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임화(林和)의 본명은 임인식(林仁植)으로 서울 낙산(駱山)에서 출생하여 보성중학을 중퇴하였다. 그는 미래파, 다다이즘 등 새로운 여러 예술 양식을 공부하면서 1926년 《매일신보》에 시 「무엇찾니」를 발표했다. 그리고 여러 편의 문학론도 선보였다.
1927년부터 카프(KAPF)의 맹원으로 카프 내의 여러 논쟁에 참가하는가 하면, 영화 「유랑」과 「혼가」의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1929년 「네거리의 순이」, 「우리 오빠와 화로」 등 소위 ‘단편 서사시’를 발표하면서 카프의 대표적 시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카프 동경지부의 후신인 ‘무산자사’에서 활동하면서 카프의 볼세비키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귀국 후 1932년 카프의 서기장이 되면서 카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카프 해체 이후 박용철, 김기림 등과 기교주의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출판사 ‘학예사’를 대리 경영하기도 하였다. 1938년 첫 시집 『현해탄』을, 1940년 평론집 『문학의 논리』를 간행하여 자신의 문학적 입지를 확실하게 했다. 해방이 되자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고 인민성에 기초한 민족문학론을 주창하였다. 1946년 2월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1946.2.8. ~ 2.9.)에서 「조선민족문학 건설의 기본과제에 관한 일반 보고」를 발표하는 등 ‘조선문학가동맹’(1946)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1947년 제2시집 『찬가』와 『현해탄』의 다른 판본격인 『회상시집』을 발간하였으나 정세가 악화되자 월북하였다.
『현해탄』은 1938년 2월 29일 초판 발행된 임화의 첫 번째 시집으로, 41편의 시와 임화가 쓴 「후서(後書)」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 발표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임화 스스로 「후서」에서 “이때까지 발표된 내 작품의 거의 대부분이 수록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시집의 중심은 「현해탄」이란 제목 아래 근대 조선의 역사적 생활과 인연 깊은 바다를 중심으로 한 생각, 느낌 등을 쓴 16편의 시들이다. 「해협의 로맨티시즘」, 「눈물의 해협」, 「현해탄」, 「바다의 찬가」 등의 시들은 대부분 식민지 지식 청년들의 출향과 현해탄을 거쳐 일본을 체험하고 다시 귀향하는 모티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거센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에 맞서고자 하는 용기와 열정이 가득한 청년들이 <희망을 안고 건너가/결의를 가지고 돌아>(「현해탄」)오는 통로가 현해탄이었다. 청년 주체를 내세운 임화는 이처럼 영웅적 낭만성으로 가득한 시편들을 써냄으로써 고난에 찬 전망 없는 현실을 이길 역사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의 높은 벽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는 시집 『현해탄』의 표제작이자 임화의 후기시들 중 대표 시로써 그가 쓴 바다 연작시들 중 한 편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식민지 현실 속에서 그가 겪은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이는 현해탄이라는 공간이 지닌 이중적 의미이기도 하다. 현해탄은 근대 세계와의 소통 공간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확인하는 비극적 공간이었다.
현해탄은 근대인의 욕망이 투영된 공간인 동시에 식민지 현실을 재확인하는 역사의 공간인 것이다.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김윤식은 이를 현해탄 콤플렉스라고 명명했다. 말하자면 현해탄은 식민지 근대인의 욕망과 탈식민적 저항의식이 교차되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현해탄은 단순히 바다가 아닌,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공간으로 해석된다. 임화의 시 「현해탄」이 지닌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