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해양] 바다, 소금기가 있는 ‘물’로 채워진 공간, 바닷속에는 가치 있는 동식물이 있고, 인류가 이것들을 이용한 역사는 오래됐다.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 지구상의 어느 문화권에서나 바다의 주인은 어민들이라는 것이 보편적으로 인정되어 온 것 같다. 바다의 주인을 ‘어민’이라 생각하게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오래전부터 어민들에게만 바닷속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 아닐까? 바닷속의 물고기를 이용할 권리, 오늘은 어업권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바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강·호수와 같은 담수 생태계를 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이라는 물리적 환경은 인간이 항상 거주하거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물속에 사는 동식물은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식량이었기 때문에 인류는 문명의 탄생 이전부터 수생동식물을 먹이로 이용했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인류’와 ‘유인원’을 구분하는 기준은 두 발로 걷는 것이다. 고인류가 언제부터 물속에서 먹이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존하는 지구상의 유인원 중에서 수생동식물을 먹이로 하는 종(species)의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으므로 인류의 발달 단계에서 직립보행 이후 어느 시점일 것이라 짐작된다. 故 박구병 교수가 집필한 한국민족대백과사전의 표제어 ‘어업’을 보면 “선사시대의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하천이나 해안에서 많이 나는 어개류(魚介類)를 잡아 식용하였고, 따라서 어업은 그들의 주요한 생업의 하나가 되었으리라는 사실은 패총을 비롯한 많은 유적들이 말해 주고 있는 바와 같다”고 설명되어 있다. 즉, 한반도에 정착한 인류가 어업을 시작한 역사는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며, 확실한 증거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패총’에서 명백히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업을 할 수 있는 권리, 즉 어업권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이에 대해서 명확한 역사 기록을 찾을 수는 없지만 여러 역사서에서 그 당시에 어업권과 유사한 개념의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는 있었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을 찾을 수 있다. 박구병 교수는 “중국 측의 문헌인 『삼국지』, 『후한서』 등을 통해 예·옥저·삼한 등 부족국가의 어로생활을 짐작할 수 있으며, 동시에 중국과의 조공(朝貢)에서 해산물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있는 동예의 기록에 “산과 내(川)를 경계로 읍락의 구역이 나뉘어 있는데 다른 읍락의 구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이를 어겼을 경우 ‘책화(責禍)’라는 벌칙을 가했다”는 대목에서 산과 강·연안 등 식량을 획득할 수 있는 자연생태계를 부족 단위의 공동체가 관리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오늘날의 ‘마을어업’과 같은 공동어업권의 원형(原形)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류가 고안한 최초의 어업권은 공동어업권이었을 것이며, 해수역보다는 담수역에서 먼저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유물 중에서 어업과 관련된 것은 그물추와 낚시인데, 그물추는 주로 담수역에서, 낚시는 주로 해수역(연안)에서 발견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 중에서 그물추는 363점인데, 출토된 지역별로 서울 강동구 54점, 경기 연천군 25점, 인천 옹진군 23점, 경기 김포시 17점, 강원 평창군 15점, 경기 남양주시 12점, 경기 파주시 8점, 서울 송파구 8점 (이하 생략) 순으로 나타났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지역에 위치했던 고대국가인 부여의 유물에서도 그물추가 발견되어 그 당시 동북아시아권에서 강어업이 성행했던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에, 국립중앙박물관에는 29점의 낚시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중 13점은 부산 영도구에서 출토되었고 경기 가평군, 경기 화성군, 경기 연천군, 경기 양평군, 인천 서구 등에서도 적은 수의 낚시 유물이 출토되었다.
서양의 역사에서 어업권은 언제 처음 등장하며 어떤 형태였을까? 볼리토(Bolitho)라는 사람이 1961년에 편찬한 『The Glorious Oyster』라는 책에서 로마시대 초기인 BC95년에 로마인 세르기우스 오라타가 Lucrine호수에서 굴을 양식했는데 이 굴양식장을 토지와 같이 소유했다고 나와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초창기 어업권이 공동어업권의 성격을 가졌던 것과 달리 개인에게 부여되었던 권리다.
학계에서는 어업권을 점유하는 주체가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토지를 사점(私占)하는 것처럼 배타적인 원리가 적용되는 점에서 이러한 어업권을 ‘Terrestrial Use Rights in Fisheries(TURFs)’라는 용어로 칭한다. 다수의 학자들은 어업에 있어서 이와 같은 배타적 어업권은 연못, 호수, 강기슭과 같은 담수역에서 먼저 적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비교적 범위가 제한되어 있고 통제와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석호·모래해변·산호초 등 연안에서도 오래전부터 TURFs가 생겨난 사례가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주로 아시아권 국가이며,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 부여되는 권리이다. 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발견되는 TURFs는 굴·홍합·해조류 등에 대해 부여되고 있는데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뗏목양식장(raft culture)과 다양한 어류집어장치(fish aggregation device, 지인망(beach seines), 어살(fish pens), 정치망(cages 또는 set net), 통발(fish pots) 등 유형의 시설과 그것을 사용하는 해상 공간에 어업권이 설정되어 있고 이를 부족공동체가 공동으로 소유·이용하고 있다.

어촌계가 총유하는 마을어장 어업권은 삼한시대부터 내려온 관습이 제도화된 것이다.
박구병 교수의 저서 『한국수산업사』 에서는 “고려시대 어장의 소유형태와 어업의 경영형태는 경지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① 국가의 처분·관리에 기초한 어장 지배, ② 어장주(감영·수영·제 궁가 등)의 수세기능에 기초한 어장 지배, ③ 어민의 어장 용익권에 기초한 어장 지배로 3분 되어 저마다 어장 소유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가장 본질적인 소유형태는 어민들의 원생적인 조직인 어촌공동체의 총유(總有: 공동소유의 한 형태)요, 그에 기초한 어민들의 공동경영이 보편적 경영형태라고 믿어진다”고 서술해 우리나라 공동어업권의 성격을 ‘총유’라는 단어로 특징지었다. 일본의 공동어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전통적인 마을공동체가 어업협동조합의 형태로 발전했다는 점, 그리고 바다뿐만 아니라 강에서 이루어지는 어업권도 어업협동조합에 총유의 형태로 부여돼 소유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이상에서 어업권의 역사에 관해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 것은 ‘어업권’이라는 배타적 권리를 ‘어민’이라는 특정 집단에게만 부여한 것이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보편적이며, 오랜 기간을 거쳐오면서 사회제도가 여러 번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업권의 기본적인 개념과 관리형태가 큰 틀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개인보다는 공동체에 부여된 어업권이 주를 이루었으나 양식어업이 발달한 요즘에는 개인에게 부여되는 각종 양식면허가 어업권을 대표하는 의미로 더 익숙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이용의 주체가 누구이든, 어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배타적으로 규정한 것은 어업자원의 무분별한 경쟁적 이용을 막기 위해 즉, 공유재의 비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익 추구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어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면 어족자원을 경쟁적으로 포획하게 될 것인데 그 결과는 어족자원의 감소와 고갈이라는 비극을 초래한다. 반면에, 어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특정한 사람 또는 단체에게만 부여할 경우에 어업권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기대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범위내에서 어업권을 행사할 것인데 그 결과 사회 구성원들은 매년 지속적으로 적당한 양의 수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되어 공공의 이득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공익을 위해 고안된 어업권제도가 근래에는 공익보다 우선하는 개인의 권리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어업자원관리 단 하나만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업권을 잘 설정하고 관리하면 공익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바다는 어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해양레저활동처럼 직접 해수면을 이용하는 행위도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자연그대로의 탁 트인 바다 그 자체가 형성하는 경관 가치도 크다. 만약, 해변에 휴양지를 조성함으로써 지역 전체가 얻는 경제적 이익이 어업권을 유지함으로써 지역 전체가 얻는 경제적 이익보다 훨씬 커서 그 어업권의 가치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보상하고도 남는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지역이나 국가의 관점에서는, 즉 공익을 추구하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선택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국가의 식량자급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어업권을 가졌던 주민이 새로운 생계수단을 가지고 충분히 적응도록 함으로써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1908년에 제정된 구한국의 「어업법」은 제6조에 “수산동식물의 번식과 기타 공익상 필요가 있을 때는 어업권을 제한 혹은 정지하거나 조건을 부여할 수 있다”는 포괄적 의미의 단서조항을 추가함으로써 공익의 목적이 있을 경우에 언제든지 개인 또는 단체에 부여된 어업권 행사에 제약을 가할 수 있도록 돼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 제정된 「수산업법」에서는 공익상 필요한 어업의 제한, 정지, 취소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을 “①수산자원의 증식·보호상 필요한 때, ②국방 기타 군사상 필요한 때, ③선박의 항행, 정박, 계류, 수저전선의 부설 기타 공익상 필요한 때, ④어업의 면허 또는 허가를 받은 자가 본 법, 본 법에 의하여 발하는 명령, 이에 의한 처분 또는 제한이나 조건에 위반한 때”로 한정함으로써 포괄적인 공익 추구가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업권이 우선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올해 1월 개정된 현행 수산업법에는 위 네 가지 조건 외에 해양환경관리와 조업 안전, 그리고 공익사업을 위해 필요한 경우라는 내용이 추가됐지만 여기서 말하는 공익사업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 등이 시행하는 공공사업에만 한정되어 있어서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좁다.
사회전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극대화해 지역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어업보다 더 큰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활동에 바다 공간을 과감하게 양보하는 것에 대해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연안지역의 소멸 위기는 매우 심각하지만 미래는 해양경제의 시대라는 희망이 보인다. 발달한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바다공간을 이용해 엄청난 경제적인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는 해상공간을 거주와 여가활동의 공간으로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연안어업과 양식업 등 기존의 수산업 경쟁력이 저하되고 어업인의 고령화 문제도 심각한 시점에서 지역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공익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해역을 난개발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가 주장한 바는 철저한 공익추구의 관점에서 정말 필요한 부분에만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공동어업권제도인 마을어업권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압력 속에서 연안생태계를 지키는 근간으로 작용해 왔다. 특히, 요즘처럼 바다낚시와 해루질 등 도시민의 여가활동이 바다환경을 위협하는 시대에도 지역 주민공동체에 마을어업권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바다 이용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음을, 그리고 이 제도의 뿌리는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온 전통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