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유치환은 1908년 7월 14일 거제시 둔덕면에서 출생하여 3살 때 통영으로 이주해서 통영에서 성장했다. 통영공립보통학교 4학년을 수료하고 일본 토요야마(豊山)중학교에 유학하였다. 1926년 귀국하여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였으며,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했고, 시를 쓰면서 한때 사진관을 경영하기도 했다. 1931년 『문예 월간』에 첫 작품인 「정적」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그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중 1937년(29세) 부산의 화신지사를 그만두고 통영으로 귀향했다. 통영에서 향교 재단이 운영하던 통영협성상업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이 시절 유치환은 발행, 편집인이 되어 같은 해 7월 1일 부산 초량에서 동인지 『생리(生理)』를 창간하며 1939년 첫 번째 시집인 『청마시초』를 발간했다. 1940년 교사를 사임하고 만주로 피신했다가 해방 후 귀국하여 다시 교육계에 투신, 충무/부산/경주 등 지방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였으며 훗날 안의중학교 교장을 시작으로 경주고등학교장, 경주여자고등학교장, 경남여자고등학교장, 대구여자고등학교장,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現 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장까지 역임했다.
시집 『청마시초』의 구성은 첫 작품이 「박쥐」이고 마지막 작품은 「가마귀의 노래」이다. 이 시집은 이 두 짐승의 불길함과 죽음상징의 흑색 모티프가 수미일관하고 있다. 작품의 이런 배치를 오양호 교수는 불쾌한 짐승이 설치는 듯한 암담한 현실을 시집구성과 아나키즘의 사유를 통해 표상한 시적 진실이라고 해석했다. 또 ‘흑기연맹’에서 ‘흑풍회’까지 허다한 단체(24개)가 흑색으로 표상하던 결사정신과 닿는 미래부재의 식민지 현실의 한 상징적 투영이라고 보았다. 작품 「정숙」, 「소리개」에 표상된 자유, 평등은 청마의 사상적 배경인 아나키즘과 연계된 사유의 결과이고, 『청마시초』의 표박(漂迫)의 포에지 역시 아나키 상태를 동경하는 시의식이 마침내 발견한 현실극복의 사유라는 것이다(오양호, 「청마시초(靑馬詩鈔)」의 사상적 배경 고찰」). 『청마시초』에는 「동해안에서」, 「추해(秋海)」, 「항구(港口)의 가을」, 「港口에 와서」 등 네 편의 바다시가 실려있다. 먼저 「동해안에서」를 살펴보자.

이 시에서 나타나는 분위기는 바다가 내보이는 역동성이나 생명력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白日은 中天에 걸리어 나의 無聊에 연하고/茫茫한 潮水는 헛되이 干滿을 거듭하야 地表를 씻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무료>와 <헛되이>라는 두 시어에서 시인의 마음의 상태를 읽어낼 수 있다. 한 마디로 외롭고 공허함이다. 동해안 바닷가에서 시인은 <寂寥의 空洞> 속에 놓여 있는 상태이다. 동해 바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나 이미지는 없다. 단지 <호올로 이 無人한 白沙우에>에서 <걸인처럼 인생을 懶怠하>고 있을 뿐이다. 현실로부터 쫓겨나 <오로지 無念한 孤獨>의 주체가 되어 있다.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시인의 삶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마음 상태는 「秋海」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가을 바다의 분위기도 <浩浩한 水天에 落寞함이 瀰滿하>여 쓸쓸함이 짙게 묻어난다. 뿐만 아니라 <빛을 거둔 차거운 물결의 주름주름/그지없이 秋風은 스미고/해는 낮게 半空을 직힐뿐>이다. <호울로 낙시를 드리>우고 <조고마한 銀빛 고기 있어/물우에 올러와 내 손바닥에/이 외롭고도 고요한/가을의 마음을 살째끼 찌꺼리>는 고독한 시적 분위기만 전달하고 있다. 「港口의 가을」과 「港口에 와서」도 이러한 방랑자의 고독함을 항구에 있어야 할 배의 부재와 어부들의 부재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港口의 가을」에서는 항구에 있어야 할 배들이 몇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빈 공간을 노래하고 있고, 「港口에 와서」는 어부들이 시라지고 배들만 방축에 매어 둔 항구를 그리고 있다. 이 항구는 시작 연대로 보아 부산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날은 갈매기도 날지 않고 뱃고동도 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부들은 어디로 다 피하였는지 흔적도 없고 <오직 그늘진 倉庫 뒤 낮잠자는 젊은 거지>만 만나고 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인은 바다를 통해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바다를 전전하는 외롭고 고독한 자로, 어선과 어부들로 북적대고 생동해야 할 항구는 인적이 사라진 폐허같은 빈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