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우리나라의 어업역사 세계 최고(最古), 다양한 전통어업 전해
일반적으로 4대 문명의 발상지를 인류 문명의 요람이라 한다. 이들 4대 문명 발상지에서는 비옥한 강 유역에서 농업경작을 시작함으로써 식량조달 문제가 해결되었고, 이후 도시형성, 청동기 사용, 문자(기록) 체계 개발, 과학기술 발전 등의 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즉,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농업이 시작됨으로써 마침내 인류는 물자가 풍족하고 생활이 편리한 문명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에서 어떤 국가 또는 민족이 ‘농경사회에 접어들게 된 시기’는 그 집단 또는 사회의 발달단계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업은 어떤가? 농업과 같이 인류 문명을 잉태함에 있어서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지라도 어로기술의 발달이 원시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바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인류가 식량을 조달할 목적으로 도구 또는 장치를 이용해 물속에 사는 생물을 잡은, 다시 말해 ‘어로(漁撈)’ 행위의 가장 오래된 물리적 증거가 발견된 어업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다. 먼저, 강원도 정선군 남면 낙동리에 위치한 매둔동굴에서 약 2만 9,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그물추 14점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그 이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물로 확인된 중석기 시대의 안트레아 그물보다 무려 2만년이 앞선 것이며, 일본 오키나와의 사카타리 동굴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조개껍질 소재 낚싯바늘보다도 약 6,000년이 앞선 것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 중에서 인류의 어로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물건이다. 또한, 경상남도 창녕 비봉리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목선은 기원전 약 6,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는 바, 이 역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선박이다. 그 이전에도 옛 사람들이 물 위를 이동하거나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뗏목과 같은 단순한 수상 이동 도구를 만들고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되나 현재의 선박 형태를 갖춘 것으로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은 비봉리 유적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의 흔적이며, 한반도 전역의 신석기 유적에서 그물추와 낚시바늘이 매우 흔하게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어로활동을 활발하게 이어 온 우리 선조들은 다양한 고기잡이 방법과 도구를 고안해 강과 바다에서 식량을 얻는 생활을 유지함으로써 고유의 전통어업과 어식(魚食)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배경 설명이 좀 길었으나, 필자가 이번 호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바는 현행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또는 ‘국가중요어업유산’제도는 우리나라의 유구한 어업역사와 독창적인 전통어업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FAO 농업유산제도, 어업유산과 부합 어려움
세계중요농업유산 제도를 도입한 배경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먼저, 20세기말부터 국제사회에서는 전통적인 농업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에서 소규모 농업과 전통농업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 이하 GIAHS)가 제안되어 유엔 식량농업기구(이하 FAO)의 이니셔티브 파트너쉽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2004년 지구환경기금(Global Environment Facility; GEF)의 예산 지원으로 수차례의 학술토론회와 국제회의를 개최해 세계중요농업유산의 개념이 확립되었다. 이후 FAO를 중심으로 UNDP(유엔개발계획), 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유엔대학(UNU), 국제식물유전자원연구소(IPGRI), 세계문화유산보존 및 복원연구센터(ICCROM), 생물다양성협약(CBD), 국제자연보호협약(IUCN) 등 10여개 이상의 국제기구와 관련 회원국, NGO들이 협력하여 GIAHS 제도의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도출했다. 여기까지가 GIAHS제도와 개념이 정착된 과정인데, 어업과 관련된 기구의 참여는 없었으며, 농업유산을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해 그 범위에 어업 등이 포함된다는 내용도 없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이 선정된 것은 2008년부터인데 시범사업을 통해 2014년까지 8개 유산을 GIAHS 지역으로 선정했다. 이후 2015년 제39차 FAO총회에서 유엔의 정식 국제협력 프로그램(Corporate Programme)으로 통합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어 2016~2017년(회계년도 기간)부터 FAO의 정규예산으로 편성되기 시작했다.
FAO 한국협회에서 발간한 자료에 소개된 GIAHS의 정의는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 의지와 환경과의 상호적응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게 유지되고 있는 훌륭한 토지이용시스템과 경관”이며, 이 제도 운영의 목표는 “세계중요농업유산의 고유한 가치를 밝히고 보존하며, 세계중요농업유산과 관련된 경관, 농업생명다양성, 전통지식체계를 보호·전승해 세계적·국가적·지역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처럼, GIAHS는 전통농업에 관련된 지식체계(토지이용시스템)와 그로 인해 형성된 경관을 보호하고 전승하는 것이 목적이며, 이후 ‘농업’의 개념에 ‘어업·임업·목축·양잠·양봉·수렵·채집’을 포함하는 것으로 하여 지정 대상을 확장했으나 선정기준은 이전부터 농업유산에 적용한 것을 준용하도록 해 전통어업의 특성과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제시되지 못했다. 필자는 2022년도에 그 당시 등재 완료된 67개 GIAHS유산의 특성을 분석해 유형을 구분하고 각 유형의 구성요소에 따라 유산을 세부 분류한 결과 3개 범주 8개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요약하면, GIAHS의 유형은 크게 특별한 농어업생산물 또는 농어업관련 산업의 전통적 중요성이 유산적 가치를 가진 경우(작물/산업형)와 열악한 자연조건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방법으로 지역 고유의 농어업 방법을 고안한 경우(자연조건 극복형)로 분류하고, 이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기타로 분류했다. 범주별로 작물/산업형은 주요 작물이 쌀인 경우와 쌀 이외의 작물인 경우 그리고 작물이 아니라 작물을 활용해 식량이 아닌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인 경우로 구분했으며, 자연조건 극복형은 자연환경의 제약 유형에 따라 산지/경사지, 오아시스/건조지역, 수상/저지대, 관개시스템으로 세부 분류했다.
다음은 GIAHS 등재 경향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첫째, 현재까지 GIAHS에 등재된 유산은 모두 농업활동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어업이 주요 활동인 지역의 경우에 있어서도 농업활동과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FAO에서는 ‘농업유산(Agricultural Heritage)’이라는 용어를 넓은 개념으로 해석해 ‘Agriculture’에 어업, 임업, 축산업 등 다양한 1차 산업이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농업과 연관성이 없는 어업유산이 단독으로 GIAHS에 등재된 사례는 없다. 둘째, GIAHS 등재 사례를 분석한 결과 불리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거나 주어진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 오랜 시간동안 축적한 경험적 지식의 결과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셋째, GIAHS에 등재된 유산들은 농업을 영위하는 방법에 있어서 독창적하고 고유한 지식체계를 적용한 점에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까지 등재된 농업유산의 지식체계는 고도로 복잡하거나 타 지역과 명확히 구분될 정도로 독특한 사례는 흔하지 않으며, 비교적 단순한 영농 방법이나 기술 체계라고 해도 해당 지역의 환경에 맞게 적응한 것이라면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고 보여진다. 넷째, GIAHS 등재 지역의 농업은 대규모 농업 등 개발을 막는 장치로 작용했으며, 그 결과 아름다운 전통 경관이 보전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GIAHS 등재 지역의 농업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경작되어 농경지와 주변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그 당시에 등재 완료된 67개 GIAHS 유산 중에서 어업활동이 포함된 GIAHS 지역은 12개를 다음(표)와 같이 분류했다. 논농사를 지으며 물고기를 양식 또는 어획하는 형태 4건(표에서 A형), 수상 또는 저지대 농업을 하면서 주변 수역에서 물고기를 양식 또는 어획하는 형태 3건(표에서 B형), 관개 목적의 저수시설에서 물고기를 양식 또는 어획하는 형태 3건(표에서 C형), 강 또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양식 또는 어획하는 형태 2건(표에서 D형)이다. 이중 D형에 속한 것은 모두 일본의 유산인데, 전통어업의 기술이나 지식체계에서 유래한 유산가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강 또는 바다의 환경과 육지의 경작 환경이 결합해 만들어 낸 환경요인을 강조해 ‘강 시스템’ 또는 ‘연안 시스템’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이상과 같이, FAD의 GIAHS 제도는 ‘농업유산’의 가치를 조명(照明)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어업유산’에 적합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양수산부가 국가중요어업유산 제도를 2011년 9월부터 도입, 운영하고 있으나, 이 역시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를 추진하기 위한 후보자원 발굴을 목적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선정기준을 GIAHS의 것과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우리나라 어업유산의 고유한 가치를 평가하고 널리 알리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

어업유산, 역사 보존과 미래가치 창출
우리 조상들이 후대에 남긴 전통어업과 문화의 우수한 가치를 모든 국민이 향유하고 나아가 전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서 국가중요어업유산 제도가 충분하지 않다면, 다른 방법을 적용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어업유산은 우리나라 전통어업의 역사와 어로문화의 고유성을 알 수 있고, 우리민족만이 가진 문화의 정체성과 민중 생활의 변화를 나타낼 수 있는 유형의 산물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각 지역의 어업공동체에서 재창조된 무형의 어로문화가 결합된 것 모두를 대상으로 해야 하며, 여기에는 공동생활과 무속·신앙·오락 등 민속적 요소도 포함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논점에서 필자는 FAO의 GIAHS 제도보다 우리나라 어업유산에 더 적합한 제도는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이라 판단한다. 명칭이 무형문화유산이지만, 전통어업활동을 대상으로 지정된 사례가 있다. 2013년도에 등재된 ‘오스트되인케르케의 승마(乘馬) 새우잡이(Shrimp Fishing on Horseback in Oostduinkerke)’와 2020년도에 등재된 ‘케르케나 제도의 샤르피아 어로(Charfia Fishing in the Kerkennah Islands)’가 대표적이다. 앞으로 GIAHS등재를 위해 국가중요어업유산 제도를 현재와 같이 운영하면서, 우리의 전통어업이 가진 고유 가치를 더 잘 보존·계승하기 위해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 등재도 함께 추진하는 방향을 제안하며 이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