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국내 중소조선소가 선수금환급보증(이하 RG, Refund Guarantee) 발급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중소조선업계의 낮은 신용도와 담보제공 능력의 한계 때문에. 중소조선 산업 생존을 위해서는 전향적인 지원정책과 근본적인 산업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선업에서 선수금 의미
조선업은 전형적인 자본집약적 주문생산 방식 산업이다. 선박 한 척의 가격은 수십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달하기 때문에 조선소에서는 선주(발주자)로부터 선박 건조(建造) 주문을 받은 후 선주가 총 선가(船價) 중 일부 선(先) 지급한 돈(선수금)으로 건조를 진행한다.
선수금의 규모는 선주와 조선소 간 선박 건조계약을 체결할 때 결정된다. 선가는 선박건조 과정의 주요 단계별로 지급되며, ‘Standard’ 결제 방식의 경우 ①계약 시(RG 발행 시) ②강재절단(착공) ③용골거치(탑재) ④진수 ⑤인도(引渡) 시에 각각 20%씩 분할 지급된다. 이 경우 선박 인도전까지 지급된 선가의 80%가 선수금이다.
이외 결제 방식으로 선수금 비율이 선가의 90%에 달하고, 인도 시 잔금 지급비율이 10%로 낮은 탑헤비(Top Heavy) 방식과 선수금 비율이 40%에 불과하고 인도 시 잔금 비율이 60%에 달하는 헤비테일(Heavy Tail)방식이 존재한다.
선수금 비율은 조선업 시황과 선박 건조계약 체결 시 계약 당사자의 신용, 협상력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자금운영 측면에서는 탑헤비 방식이 조선소에 유리하다.
대형 조선업계는 주로 헤비테일 방식을 채택해 인도 시 50%~60% 상당의 금액을 지급 받는다. 선박 건조계약 시 20%(10%), 6개월 후에 10%, 강제절단 때 10%, 용골거치 때 10% 인도 때 나머지 50%(60%).
그러나 중소조선소는 선수금 비율이 대체로 80% 수준이다. 이 경우 중소조선소는 선가의 80% 상당액의 RG를 금융사로부터 발급받아야만 선박 수주(受注)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가가 100억 원일 경우, 조선소에서 금융권을 통해 80억 원의 RG를 발행해야 하는데, 신용도가 낮은 국내 중소조선소 대부분은 이 보증금에 해당하는 담보를 금융사에 제공하기 쉽지 않다. 중소조선소의 자금 조달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건조할 선박 물량을 미리 확보하려면 조선소에 더 많은 담보가 요구된다.

선수금환급보증(RG) 의미
조선소는 선박 건조계약에 따라 선주가 지급한 선수금을 이용해 선박을 건조하고 선주에게 인도해야 한다. 만약 조선소가 선박을 인도하지 못할 경우, 선주는 기 지급한 선수금을 잃게 된다. 이 때문에 선주는 금융사가 조선소 대신 이 선수금을 보증해 줄 것을 요구하며, 이 보증서가 바로 RG(선수금환급보증) 이다.
조선소 RG 없이 선박 건조는 불가
RG 없이 선박 건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선박 건조에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선주는 선박 건조계약 체결 전에 금융기관을 통한 건조 자금 대출(Loan, 선박금융)을 진행한다.
선박 건조계약은 선주와 조선소 간 계약이지만 조선소에 지급될 선수금은 결국 선박금융의 금융사가 선주를 경유해 지급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금융사는 투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선소의 RG 발급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는 중소조선소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선박금융에서는 선주, 금융사뿐만 아니라 특수목적법인(SPC, Special Purpose Company)이나 선체용선자, 정기용선자, 항해용선자 등이 계약 당사자로 포함되므로 조선소의 귀책사유로 선주에게 선박이 인도되지 못할 경우, 해당 선박금융 계약의 당사자들 모두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이에 실무적으로는 선주가 RG 확인 이후에 조선소에 선수금을 지급한다.
중소조선소 RG 발급 난항
대형 조선소와 달리 중소조선소는 금융권의 담보 요구나 대출한도 제한, 기업 신용도 등 발급 기준이 강화돼 RG 발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RG를 발급하지 못하는 조선소는 선박 수주 경쟁에 참여할 수 없고, 이미 수주된 계약도 계약 취소로 인해 수주 기회가 무산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경영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내 선사 관계자는 “국내 중소조선소가 RG를 받기 어려워 신조 선박 건조를 위해 중국 등 타국으로 발주처를 옮길 상황이다”고 말했다. 또한 “국내 중소조선소 건조비가 중국 등 주변국가에 비해 20~30% 높고, 친환경 선박이나 선박 디지털화 등 고부가가치 선박이 아니라면 조선 기술력의 차별성이 크지 않다”며,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국내 중소조선업계의 몰락(沒落)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2022년 한국은행(경남지부)의 「최근 조선업 현황 및 경남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조선소 및 기자재업계의 수주 경쟁력을 높여 산업 생태계 전반을 강화해야 조선업의 지역 내 생산유발효과도 더욱 커진다”며, “글로벌 조선 수주확대가 대기업 특수에 그치지 않고 중소조선소 및 기자재 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인력양성 및 미스매치 해소, 금융 지원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가 2021년 6월 중소선박 및 부품, 선박 정비업체 등 조선 산업 관련 제조업 30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 조선업종 경영실태 조사」에서 RG 발급 관련 애로점에 대해 △과도한 서류 요구(25.5%) △보증한도액 부족(21.6%) △높은 신용등급 기준(13.7%) △담보확대 요구(13.7% △보증 기피·거절(11.8%) 순이었다.
금융권이 RG 발급을 꺼리는 이유
금융기관으로는 한국무역보험공사,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 뿐만 아니라 시중은행과 보험사 등이 RG 발행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금융권의 RG 발급에 대해 과거 손해보험사(이하 손보사)와 한국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 등 두 차례의 흑역사가 금융권의 RG 발급에 찬물을 끼얹었다.
▶ 2004~2007년 해운경기와 함께 조선업이 호황일 때 국내 조선소(중소조선소 포함)의 수주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RG 발급시장 규모도 함께 확대됐다. 중소조선소는 신용등급이 낮아 대형 조선소들처럼 은행권으로부터 RG 발급이 쉽지 않아 중소형 손보사를 통해 RG를 발급받았다. 손보사는 무분별하게 RG를 발급했고,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손보업계가 인수한 RG보험의 보험금 규모가 8,00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 손보사가 발급한 RG에 대해 재보험 가입을 하지 않거나 신용도가 낮은 재보험에 가입해 손보사가 고스란히 손해를 안았다.
▶ 손보사의 RG보험 사태로 인해 은행권에서 RG 발급에 소극적이자 무보에 RG발급 보증이 집중됐다. 은행권이 조선소에 발급한 RG 발급을 보증한 무보는 2008년부터 3년간 4조 1,000억 원에 달했다. 중소조선업체를 살리기 위한 무보의 결정이었으나 감사원 조사 결과, 무분별한 RG 발급으로 인해 2010년, 2011년 2년 간 무보의 RG 관련 보험금 지급으로 의한 손실액이 1조 원이 넘는 규모였다. 더 큰 문제는 무보가 RG보험에 대해 재보험 출재를 하지 않아 모든 손실을 무보가 부담하게 된 것이다.
정우영 법무법인(유) 광장 변호사는 “과거에는 선수금과 건조 중 선박을 담보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시각에서 접근했는데, 현재 은행권으로부터 RG를 발급받으려면, 조선소가 높은 신용도와 충분한 담보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이미 금융사들이 △실무상 후판 등 원자재를 저렴할 때 미리 구입하기 때문에 건조 선박에 사용한 원자재가 선수금으로 구입한 것이 아니므로 선수금이 해당 선박 담보로 포섭되지 않는 경우, △선수금으로 밀린 외상 대금을 갚거나 인건비에 사용하므로 대상 선박에 선수금이 투입되지 않은 경우, △헤비테일 방식으로 계약하다 보니 자체 자금 조달을 통해 선박을 건조해야 해서 선수금 담보가 큰 의미 없는 경우, △선박 건조비 결제방식을 5회 균등 분할로 계약하고, 대상선박을 위한 원자재가 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건조비로 계약이 체결돼 수익성이 떨어지고, 조선소 재무상태 악화로 이어지는 경우 등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소조선소 RG 해결책, 산업 구조적 문제 해결부터
한기원 한국중소조선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지난달 5일 금융위원회 주최로 중소조선소 RG 발급 관련 긴급 회의가 열려 업계 상황을 공유했다”며, “조합은 ‘중소조선소에 RG 특례보증(<그림 4> 참조)’이 실제로 적용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언급하며, △중소조선산업을 경제성보다 국가경제 기반산업 측면에서 정책적 지원 필요 △수출역량을 갖춘 중소조선소에게 특별 심사기준 적용 필요 △중형조선소와 별도의 중소조선소 위한 RG 특례보증 지원 금액 마련 등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정우영 변호사는 “우리나라 중소조선소가 은행권으로부터 RG를 안정적으로 발급 받으려면 △연간 최소 8~12척 정도의 선박 건조계약이 체결돼야 하고, △그 계약들이 모두 수익성이 있어야 하며, △후판 및 엔진 구입 가격 변동 위험이 헤지(Hedge) 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중소조선소가 이 수준을 갖추려면, “국내 중소조선소의 구조조정이 선행돼, 선형별 전문 조선소, 전문 수리조선소, 어선 건조 조선소 등 몇 개 조선소로 일감이 집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국내 중소조선소의 구조적 개편을 과거와 달리 국가에서 나서서 할 수 없으므로 조합·협회 등에서 주도적으로 하고 정부는 이를 위한 간접적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진회 KMI 해운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5여 년 전에도 논의된 바 있는데, 중소조선소도 건설공제조합처럼 공제조합을 만들어 수주 받은 계약 건에 대해 조합에서 보증을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형, 중형, 중소조선소,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정책· 민간금융, 조선기자재조합 및 업체 등이 출자해 보증을 위한 재원을 만들고, 조합(또는 협회)가 이를 시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대우조선해양 전무, 해양특수선 본부장을 역임했던 신언수 대우세계경영연구회 부회장은 “국내 중소조선소들이 개별적으로 상황은 다르겠지만, ①중소조선소들이 부침(浮沈)을 거듭하면서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조선업의 경쟁력과 수익성 보다는 부동산 자산 가치를 선호하는 주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바람에 ② 조선경기가 호황일 때 물량을 확보해 조선소 가치를 키워 매각하거나 부동산 개발과 연계해 자산 가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출구전략을 찾고 있다”며, “그렇다보니, 조선소별 차별화된 경쟁력이 없고, 경영진 및 기술진이 허약하고 생산력도 빈약하다”고 진단했다.
신 부회장은 “보수적인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중소조선소에게 RG 등 보증을 제공하기란 난망하다”며,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중소조선산업 활성화 전략을 세워 혁신하지 않는 한 영구적인 과제로 남을 것이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그는 싱가폴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적 제언도 했다.
“싱가폴은 120여 개 중소형 조선소를 ‘테마섹(Temasek)’이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3개 회사로 재편했고,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싱가폴이 수리 조선산업으로 세계 1등 국가로 변모했다”고 설명했다. “테마섹은 싱가폴 은행들이 세운 지주회사인데, 정부가 은행들을 통해 지분을 통폐합해서 소유권을 장악하고 수리선 산업으로 성공적인 정책전환 해 조선을 국가산업으로 탈바꿈 했다”며, “국내 중소조선소 문제는 개별 기업에게 RG를 어떻게 발행해 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산업 차원에서 소유권과 경영권의 지배를 통해 산업구조혁신을 시도해야 할 사안이다”고 피력했다.
금융권에서 중소조선소에게 RG를 발행해 주더라도 성공적인 QCD(Quality-Cost-Delivery, 품질-비용-납기) 성과와 지속 가능성을 확신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악화됐다는 것이 신 부회장의 분석이다.
결국, 국내 중소조선소의 RG 발급 문제는 단순한 금융 문제를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능력을 갖춘 중소조선소에 대한 선별적 지원 정책과 선진 사례 등을 통한 중소조선산업의 효율적인 재편이 요구되며, 정부와 금융기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장기적인 전략 없이는 국내 중소조선산업이 점차 도태될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한편 조선업계에서는 대형, 중형, 중소조선소로 구분하나 정확한 구분 기준은 없다. 업계에서는 선박 길이 100m 미만이며, 1만 DWT급 미만 선박을 건조하면 중소조선소, 500톤 미만 선박을 건조하는 곳이면 소형조선소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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