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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다시 19. 노천명의 첫 시집 『산호림』에서 노래한 바다 이미지

  • 기사입력 2024.08.22 08:46
  • 기자명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 고신대 석좌교수
노천명의 산호림 시집
노천명의 산호림 시집

[현대해양] 노천명은 1911년 9월 1일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다. 1919년 경성으로 이사하여 1930년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이화여전 영문과에 입학하여 1934년 3월 졸업하였다. 졸업 후 그는 바로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하였으며, 1932년 《신동아》를 통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는 『산호림』(1938)과 『창변(窓邊)』(1945), 『별을 쳐다보며』(1953) 등을 펴냈다. 유고시집으로 『사슴의 노래』(1958)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인 『산호림』은 출간 당시 평론가와 문인들의 대대적인 호평을 받았다. 특히 최재서는 노천명의 시를 ‘자제(自制)’라는 한마디로 요약하였는데, 말하자면 정서의 범람을 제어하고 그 안에 여성다운 섬세한 서정을 담았다는 적극적 평가를 한 셈이다. 그만큼 이 시집은 섬세한 감성으로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세계를 그렸으며, 고독한 자아의 모습을 내밀하게 담아낸 결실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고향과 유년에 대한 향수, 향토적인 풍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시집에는 노천명의 대표작인 「사슴」을 포함하여 「자화상」, 「교정(校庭)」, 「슬픈 그림」, 「고독」, 「제석(除夕)」, 「소녀」, 「밤의 찬미」, 「말안코 그저 가려오」, 「수녀(修女)」, 「참음」, 「성묘(省墓)」, 「만가(挽 歌)」, 「국경의 밤」, 「생가(生家)」 등 49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특별히 정한의 기질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성향이 잘 드러나는 시편들이 많은데 「바다에의 향수」, 「포구의 밤」 , 「출범」이란 세 편의 바다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시가 실려 있다.

노천명은 황해도 장연 출신이다. 이곳은 서해 바다의 요충지의 하나로 서해는 황해에 접하여 장산곶이 있고, 대청도를 중심으로 어업이 성한 곳이다. 어린 시절 일찍 이곳을 떠나 왔지만 그의 유년의 기억 속에 남겨져 있는 바다 이미지는 한편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바다 저편엔 7월의 태양이 물 우에 빛나고>, <낯익은 섬들의 기억>, <늠실거리는 파도> 등 고향에서 경험한 바다에 대한 향수가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비해 「포구의 밤」은 마산포라는 남쪽 바다 포구에서 느끼는 감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별조차 보이지 않는 흐린 밤 바닷가에서 물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애를 끓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포구 기슭에 대여 있는 나룻배에서는 등불만 졸고 있는데 사공의 노래 소리 역시 구슬프게만 들려온다. 이 물새의 울음소리와 사공의 노래 소리에 시적 화자의 고요했던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시적 화자도 바다 물결에 자신의 노래를 띄워 보내고 있다. 그 노래가 물결 되어, 물결이 닿는 데마다 바위에 부딪히는 구원의 물소리가 되고 있다. 그 소리와 함께 마산포의 밤이 깊어만 간다고 노래함으로써 밤바다에서 느끼는 시인의 섬세한 서정이 드러나고 있다.

건너기 힘든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출범식을 마치고 떠난 항구의 스산한 모습이 엿보인다. 시인의 관심은 떠나간 배가 무사하게 아무런 사고 없이 귀환하기를 바라지만 이전부터 이 바다에서는 비극적인 일들이 있어왔기에 <비극이 머리들기 쉬운 곳이란> 염려가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배는 떠났지만 <배가 나간 뒤도 부두를 떠나지 못하는 부은 맘은/바다 저편에 한여름 흰꿈을 세우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노천명은 자신이 경험한 바다의 기억들을 서정적으로 이미지화해서 1930년대의 바다와 포구와 건너기 힘든 바다를 출범하는 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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