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강력한 문명국가의 조건은 해양패권이었다. 지중해의 강자 로마제국에서부터 신항로 개척시대의 주역 스페인 제국, 그리고 전 세계 해양 패권을 장악한 미국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언제나 교역과 안보의 중심이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우리나라가 쌓아 올린 부(副)와 국제적 위상 역시 많은 부분을 바다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가 바라보는 우리나라는 세계 2위의 조선업과 세계 6위의 해운력을 가진 해양국가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물동량 97% 이상이 바다를 거친다. 글로벌 해양 리더십을 구축하고, 바다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해양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과제다.
새로운 도전 맞는 글로벌 해양 질서
냉전 질서가 해체되고 자유무역이 융성했던 지난 30년간 세계의 바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 안전한 항행과 교역이 보장되었으며, 평화로운 개발과 조업 활동이 전개됐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또한 안정적인 해양 질서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그러나 글로벌 해양 질서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 전쟁, 보호무역 확산으로 인한 국제정세 불안, 미·중·러의 패권경쟁으로 ‘바다의 평화’는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극항로 등을 염두에 둔 미(美) 트럼프 행정부의 그린란드 진출 시도와 후티 반군의 위협으로 인한 수에즈 운하 운송 차질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제는 바다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할 시기다. 기후위기 대응과 해양환경 보호, 안전하고 깨끗한 해상운송 구축 등 세계가 당면한 과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 특히 조선업과 해운업 강국이자 수산물 소비 대국인 우리나라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해양 질서를 주도할 충분한 잠재력과 절박한 필요성을 갖고 있다.
올해 열리는 두 해양 국제행사
올해 열리는 두 개의 해양 분야 국제행사는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기회이다. 이달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인 ‘제10차 아워 오션 콘퍼런스(Our Ocean Conference, OOC)’와 6월 프랑스 니스에서 개최될 ‘제3차 유엔 해양 총회(UN Ocean Conference)’는 향후 수년간 새로운 해양 질서를 만들어갈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부산에서 열리는 OOC는 전 세계 100여 개국의 정부, 비영리단체(NGO), 기업 대표 등 약 1,000명의 글로벌 리더들이 참석해 △해양오염, △해양보호구역, △기후변화, △지속 가능한 어업, △해양 경제, △해양 안보 등 6가지 기본 의제를 논의하는 중요한 행사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는 개최국으로서 △해양 디지털이라는 특별의제를 제시하기로 했다. 새로운 해양질서 구축을 위한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이니셔티브를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개최국으로서 OOC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준비와 효과적인 의제 설정, 활발한 외교활동이 필요하다. 단순히 ‘해양 디지털’이라는 개최국 특별 의제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주요 기본 의제에서 우리만의 관점을 더하고, 그 실력을 충분히 보여주며 설득해야 한다.
대표 의제, 녹색해운
조선·해운 강국으로서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의제 중 하나가 바로 ‘녹색해운’이다. 녹색해운은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탄소 배출을 줄이고, 막대한 선박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정책과제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부산항, 울산항은 미국의 시애틀·타코마항과 ‘녹색해운항로 구축 시범사업’을 펼쳐나가기로 협약을 맺었다.
필자는 OOC와 유엔 해양 총회를 앞두고 우리나라의 녹색해운 주도권 확보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녹색해운항로 구축지원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은 항구에서 항구까지 해상운송의 전(全) 과정에서 ‘탄소 배출 제로(zero)’를 달성하는 녹색해운항로의 구축을 위한 인프라 및 연구개발 투자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달 개최되는 OOC에서 기후 위기 전문 NGO인 ‘기후솔루션’과 국책연구기관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전기 추진 선박과 연안 생태계 보호에서의 한국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부대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필자 또한 행사에 초청받아 세계 각국의 해양정책 관계자들에게 우리나라의 전기 추진 선박 정책 및 연안 녹색해운항로의 비전에 대해 연설하게 됐다.
앞으로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도 글로벌 해양 리더십 확보를 위한 활발한 외교활동을 이끌어 갈 것을 약속드린다.
오는 6월 프랑스 니스에서 개최될 제3차 유엔 해양 총회에는 부산 OOC의 성공적인 결과물을 양손 가득 들고 가야 할 것이다. 특히 OOC에서 논의된 해양안보와 기후 대응 분야 등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간 의제들을 국제협약의 기초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새로운 해양 질서에서 우리나라의 국익과 역할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과 실효적 정책 역량 모두를 제대로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OOC 개최를 앞두고 우리나라가 동아시아 최초로 ‘글로벌 해양 조약(BBNJ)’ 비준을 성사한 것처럼, 유엔 해양 총회에 앞서 우리의 해양분야 정책을 강조할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필자는 6월 유엔 해양 총회 참석 전까지 국회가 세계 최초로 ‘녹색해운항로 구축지원 특별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것을 제안한다. ‘깨끗하고 안전한 해운항로 확보’라는 우리나라의 주력 과제를 세계에 내세울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 성숙한 리더십 보여야
새로운 해양 질서를 주도하기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나라가 올해 개최되는 두 차례의 국제 해양 행사에서 갈등보다는 평화를, 패권보다는 국제협력을 끌어내는 성숙한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전 세계로부터 박수받는 글로벌 해양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2025년을 대한민국 글로벌 해양 리더십 확보의 원년(元年)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와 국회, 기업과 NGO가 하나가 되어 힘을 모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