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1. 당사자
서울고등법원 2021. 11. 25. 선고 2021나2010140 판결
원고(항소인) B사(국내 운송회사)
피고(피항소인) D사(스위스 운송회사)
2. 사실관계
한국의 A사가 노르웨이의 E법인으로부터 헬리콥터 연료 주입 기계를 FOB 조건으로 수입하였는데, 이 화물을 운송하기 위해 B사(원고)가 독일의 운송주선업체 C사 및 스위스의 해상운송업체 D사(피고)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피고가 C사에게 보낸 견적서에는 ‘각 견적은 갑판적 선택(Deck Option)으로 적재되고 선박으로 운송된 화물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유효’하다는 점과 ‘오픈 탑 컨테이너와 플랫 랙 컨테이너를 위한 조항(Clauses for Open Top and Flat Rack Container) - 송하인의 위험으로 갑판 적재(Deck Shipment at Shipper’s Risk)’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 또한 피고가 제시한 거래약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운송인에 의하여 제기되는 모든 소송은 배타적으로 런던고등법원에서 제기되어야 하고, 영국법(English Law)이 배타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 관하여 특별히 합의한다”
그런데 화물이 갑판 적재 중 포장 손상으로 인해 해수에 노출되었고, 이후 한국 도착 후 창고 보관 중 녹손이 발생하였다. 이에 A사가 원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원고가 이를 지급하고 다시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였다.
3. 이 사건의 쟁점
[1] 이 사건의 재판관할이 전속적으로 런던고등법원에 있는지 여부
[2] 운송인의 갑판적 자유약관에 따른 면책 혹은 포장불충분에 따른 면책 여부
4. 법원의 판단
[1] 재판 관할권 문제
이 사건에서 가장 먼저 쟁점이 된 것은 재판 관할권 문제였다. 피고는 운송계약 약관에 영국 런던고등법원이 전속 관할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대한민국 법원의 관할권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대한민국 법원의 관할을 배제하고 외국의 법원을 관할법원으로 하는 전속적인 국제관할의 합의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당해 사건이 대한민국 법원의 전속관할에 속하지 아니하고, 지정된 외국법원이 그 외국법상 당해 사건에 대하여 관할권을 가져야 하는 외에, 당해 사건이 그 외국법원에 대하여 합리적인 관련성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4. 3. 25. 선고 2001다53349 판결)을 인용하며, 전속 관할 조항이 기재되어 있는 것만으로 해당 내용이 원고와 피고 간에 합의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사건의 실질적 관련성, 즉 대한민국에서 화물이 도착하고 손해가 발생했으며 원고와 A사가 한국 법인이라는 점 등을 들어 서울고등법원이 관할권을 가진다고 결정하였다.
[2] 준거법과 면책사유 등
화물 손상에 대한 책임 판단에서 핵심이 된 것은 준거법의 적용 및 피고의 면책사유 주장 여부였다. 우선 본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가 주장하는 바에 다라 영국법에 따라 사건을 심리하였다. 계약의 준거법은 당사자가 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률에 의하는데(국제사법 제25조 제1항), 이 사건 운송계약에서는 운송의 목적지나 출발지가 미국이 아닌 이상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기로 정하였고,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이 노르웨이에서 출발하여 대한민국에 도착하는 경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영국법 하에서는 포장불충분으로 인한 손해는 해상운송인의 면책 사유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화물이 갑판 적재 중 강한 풍랑에 의해 포장이 손상된 사실이 인정되었으며, 실제로 이 사건 화물은 E법인의 비용으로 재포장되어 피고의 매리 머스크 호에 선적되었다. 이처럼 즉각적으로 이 사건 화물의 제조사이자 수출자인 E사가 비용을 부담하여 재포장한 것은 기존 타폴린 포장의 문제점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는바, 이와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포장불충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법원은 당사자 사이에 이 사건 운송계약을 체결하면서 견적서에 오픈 탑 컨테이너와 플랫 랙 컨테이너에 의한 갑판 적재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는 점은 송하인인 M사가 갑판 적재에 동의하였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뿐, 나아가 그와 같이 갑판에 적재된 화물의 훼손 등 손해에 대해 피고의 책임을 면제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근거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 약관 제18조 제1항에서 “이 해상화물운송장의 전면에 컨테이너 또는 화물이 갑판 아래에 선적될 것임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는 한, 화물은 화주에게 통지되지 않고 갑판 위 또는 아래에 선적되어 운반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운송인이 그 선택에 따라 화물을 갑판에 적재하여 운송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하는 이른바 갑판적 자유약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으며, 피고가 갑판 적재와 관련된 주의의무를 다하였고, 기타 주의의무 위반 행위가 없었다고 판단해 면책을 인정하였다.
5. 결론
본 판결은 국제 해상운송계약에서 발생하는 여러 법적 쟁점을 다루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먼저, 전속적 국제재판관할 조항은 당사자 간 명확한 합의와 사건의 실질적 관련성이 충족되어야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즉 약관 조항이 모든 경우에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였다.
둘째, 운송인의 면책사유는 준거법과 개별 사건의 특수한 사정에 따라 신중히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본 사건에서는 포장불충분과 관련한 면책사유가 영국법에 따라 인정되었지만, 이는 송하인의 동의 및 운송인의 주의의무 이행 여부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운송인으로서는 사전 계약 과정에서 명확한 동의 확보 및 철저한 주의의무 준수가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셋째, 갑판 적재 운송의 경우 갑판적 자유약관으로 해석되는 조항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갑판적 운송에 대하여 운송인의 면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결과적으로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지는 않았으나, 운송인으로서는 주의하여야 할 판단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준은 해상운송 계약에서 위험 분배를 명확히 하고 분쟁 가능성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본 판결은 국제 운송계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법적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사례로, 국제 해상운송계약의 당사자들은 본 판결의 법적 시사점을 바탕으로 계약 체결 시 주의의무를 강화하고, 약관 및 준거법의 명확성을 확보하며, 위험 요소에 대한 동의를 사전에 명확히 규정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