 인양 비용 등 청구에 대하여, 관계 법령이 피해 선박의 소유자에 대하여 안전, 환경 등 공익을 위하여 선박 제거 등의 의무를 부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이 제출하는 증거들만으로 원고 A가 피해 선박을 인양하여야 할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손해가 현실적, 확정적으로 발생하였음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 원고의 선체 인양 비용 등의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8. 21. 선고 2012가합32190 판결).

제2심은 피해 선박에 대한 구난 명령 및 제거 명령은 여전히 그 효력을 유지하고 있고, 행정명령이 당연무효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 A는 피해 선박을 제거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고, 이로써 제거 비용에 상당한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여 선체 인양 비용 등의 청구를 인용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7. 10. 27. 선고 2015나26872 판결).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i) 원칙적으로 가해자가 행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자에게 어떤 행정처분이 부과되고 확정되었다면 그 행정처분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어 무효로 되지 아니한 이상 행정처분의 당사자인 피해자는 이를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어 그 이행을 위한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ii) 예외적으로 행정처분을 이행하기 어려운 장애 사유가 있고 행정관청에서도 이행을 강제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경우에는 그러한 행정처분의 이행 가능성과 이행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이어야 행정처분의 이행에 따른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행정처분의 이행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며 그 이행을 강행하여야 할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의 사정이 있고 부과된 행정처분이 취소나 철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경우라면, 행정처분 이행에 따른 비용 상당의 손해가 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시하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피해 선박에 대한 구난 명령 및 제거 명령이 그 효력을 유지하고 있고, 피해 선박의 인양이 어렵고 환경 오염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는 보고서들의 기재만으로는 위 각 명령을 당연무효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선체 인양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본 제2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4. 검토

침몰선 선주는 해사안전법, 선박입출항법, 공유수면법 등에 따라 침몰선을 인양하여 제거할 의무를 부담한다. 그리고 선주가 침몰선 제거 등을 위하여 지출하게 되는 비용은 선주상호책임보험에 의하여 담보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만약 선주가 침몰선을 제거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대집행하고 그 비용을 청구하게 된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 선박이 수심 약 90미터인 곳에 침몰하여 있었고 행정관청에서도 피해 선박의 구난 내지 제거를 명한 이후로 침몰선을 사실상 방치한 상태로 두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침몰선을 제거하기 위한 예상 비용은 무려 3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는바, 과연 피해 선주가 행정관청의 구난 명령 내지 제거 명령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선체 인양 비용 상당의 손해를 가해 선주에게 청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형식적으로 행정명령이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는 피해 선주의 손해가 현실적, 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고, 행정처분의 이행가능성과 이행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이를 이행하기 위한 손해가 현실적, 확정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기준을 통하여 일률적으로 선체 인양 비용을 손해의 범위에 포섭시키기보다는 구체적인 사안 별로 이행가능성 및 이행필요성을 따져 손해를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구체적 타당성을 중시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대상 판결의 입장은 향후 선박충돌 사고에 있어 선체 인양 비용에 대해서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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