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어판장 ‘부산공동어시장’에서는 하루에도 수백만 톤의 수산물이 전국 각지로 유통된다. 시장의 하루는 꼭두새벽부터 시작된다. 특히 취재 당일에는 거센 비가 내렸지만, 시장 속 노동자들의 불같은 열정을 꺼트리진 못했다. <현대해양>은 우리 식탁에 오를 수산물이 산지에서 소비지까지 도착하는 여정을 따라가 보았다.
양륙과 동시에 시작되는 분주한 선별과정
부산공동어시장에 도착한 새벽 4시 이미 조업을 마친 많은 선박들이 입항해 있었다. 선원들은 어획물이 가득 담긴 그물을 하나둘 쏟아내기 시작한다. 양륙이 끝난 어획물은 어시장 야간 근로자의 분주한 손길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선별과정이다. 어획된 생선을 크기·종류별로 선별하여 플라스틱 어상자에 담는 과정을 말한다. 이 선별과정을 맡는 근로자들은 웃음과 열정으로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 공동어시장에서는 도합 1,320,014kg, 금액으로 27억 2,900만 원 규모의 수산물이 어획됐다. “이 어마 무시한 양을 어떻게 다 선별할까”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괜한 생각이었다. 선별하는 근로자들의 손길을 너무 얕봤던 것이다. 정리되지 않은 어획물들은 50여 분만에 모두 종류·크기별로 정갈히 정리돼 어상자에 담겨 차분히 경매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선별과정은 대게 선망어업을 통해 들어온 고등어, 전갱이, 방어, 정어리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새벽 2시부터 시작된 선별을 마친 야간 근로자들은 뿌듯한 미소와 함께 퇴근하며, 주간 근로자들에게 업무를 인계한다.


잠깐의 숨죽임 후 시작되는 긴장감 넘치는 경매 레이스
분주했던 선별과정이 끝난 새벽 5시, 시끌벅적한 부산공동어시장에 어울리지 않는 침묵이 감돌았다. 이윽고 모자에 번호를 새긴 중도매인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도매인들은 오늘 경매에 나올 수산물을 눈으로 직접 보며 선도를 확인하거나, 무게를 측정하는 등 꼼꼼히 체크하며 각자의 고객층에 맞는 낙찰을 시도하기 위해 경매를 사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시점에서 오늘 취재를 도와줄 ‘부산공동어시장 85번 중매인’을 만나, 어판장에서 일어나는 경매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중매인은 경매를 낙찰받은 수산물을 유통하며 수수료를 받는 형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고 한다.
경매 시작 시간인 아침 6시가 가까워지자, 방송으로 경매를 알리기 시작하고, 곳곳에서 종이 울려대기 시작한다. 사전에 경매에 참여할 구역 체크를 마친 중매인들 서둘러 각자 경매가 처음 시작되는 구역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85번 중매인은 “사전에 체크를 하더라도 중도매인들은 대게 모든 구역에서 이뤄지는 경매에 참여한다”며 “경매의 시작과 끝을 직접 다 보는 거죠”라고 말했다.
약속의 6시가 되자 경매가 진행되는 구역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붐비는 상황이 펼쳐진다. 특히 크기가 좋고, 상품성이 좋은 물건들이 있는 곳에선 중매인이 북새통을 이뤘다. 경매는 경매사·수화원·속기사가 3인 1조가 되어 진행한다. 수화원이 상자를 지정해 경매 대상을 알리고 경매사는 추임새로 원산지, 품목, 가격 등을 읊는다. 제시된 정보와 함께 낙찰을 원하는 중매인들 하나둘 팔과 손가락을 절도 있게 흔들며 경매에 참여한다. 이들이 가격을 제시하고 낙찰되는 상황이 이어지면 속기사는 빠르게 관련 정보를 재빨리 써 내려간다. 사람이 붐벼 혼잡스러운 상황에서 진행되는 경매지만, 경매사의 능숙한 진행에 힘입어 10분도 채 안 걸려 마무리가 된다. 낙찰된 구역에서 빠져나오면 마치 ‘여행지에서 가이드를 따라가는 사람들’처럼 경매사를 따라 중매인들이 모두 발 맞춰 다음 경매 구역으로 이동한다.
같은 배에서 잡힌 물량을 2명 내지 3명의 중매인이 같이 낙찰받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때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모두 한자리에 모여 ‘가위바위보’를 외치는 것이다. 이때 이긴 중도매인이 선제적으로 물건을 챙길 수 있는 우선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가위바위보에서 승리를 쟁취한 85번 중매인은 “같이 낙찰받은 물건 중에서도 조금 더 신선한 것을 챙길 수 있으니, 이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라고 말했다. 이렇게 치열하면서도 유쾌한 경매는 아침 8시에 마무리됐다.

내륙으로 향하는 수산물
혼잡스러웠던 경매가 끝난 아침 8시에 중매인과 주간 근로자들은 낙찰받은 수산물을 유통경로에 맞게 포장하기 시작한다. 공동어시장에서 유통되는 수산물은 70% 가량이 선망에서 잡힌 고등어이다. 낙찰받은 수산물의 운명은 이미 중매인에 의해 결정된 상태다. 생물로 소비지로 유통이 되거나, 냉동해 창고에 보관되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포장하는 방식부터 차이를 보인다. 생물로 소비지로 유통되는 수산물은 포장 비닐로 감싼 후 스티로폼으로 포장을 한다. 그리고 선도 유지를 위해 생물 위에 얼음을 부어 보관한다. 생물로 소비지까지 긴 여정을 떠나야 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수산물 표면에 수분감과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포장 간 지속적으로 염수를 뿌리기도 한다.(선도유지를 위해 얼음과 염수를 뿌리는 근로자들) 반면, 냉동해 창고로 보관되는 물건은 종이상자에 담아서 보관한다. 아무래도 부산공동어시장 인근에 위치한 냉동창고로 이동하기 때문에 생물로 유통하는 물건에 비해 단열 포장을 간소하게 한 것이다.
포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로 진행될 즈음에 곳곳에서 여러 가지 크기의 트럭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준비를 마친 수산물이 주인을 찾아가기 위한 여행을 위해 트럭에 적재되는 것이다. 운송기사가 각각 유통하는 지역에 해당하는 구역으로 가 차량을 주차하는 동시에 관계자들이 와 물건 적재를 시작한다. 적재가 완료된 트럭은 다음 구역으로 이동해 같은 목적지로 가는 물건을 계속해서 적재한다. 수산물로 가득 찬 트럭은 그제서야 도매상이 있는 각 지역 도매지로 갈 준비를 마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출발한 수산물의 여정이 시작됐다. 오전 11시 50분, 포장과 적재를 끝낸 트럭들이 하나둘 시동을 걸었다. 기자는 서울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으로 향하는 ‘운송기사 오병태 기사’의 트럭에 동승해 수산물의 실제 운송 과정을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트럭에는 생물로 유통되는 고등어가 담긴 스티로폼이 가득이었다.
부산에서 출발한 수산물은 보통 서울의 네 개 시장(구리, 노량진, 가락시장, 외발산)을 거쳐 소비지로 향한다. 하지만 이날은 가락시장만 들르는 일정이었다. “오늘은 일정이 수월한 편이에요. 평소 같으면 구리, 노량진까지 돌아야 하는데, 가락시장만 가니까 훨씬 낫죠.” 오 기사는 목적지를 확인하며 여유롭게 말했다.

출발이 빠른 날이었다. 적재가 12시 이전에 끝났기에 곧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물량이 많거나 작업이 지연되면 12시부터 1시까지 공동어시장 내에서 일제히 휴식을 하므로, 출발이 2~3시까지 늦어질 수도 있다. “오늘 같은 날은 운이 좋은 겁니다. 늦어지면 하역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오 기사는 웃으며 말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았다. “서울 갈 때마다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길이 미끄러우면 속도를 줄여야 하고, 그러면 도착 시간도 자연스럽게 늦어지죠.” 오 기사는 도로를 주시하며 말했다.
운송 중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너무 바쁠 때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그럴 때는 초코파이나 커피 같은 걸로 간단히 때우죠.” 그는 옆에 놓인 간식거리를 가리켰다. “일정이 여유 있으면 식사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때우는 날도 많아요.”
서울로 올라가는 물량이 많지 않은 날에는 인천으로 향하는 차량에 서울 물건도 함께 실려 운송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은 가락시장으로 직행하는 일정이었다.
트럭은 저녁 6시 30분경 가락시장에 도착했다. 도착과 동시에 오 기사는 빠르게 하역 접수를 했고 가락시장 관계자들이 나와 빠르게 하역작업에 돌입했다. 하역과 동시에 수산물들은 시장 안으로 옮겨졌다. 이렇게 옮겨진 수산물은 다음날 새벽 경매를 통해 상인들에게 판매가 된다. 상인에게 판매된 수산물은 그제야 우리 식탁으로 오기 위한 여정을 마무리한 셈이다.
하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오 기사는 숨을 고르며 트럭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서울까지 올라오면 하루 자고 내려가야죠. 바로 다시 출발하면 몸이 못 버팁니다.” 그는 트럭 한편에 마련된 침낭을 가리켰다. “이 안에서 자고 내일 다시 출발하죠.”
그는 하루를 트럭에서 보내며 다음 일정을 준비했다. 이곳에서의 휴식이 길지 않다는 걸 알기에, 짧게라도 몸을 누이며 다음 날의 운행을 대비해야 했다. 그렇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며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출발한 수산물은 선별, 경매, 포장, 운송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으로 향한다. 이 과정은 하루도 멈추지 않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 속에서 이어진다.
이번 취재를 통해 새벽 어시장의 분주한 움직임, 경매장의 긴장감, 그리고 서울까지의 긴 운송 과정이 단순한 유통이 아닌 치열한 노동의 연속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시장 노동자, 중도매인, 운송 기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흐름을 이어가며 한국 수산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시작된 수산물이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그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이 있다. 그들의 노력이 있기에 오늘도 신선한 수산물이 전국으로 공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