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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다시 25.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에 나타난 바다

  • 기사입력 2025.02.19 23:05
  • 기자명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 고신대 석좌교수
1925년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출처_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25년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출처_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대해양] 김소월(金素月, 1902년 9월 7일 ~ 1934년 12월 24일)은 일제강점기의 시인이다.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이지만, 호인 소월(素月)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934년 12월 24일 평안북도 곽산 자택에서 향년 33세로 병사한 그는 서구 문학이 범람하던 시대에 민족 고유의 정서에 바탕을 둔 시를 쓴 민족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출생하였고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훗날 평안북도 곽산군에서 성장하였다. 1904년 처가로 가던 부친 김성도는 정주군과 곽산군을 잇는 철도 공사장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당한 후 정신 이상자가 되었다. 이후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조부의 손에서 컸다. 김소월에게 이야기의 재미를 가르쳐 주어 영향을 끼친 숙모 계희영을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평안북도 곽산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평안북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조만식과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될 김억을 만났다. 김억의 격려를 받아 1920년 동인지 《창조》 5호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다.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김소월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25년에는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을 발간했다. 1916년 오산학교 재학 시절 고향 구성군 평지면의 홍시옥의 딸 홍단실과 결혼했다.

3·1 운동 이후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해서 졸업했다. 1923년에는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 무렵 서울 청담동에서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영대》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왔으나, 이 일이 실패하자 처가인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구성군 남시면에 개설한 동아일보 지국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다. 본래 예민했던 그는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술로 세월을 보냈으며, 친척들한테도 천시를 받았고 일본의 압박으로 부인과 동반자살 시도까지 했다.

류머티즘으로 고생을 하다가 1934년 12월 24일 평안북도 곽산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3세였다. 죽기 이틀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 라면서 쓴웃음 지으며 우울해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소월이 자살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김소월의 증손녀가 증언한 바로는, 김소월은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아편을 먹곤 했다고 한다. 그것으로 인해 아편 과다복용의 후유증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김소월 시인은 그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에서 바다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2행 5연으로 이루어진 「바다」는 김소월의 모든 시가 지닌 것처럼 정연한 리듬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모든 연의 마지막을 <바다는 어디>로 계속 끝까지 반복함으로써 그의 리듬의식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자신이 노래하는 바다의 이미지를 5개 연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김소월이 노래하는 바다는 첫 연에서는 <뛰노는 흰물결이 일고 또 잣는/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바다의 일상성을 일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파도가 일고 잦아지는 모습을 내보이는 곳이 바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붉은 풀>이 자라는 곳으로 바다를 인식하고 있다. 바다에 생식하는 바닷말 중 가장 흔한 것이 홍조류이다. 그래서 시인은 우선적으로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풀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연에서 노래하는 바다는 <고기잡이꾼들이 배우에 앉아/사랑노래 부르는 바다>이다. 시인이 인식하는 바다는 역시 배를 탄 고기잡이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데 김소월 시인은 그 고기잡이들이 배 위에서 사랑 노래를 부르는 곳임에 주목하고 있다. 고기잡이배의 주체들은 고기잡이라는 고된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지만 시인이 주목하는 지점은 그 고된 노동이 아니라 사랑 노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김소월이 이 시에서 노래하는 바다는 현실 삶의 바다라기보다는 그가 노래하고픈 바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노래하는 세 번째 연의 바다는 <파랗게 좋이 물든 남빛 하늘에/저녁놀 쓰러지는 바다>로 한 장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채색된 공간으로 이미지화되고 있다. <저녁놀 쓰러지는 바다>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음은 바다가 연출하는 가장 아름다운 한 장면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연의 바다는 <끝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떼를 지어 쫓니는 바다>로 바다 물새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 연에서는 <건너 서서 저 편은 딴 나라이다/가고 싶은 그리운 바다>라고 맺음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이 결국 가고 싶은 나라는 그리운 바다인데 그곳은 딴 나라라는 것을 노래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즉 시인이 지향하는 바다는 어쩌면 고통스런 현실 바다를 넘어선 붉은 풀이 자라고, 사랑 노래가 있으며, 아름다운 저녁놀이 펼쳐지고, 물새들이 떼 지어 나는 이상적 공간을 상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다를 삶의 현장으로 삼고 사는 바다 사람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음을 「漁人」에서 노래하고 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어부들은 파도가 있고 위험이 있는 바다를 향해 언제나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오늘도 저 넘어 편 마을에서는/고기잡이 배 한 쌍 길떠났다고> 노래한다.

이들이 항해하는 바다는 바닷놀이 무서웠지만 그래도 또 나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어부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현실적인 바다가 이러하기에 시인은 「바다」에서 무서운 바다놀이 없는 이상적인 바다를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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