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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바다를 위한 에세이 5. 수산물 유통

스마트네트워크 시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수산물 유통제도가 필요하다

  • 기사입력 2024.11.21 08:39
  • 기자명 채동렬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미국국제개발처(USAID: 국무부의 산하기관으로 미국의 공적개발원조기구를 담당)에서 수산물 이력추적시스템을 설명한 그림. “미끼에서 접시까지(From Bait to Plate)”라는 제목이 흥미롭다. 물고기가 어획된 순간부터 먹기 직전까지의 과정을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 국무부의 산하기관으로 미국의 공적개발원조기구를 담당)에서 수산물 이력추적시스템을 설명한 그림. “미끼에서 접시까지(From Bait to Plate)”라는 제목이 흥미롭다. 물고기가 어획된 순간부터 먹기 직전까지의 과정을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현대해양] 수산물 유통 정책과 수산물 위탁판매제도

우리나라에서 수산물 유통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나 근대화 이전에는 전국적으로 유통이 가능한 수산물 품목은 건어물과 염장품만 해당되었으며, 선어를 전국 각지에 유통한 것은 근대에 들어 이루어졌다. 과거에는 수산물을 부패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은 건조와 염장이 전부였고, 교통수단은 등짐을 진 도보이동에 의존했기 때문에 유통되는 물량은 제한적이었다. 근대화 이후 얼음을 공급받을 수 있고, 철도를 이용해 원거리를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됨으로써 수산물의 전국적인 유통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객주자본에 의한 수산물 유통의 독점과 시장교란 현상이 생겨났는데 이는 개인이 사적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나 완전경쟁시장의 조건에 현저하게 부합하지 못하는 수산물시장의 특성으로 인해 시장의 효율적인 자원분배와 가격형성 기능이 작동될 수 없었다. 객주자본에 의한 시장교란은 수산물 유통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수산물 생산자는 제값을 받고 생산물을 판매함으로써 정당한 이익을 누리지 못한데 대한 반발심이 커졌다. 이에 더하여 정부는 수산물 유통시장의 환경을 개선하고 복잡한 유통구조를 단순화함으로써 유통비용을 절감을 통해 수산물 가격을 안정화하고 수산업을 장려하는 정책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수산물 유통제도와 정책은 상기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산물위판장 개설과 시설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농수산물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고 적정한 가격을 유지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 1962년 수협법 제정 이후 수산물 유통은 수협을 통한 계통판매가 시작되었는데 수협창설 초기에는 객주자본과 경쟁 또는 협력하는 과도기가 있었으며 1970년대 들어서 수협 중심의 수산물 계통판매가 정착되었다. 수산물 계통판매제는 수산업법 어업조정 명령에 관한 조항과 수산자원보호법 어획물 판매장소 지정 조항에 의거 연근해 수산물 산지유통을 규제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하는 수산물 자유판매제는 1994년 1월 20일 수산청의 3단계 추진방안에 따라 1994년 12월 10개 품목의 시범실시, 1995년 3월로 1단계 31개 품목에 대한 자유판매제를 실시했고 1996년 7월 2단계로 31개 품목을 추가해 총 62개 품목에 대한 자유판매제를 실시했다. 1997년 9월 1일부터 잔여품목인 38개 품목에 대해 자유판매제를 적용함으로써 의무상장제가 폐지되었다. 수협위판장을 통한 수산물 거래의 의무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많은 양의 수산물이 수협 위판장을 통해서 거래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의무상장제 환원 주장

대다수 어민과 어민단체에서는 1997년 이후 수산물 상장이 자유롭게 되고 나서 상업자본을 가진 세력(과거의 객주자본과 같은 성격)에 의한 어가(魚價) 결정의 폐해가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이들 세력이 수산물유통시장에서 자금력을 행사해 이익을 가져가는 만큼 어민은 손해를 보고 낮은 어가에 판매하고 소비자는 높은 가격에 수산물을 구입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전과 같이 의무상장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본지 2018년 8월호에는 ‘의무상장제는 수산물 유통의 질서’라는 제목의 오피니언 기사가 수록되었는데, 이 글을 기고한 당시 수협중앙회 정만화 상무는 수산자원 보호, 원산지 증명, 식품안전검사, TAC(총허용어획량) 관리, 수산통계 기초자료 제공 등 수산물 유통의 새로운 질서를 위해서 의무상장제(계통판매제)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21년 7월에는 어업인 등 국민 5만 2천여 명이 서명한 ‘의무상장제 재도입을 위한 서명부’가 해양수산부와 수협중앙회에 전달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의견 수렴을 할 계획이라고 대응했으나 이에 대해서 구체적인 정책방안이 발표되지 않았다.

수산물 유통 시장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응 필요

필자는 의무상장제로의 전환이 현시대 수산물 유통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대안으로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가오는 미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수산물 유통단계에서 정부와 공공의 감시와 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협 등 어민단체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는 설득력이 있지만, 의무상장제로의 전환이 우리나라 수산물 유통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며, 의무상장제로 돌아가더라도 계통판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질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의무상장제로의 환원을 주장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는 수산물 유통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일시에 대량으로 출하되는 수산물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는데, 이와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수산물 유통 시장의 교란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이었다. 수산물 생산 측면에서 “언제, 어디서, 누가, 얼마나 생산(어획)하는가?, 그리고 생산된 물품의 세부적인 품질(예를 들어 크기, 신선도, 외형 등)은 어떤가?”에 대한 정보는 생산에 참여하는 당사자만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수산물 소비 측면에서 “소비자의 위치와 소비시기, 지불의사가격, 필요한 물량” 등 소비의향에 관한 정보 역시 생산자가 파악하기 어려웠다. 즉, 과거 시대에는 생산에 관한 정보와 소비에 관한 정보를 획득하고 이를 활용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것이 수산물 유통의 주요한 역할이었다. 이러한 수산물 유통시장에서 정보를 독점하는 세력이 자본력을 발휘해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면 생산자는 저가에 판매하고 소비자는 고가에 구입하게 되며, 중간 마진을 취하는 세력의 배만 불리고 대다수의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수산물 유통시장에서 정보 접근성과 정보 활용성의 혁신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클 것이라 예상된다. 이미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 있으며, 스마트네트워크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모든 사물이 인터넷 통신망에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초연결사회가 구축되어 이전보다 더 빠르고 다양한 형태의 통신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수산물 유통 단계의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전달될 수 있고 이를 활용하는 매매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스마트네트워크시대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를 충분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소수에 의한 수산물 유통시장 장악을 배제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의무상장제로 전환이 아니라 유통되는 수산물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국민을 위해서, 그리고 어민과 어민단체를 위해서 더 필요한 정책이다.

선진국의 수산물 유통 정책은 이력추적가능성 확보가 핵심이다

2017년에 FAO가 발간한 수산물 이력추적가능성 지침서. FAO 어업위원회는 회원국의 IUU어업 근절과 수산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해 이력추적가능성을 확보해야 함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이 지침서의 목적은 어획 시점부터 최종 소비까지의 가치 사슬에서 중요한 지점을 식별하고, 회원국의 이력추적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제안하는 것이다. 또한, 이 지침서에서는 IUU어업 방지를 위한 이력추적시스템은 식품안전 또는 품질인증을 위한 이력추적시스템과는 현저히 다른 체계를 가진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2017년에 FAO가 발간한 수산물 이력추적가능성 지침서. FAO 어업위원회는 회원국의 IUU어업 근절과 수산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해 이력추적가능성을 확보해야 함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이 지침서의 목적은 어획 시점부터 최종 소비까지의 가치 사슬에서 중요한 지점을 식별하고, 회원국의 이력추적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제안하는 것이다. 또한, 이 지침서에서는 IUU어업 방지를 위한 이력추적시스템은 식품안전 또는 품질인증을 위한 이력추적시스템과는 현저히 다른 체계를 가진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패러다임 전환기의 수산물 유통은 ‘이력추적가능성(traceability)’과 ‘양륙항 지정’이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수산물이라는 재화에 대해서 소비자가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유통시장의 질서를 확립하고 수산물의 안전성을 관리하는 두 가지 정책 목표를 모두 달성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수산물 이력추적가능성윽 확보하기 위해서 ‘TraceFish’라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수산물의 생산에서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모든 과정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인데 EU의 공동어업정책(Common Fisheries Policy)에 따라, 어획 및 수산물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불법 어업 방지, 식품 안전성 확보, 그리고 해양 자원의 지속 가능한 관리에 기여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TraceFish 시스템의 주요 목표는 ①어업 활동을 투명하게 기록해 IUU어업을 감시하고, 이를 통해 수산 자원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며, ②수산물의 생산지, 가공 상태, 유통 경로 등 모든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수산식품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다.

캐나다는 ‘Canadian Fish and Seafood Traceability Program’을 적용해 수산물의 안전성, 품질, 그리고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정책 목표룰 실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역시, 어획에서 최종 소비자에게 이르는 전 과정에서 수산물의 생산, 가공, 유통 정보를 기록하고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불법 어업을 방지하고 식품 안전성을 강화하며 지속가능한 어업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캐나다 프로그램의 특징은 디지털화된 추적 시스템을 통해 운영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획 및 가공 단계에서 수집된 모든 정보는 디지털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고, 공급망의 각 단계에서 이러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조회하고 교환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바코드나 QR 코드를 통해 각 제품에 고유 식별 번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는 스마트폰이나 기타 장치를 사용해 제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수산물 이력추적가능성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은 어획된 수산물을 양륙 하는 장소(landing sites)를 지정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지정된 장소에서 어획된 수산물의 양과 출처, 어종 등이 기록되고, 이를 통해 불법 어업 방지, 자원 관리, 식품 안전성 확보가 시작되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지정된 항구 또는 양륙 장소에서만 어선이 어획물을 내리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어획물의 합법성을 확인하고, 어획량과 어획 방법을 추적한다. 지정된 장소에서 어획물을 처리하고 기록하면, 각 단계에서 생성되는 정보가 수집되고 관리되므로,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추적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EU의 TraceFish 시스템에서도 어획장소에서 양륙장소까지 모든 단계를 기록하며, 양륙장소를 지정하고 관리한다. 노르웨이는 지정된 항구에서만 어획물을 양륙 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으며, 양륙 된 수산물에 대한 정보는 노르웨이 수산위원회(Norwegian Seafood Council, NSC)가 기록, 해양수산부에 보고한다.

캐나다에서도 해양수산부(Department of Fisheries and Oceans, DFO)가 어획물을 내리는 항구를 지정하고, Fish and Seafood Traceability Program에 따라 수산물의 유통을 기록한다.

한국형 수산물 이력추적시스템을 위해 수산물 양륙과 출하 장소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산물이력추적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했으나 일부 품목으로 대상을 제한해 다양한 수산물 품목으로 확장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선진국에서 추구하는 모든 수산물의 이력추적가능성 확보를 위한 체계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선진국과 같은 수산물 이력추적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어획물의 경우 지정된 항구에서만 양륙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양식수산물의 경우 양식장에서 최초 출하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이력추적대상에 포함시켜 최초 출하장소를 관리하는 것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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