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1. 당사자
부산고법 2024. 7. 17. 선고 2023나55750 판결
원고(항소인) E, F, G, H 등 16명(대한민국 국민)
피고(피항소인) A 주식회사(일본국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운영자)
2. 사실관계
원고들은 부산광역시 또는 김해시에 거주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고, 피고는 일본국 법령에 의하여 설립되고, 2011. 3. 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일으킨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운영자이다.
피고는 2021. 4.경 공표된 일본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일본국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C원자력발전소에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 등을 이용해 일정 정도 정화 처리한 물질(이하 ‘이 사건 물질’이라고 한다)을 2023. 8. 24.경부터 위 물질을 여러 차례에 걸쳐 해양으로 방류하였다.
3. 법원의 판단
원고들은 런던의정서에 기한 청구, 공동협약에 기한 청구, 민법 제217조 제1항에 기한 청구를 선택적으로 청구하였다.
원고들은 런던의정서에 기한 청구를 주위적 청구로, 나머지를 각 예비적 청구로 구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선택적 청구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또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1) 피고는 일본에 주된 사무소를 두고 영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사무소 또는 영업소를 두거나 집행 가능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2) 이 사건 소로써 방류금지를 구하는 이 사건 물질과 설비 등은 모두 일본에 소재하고, 방류행위 역시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본안판단을 위해서는 이 사건 물질 및 관련 시설 등에 대한 검증 등의 절차가 필요하나, 제1심 법원이 위와 같은 절차를 실효적으로 취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 설령 원고들이 승소판결을 받더라도 이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일본 법원의 외국판결에 대한 승인절차를 거쳐야만 할 것인데, 이를 승인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판결의 실효성이 불투명하다.
4) 피고가 우리나라에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거주하는 국민이 이 사건 각 조약 및 민법 제217조 제1항에 기하여 우리나라 법원에 피고를 상대로 행위금지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5) 민법 제217조 제1항에 기한 생활방해 금지청구의 소 역시 부동산에 관한 소의 일종으로 민사소송법 제20조 부동산에 관한 소의 특별재판적 적용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방류금지를 구하는 대상물과 그 시설은 일본에 존재하는 점, 생활방해금지의 소를 제기한 경우 특별재판적이 인정되어 우리나라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다고 본다면, 국제재판관할권을 무제한적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6) 민사소송법이 법인인 피고의 주된 사무소, 영업소를 보통재판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적극적 당사자인 원고에게 피고의 주된 사무소 또는 영업소가 있는 법원에 소를 제기하도록 하는 것이 관할 배분에서 당사자의 공평에 부합하기 때문인바, 이 사건 각 조약이 한, 일 양국에서 공통으로 발효된 것과는 무관하게 실질적 관련성을 인정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국제재판관할에서도 피고의 주된 사무소, 영업소가 소재하는 일본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공평에 부합한다. 나아가 조약을 근거로 어느 체약당사국의 국민이 직접 다른 체약당사국의 국민을 상대로 금지청구 등의 권리를 창설한 것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체약당사국 법원이 당해 분쟁에 관하여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규범으로 볼 수 없다.
7)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 및 1982년 12월 10일자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 제11부 이행에 관한 협정(이하 ‘해양법협약’이라 한다.) 제56조는 배타적경제수역에 대한 연안국의 주권적 권리를 규정하고 있고, 제73조 제1호는 연안국이 위와 같은 주권적 권리 행사의 일환으로 배타적경제수역에 무단 침입한 외국 선박 등을 검색, 나포 및 사법처리할 수 있다는 규정이며, 제229조는 해양환경 오염으로 인한 손해에 관하여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규정일 뿐, 이 사건 소와 같은 금지청구의 소의 국제재판관할권 분배에 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8)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권 및 생명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하여 아무런 제한 없이 우리나라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을 확장할 수는 없고, 그 경우에도 당사자의 공평, 편의, 예측가능성, 재판의 적정, 신속, 효율, 판결의 실효성 등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개별 사건에서 실질적 관련성 유무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여야 하는 점, 헌법 제27조에 정한 재판받을 권리는 ‘반드시 모든 사건에 관하여 우리나라 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제사법에 정한 국제재판관할에 관한 규정 및 법리가 규율하는 바에 따라 우리나라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되는 사건에 관하여 우리나라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4. 결론
국제사법 제2조 제1항은 “법원은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는 경우에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 이 경우 법원은 실질적 관련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국제재판관할 배분의 이념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실질적 관련’은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을 정당화할 정도로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과 관련성이 있는 것을 뜻한다. 이를 판단할 때에는 당사자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과 경제 등 국제재판관할 배분의 이념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당사자의 공평, 편의, 예측가능성과 같은 개인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재판의 적정, 신속, 효율, 판결의 실효성과 같은 법원이나 국가의 이익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국제사법 제2조 제2항은 “법원은 국내법의 관할 규정을 참작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의 유무를 판단하되, 제1항의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국제재판관할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라고 정하여 제1항에서 정한 실질적 관련성을 판단하는 구체적 기준 또는 방법으로 국내법의 관할 규정을 제시한다. 따라서 민사소송법 관할 규정은 국제재판관할권을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대법원 2019. 6. 13. 선고 2016다33752 판결 등 참조).
본 판결은 피고의 소재지 및 재산 보유 여부(민사소송법 제5조, 제11조), 행위 발생지(동법 제18조), 예측가능성, 증거 수집의 어려움 및 판결의 실효성, UN해양법 협약 자체가 국내 법원에 관할권을 직접적으로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우리나라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국제재판관할권의 전통적인 원칙에 충실한 판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통적 국제재판관할권은 국가 주권과 사법권의 범위를 존중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시각은 글로벌 환경 문제의 특수성과 피해자의 권리 보호 측면에서 한계를 보인다. 앞으로 이러한 국제적 분쟁에 대해 국내 법원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법적 체계의 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