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양] ‘모두의 바다’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해양수산분야 정책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만나게 되는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 - 어민, 어촌주민, 해양레저사업자, 과학기술연구자, 환경단체종사자, 행정관서와 공공기관의 업무담당자, 각종 위탁사무수행자 등 - 흔히 말하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s)들과 이야기하면서 자주 듣게 되는 ‘바다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내가 가진 생각을 좀 더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또, 그렇게 체계화된 관점에서 현재 우리가 직면한 바다 이용의 문제를 풀어내고 보다 발전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1982년 제3차 유엔해양법협약이 채택된 이후에 국제법과 해사문제를 다루는 분야에서 사용된 ‘오션 거버넌스’라는 말이 근래 국제사회에서는 ‘전 지구적이고 통합적인 바다의 기능내지 시스템 자체’를 다루는 의미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 신조어 아닌 신조어의 의미와 이런 논의를 하게 된 배경을 스스로 이해해야겠다는 욕구가 생겼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해양수산정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기회를 가지고 싶었다.

바다는 누구의 것인가?
예로부터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바다 공간과 바닷물 속에 있는 자원은 주인이 없는 것, 즉, 무주물로 여겨서 먼저 점유하는 사람이 차지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어 왔다. 이른바 무주물 선점(無主物 先占, 라틴어 Res Nullius로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물건’ 이란 뜻)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민법」 제252조(무주물의 귀속)에서 주인이 없는 동산은 소유의 의사를 가지고 먼저 점유한 사람이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주인이 없는 부동산은 국유로 정하고 있으며, 무주물의 범위에 야생하는 동물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 조항을 적용해 바다가 누구의 것인지를 따진다면, 바다라는 넓은 공간은 국가의 소유이며, 바닷속에 있는 생물은 주인이 없으므로 먼저 점유하는 사람의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공유재(Public Goods)’와 ‘공유자원(Common-Pool Resource)’이라는 개념으로 바다의 재화(財貨)적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리적 자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다 공간은 비경합성과 비배재성이 모두 충족되는 공공재이며, 바닷속에 사는 생물은 비배제성과 경합성을 가진 공유자원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이 항상 변하지 않는 진리는 아니다.
바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바다를 이용하는 사람 모두가 ‘바다는 나의 것’ 또는 ‘바다는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어촌에 기반을 둔 공동체가 스스로 바다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바다를 이용해왔고 여기에 반대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없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수산업법에서는 어촌주민(어촌계원)이 공동으로 어로행위를 하는 공간을 ‘마을어장’이라 지칭하고 여기에 ‘마을어업’이라는 명칭의 어업권(어업면허)을 부여함으로써 이용자의 배타적인 지배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바다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또 바다를 이용하고자 하는 목적이 다양해짐에 따라 바다라는 공간 전체는 여전히 비경합성이 충족되는 공공재의 성질을 유지한다고 해도, 이용 수요가 집중되는 특정한 바다 공간은 경합적인 이용이 불가피한 공유자원으로 변질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가장 빈번한 사례는 생산활동인 어업과 여가활동 사이의 의견 대립이다. 근래 우리나라에서 시공이 늘어나고 있는 해상풍력시설 설치를 비롯해 해저지하자원 개발, 해저기지건설 등 해양공간을 입체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수요는 미래에 더 크게 증가할 것이고, 해양 이용에서 경합은 더 심화될 것이다. 이 외에도 바다가 주는 무형의 또는 비금전적인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증가함에 따라 바다 이용에 관한 갈등은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할 것이 예상된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바다가 완전한 공공재의 상태일 때는 바다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 무의미하며, 그 질문에 누가 어떤 대답을 하든지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런데 바다 공간을 경합적으로 이용하면서 바다 이용의 권리가 논란되고 있는 것이다. 해양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맞이하게 될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앞으로 국가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오션 거버넌스의 의미
이제부터 이야기할 ‘오션 거버넌스’는 아직 본인 스스로도 이해가 부족한 영역이며, 적어도 현재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이 개념을 잘 설명하는 자료를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해하기로, 여기서 이야기하는 거버넌스의 대상인 바다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 또는 재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제어하는 거대한 시스템으로서 인간이 순응하고 받아들여야 할 초월적인 대상이라는 의미라 짐작된다.
먼저, ‘오션’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그렇다. 영어에서 바다를 뜻하는 단어는 ‘씨(Sea)’와 ‘마린(Marine)’, ‘오션(Ocean)’ 등이 있는데, ‘씨(Sea)’는 우리말의 ‘바다’에 대응하는 단순하게 피상적인 ‘바다’를 지칭하는 말로 이해가 되고, ‘마린’과 ‘오션’은 그 쓰임새에 약간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두 영단어의 차이는 무엇일까? 순우리말로 그 차이를 구분하는 단어를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한자 ‘海’자를 마린에, ‘洋’자를 오션에 대응하는 글자로 본다면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는 것 같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필자는 영국 포츠머스대학에서 수산경제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 과정 입학을 위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중에 이 단어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해양자원경제연구소(CEMARE, Centre for the Economics and Management of Aquatic Resources) 자료실에 있는 용어사전과 옥스포드 영어대사전을 몇 시간이나 번갈아가며 뒤져 본 일이 있다. 그 결과 마린이란 ‘인간이 직접 경험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바다’를, 오션은 ‘바다 그 자체, 즉, 인간이 간접적인 지식에 의해서 상상할 수 있는 바다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의적인 개념화를 했었다.
그다음, 바다를 이용이나 관리가 아닌 ‘거버넌스’의 대상으로 놓았다는 점이 지금까지의 바다와는 스케일이나 의미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용 대상인 자원, 예를 들어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어획하는 다랑어 자원을 말할 때는 그 대상을 능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관리(Management)’라는 단어를 쓴다.
이제 ‘오션 거버넌스’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국어사전에 ‘거버넌스’라는 외래어의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라고 되어 있으며, 실제로 여러 학문 분야에서 ‘거버넌스’라는 영어 단어를 우리말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만큼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우리말로 쉽게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이 말의 뜻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최근에 등장한 ‘오션 거버넌스’의 표현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유엔(UN)은 2021~2030년의 10년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해양과학의 10년(UN Decade of Ocean Science for Sustainable Development)’으로 선포하고 매년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4월 10~12일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었는데 올해 컨퍼런스의 주제가 ‘오션 거버넌스’였고, 세부 발표 분야는 기후변화, 식량안보, 생물다양성의 지속가능한 관리, 지속가능한 해양경제, 해양오염, 자연재해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2021년 12월, 영국 포츠머스대학의 ‘블루거버넌스센터(Centre for Blue Governance)’가 오션 거버넌스 분야의 ‘유네스코 체어(UNESCO Chair)’라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특정 분야에서 전문 지식 연구와 공익적 기여가 인정되는 교육기관에 ‘유네스코 체어’라는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포츠머스대학은 필자가 수산경제학 석사 및 해양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교인데, 필자가 수학할 당시에는 해양자원경제연구센터(CEMARE)라는 명칭의 연구센터가 EU의 협력연구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즉, 이 학교는 과거에 해양자원을 관리(Management)하는 분야를 주로 연구했는데 지금은 ‘블루 거버넌스’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센터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연구 대상이 해양자원(Aquatic Resource)가 아니라 해양환경(Aquatic Environment)으로 되어 있고 연구 목적은 이를 보호, 복원해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유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작년에 네덜란드의 해양연구센터(MARE, Centre for Maritime Research - 암스테르담 대학과 네덜란드 사회과학연구소(SISWO)가 공동으로 설립한 국가연구기관)에서는 『오션 거버넌스 - 지식체계, 정책 기조와 주제 분석』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전자파일이 제공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인간 행위로 인해 바다의 지속가능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가 1992년 리우 회의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고 바다 환경의 문제는 전 지구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노력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가 있는 한 이 문제가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이 오션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라 설명하고 있다. 즉, 현재까지 서구 선진국과 바다 환경변화에 민감한 일부 국가들만 해양에 관한 국가 간 협력 안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전 지구적 바다 관리에 소극적인데, 앞으로는 모든 국가가 함께 노력해야 하며, 이러한 공동운명체로서의 노력 형태를 ‘거버넌스’라고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상 세 가지 사례를 통해 필자는 ‘오션 거버넌스’라는 말의 뜻을 “바다의 일부분이나 바닷속에 있는 어떤 특정 자원이 아닌 포괄적이고 집합적인 의미로서의 바다를 모두가 협력해 관리 또는 경영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중요한 점은 전 세계에서 바다 이용에 대해 포괄적인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바다 공간과 바닷속 자원을 이용하는 모든 행위의 결과는 인류 전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식하에 모든 국가가 오션 거버넌스에 동참할 의무가 있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모두의 바다를 생각해보자.
바다, 지구에서 육지를 제외한 부분, 지구 표면적의 약 71%를 차지하며 평균 깊이는 약 3,700미터, 가장 깊은 곳은 1만 1,034미터에 이르는 입체 공간이다. 이처럼 거대한 바다를 어느 한 사람이나 몇몇 이익집단이 소유할 수는 없다. 바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바다와 그 안의 자원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를 이용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소수의 행위가 전 지구적 문제를 야기하고 이는 지구인 모두의 직간접적인 이익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행성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함께 가꾸어 나가야 할 대상인 것처럼 바다 역시 지구인 모두가 함께, 그리고 공평하게 누려야 할 공간이다. 같은 이유로 바닷물 속에 있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 그리고 이들이 상호작용하며 작동하는 시스템 전체 또한 우리 모두의 공동 노력으로 관리할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바다 이용과 관리제도는 ‘모두의 바다’와는 거리가 멀다. 이제부터 필자는 바다를 이용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떻게 이용하는지, 이러한 이용체계는 누가 만들고 누가 감독하고 있는지를 정리해보고 앞으로 ‘모두의 바다’를 지향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거창하게 전 지구적인 오션 거버넌스에 대해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세계 10위권에 드는 우리나라의 국격에 걸맞은 수준의 해양수산정책을 펼쳤으면, 그리고 우리나라 바다와 바다자원 관리에 ‘지속가능성’과 ‘공평성’ 두 가지 개념이 반드시 적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갑습니다. 먼저, 월간 현대해양에 연재되는 여러 선배님들의 기고문을 읽으면서 어업·어촌 현장과 해양수산정책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배우고 있는 애독자 중의 한 사람이자, 지방자치단체 출연 연구기관에서 지역 해양수산 정책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 아직 지식과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저에게 ‘모두의 바다를 위한 에세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연재해 주시기로 결정한 본지의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울러 앞으로 이 연재 기사를 읽으실 독자여러분께서는 제 글에 실수나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제 지식과 사고의 편협함에 기인한 것임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