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지난 2023년 도입된 선박안전관리사 자격 제도가 시행 3년 차를 맞이했다. 정부는 선박의 안전 관리를 강화하고 선박 및 사업장의 안전관리자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업계에서는 감독 구인난 가중, 경력자 이직 어려움, 실무와 동떨어진 시험 등 여러 문제를 지적한다.
자격 제도 취지와 현황
선박안전관리사 자격 제도는 선박안전관리를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도입된 국가전문자격 제도다. 「해상교통안전법」에 따라 2024년 1월 5일부터 △여객선 △총톤수 500톤 이상 화물선 또는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어획물운반선 및 이동식 해상구조물 △총톤수 100톤 이상 위험물 운반선 등을 운항하는 선박소유자 및 선박 소유자로부터 안전관리 업무를 위탁받은 자는 선박안전관리사 자격을 갖춘 안전관리책임자와 안전관리자를 반드시 선임해야 한다. 2023년 11월 첫 시험 시행 이후 현재까지 총 3회의 시험이 치러졌으며, 총 3,545명이 응시해 1,255명이 자격을 취득했다. 평균 합격률은 35.4%로, 급수별 합격자는 1급 154명(36.4%), 2급 174명(24.6%), 3급 927명(38.4%)이다.
이 자격시험은 1~3급까지 나뉘며, 3급은 응시자격에 제한이 없는 반면, 1·2급은 해사분야 관련 경력을 충족해야 응시할 수 있다.
한편, 자격시험 없이도 선박안전관리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특례 조항이 있다. 2026년 1월 4일까지 △기존에 선임된 안전관리책임자 또는 안전관리자로서 2년 이상 업무를 수행한 자 △해사안전 관련 심사업무 종사자 △해사안전감독관의 경우, 해양수산부에서 별도로 실시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평가에 합격하면 선박안전관리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인력난 심화, “젊은 감독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업계에서는 이 자격 제도의 시행이 오히려 선박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감독’ 인력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기존에는 승선 경력이나 관련 회사 경력을 인정받아 감독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반드시 선박안전관리사 자격증을 보유해야 한다는 요건이 추가되면서 채용이 한층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 선사에서 오랜 기간 선박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한 경우에도 국내에서 그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한 선박관리회사의 안전품질 담당자는 “외국 선사에서 오랫동안 선박안전관리 업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이직 시 그 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구직이 어려웠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경직된 제도가 해운업계 전반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선박관리업체 대표는 “젊은 감독 인력을 구하는 것이 원래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자격증까지 필수로 요구되면서 인력난이 더욱 심각해졌다”며 “이 제도가 오히려 업계의 인력 수급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외국적선에서 선박 관리 업무를 수행한 경력도 국내에서 인정해줘야 한다”며 “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단순히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보다는 실제로 선박안전관리 실무를 경험한 전문가들이 더욱 필요한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이 제도의 원활한 정착을 위해 과도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며 “현재 「해상교통안전법 시행령」에 따라 자격시험은 원칙적으로 연 1회 시행해야 하지만, 업계의 요청을 반영해 올해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연 2회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특례 교육 및 평가 기회를 확대해 자격 취득 부담을 완화하고자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특례 교육·평가의 경우, 올해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만큼 지난해 10회에서 올해 20회로 대폭 확대했다”고 덧붙였다.
시험과 실무의 괴리, “자격증 있다고 전문성 보장되나?”
선박안전관리 업무 경험자들은 현행 선박안전관리사 자격시험이 실제 업무 수행에 필요한 역량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무와의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선박안전관리사 자격시험은 필기와 면접으로 구성된다. 필기시험은 △선박관계법규 △해사안전관리론 △해사안전경영론 △선박자원관리론 및 △항해·기관·산업안전관리 중 선택과목으로 이루어진다. 1·2급의 경우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면접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3급 이상의 항해사·기관사, 산업안전기사 또는 산업안전지도사 자격을 보유한 응시자는 선택과목이 면제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러한 시험 방식이 실무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한 선박관리회사의 공무 담당 팀장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실무에 필요한 지식보다는 단순 암기 위주의 공부가 많았다”며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곧바로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험 문항이 보다 실무 중심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선박관리회사 대표 K씨는 “자격시험 문제 출제위원이 주로 해양대학 교수나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들로 구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박안전관리 업무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출제위원들이 문제를 내다 보니, 실무에 필요한 문항보다 이론 중심의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 선박관리회사의 해사팀장 역시 “실무 경험이 부족한 출제위원들이 자신의 전공이나 강의 과목을 바탕으로 시험 문제를 만들다 보니, 자격증의 취지인 ‘전문성 강화’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며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을 평가할 수 있도록 시험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 개선 방향, 실효성 있는 평가 방식 도입해야
선박안전관리사 자격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업계의 의견이 일치하지만,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먼저, 시험 방식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필기시험에서 단순 암기형 문제를 줄이고, 실무 적용이 가능한 서술형 문제를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면접에서도 실무 사례를 기반으로 한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안전품질 담당 팀장은 “필기시험에서 4지선다형 문제뿐만 아니라 실무와 연관된 서술형 문제를 포함하고, 면접에서는 응시자의 실무 경험과 문제 해결 능력을 심층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라면 보다 실질적인 역량 검증이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직무별·선종별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자격시험은 범용적인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 선박안전관리는 공무·안전품질·해무 등으로 세분화돼 있어 보다 전문적인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선박관리회사 대표는 “각 업무별 특성이 다른 만큼, 선종별로도 심화된 평가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효성 없는 제도는 업계에 부담만 될 뿐”
한 업계 관계자는 “실효성이 없는 자격시험은 결국 현장에서 불필요한 자격증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나아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자격증 장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는 특정 관계자의 의견만 듣지 말고, 업계 실무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실질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