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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77. 깍새등에서 울릉도 여행 명소로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1

  • 기사입력 2024.07.17 12:51
  • 최종수정 2024.07.24 14:52
  • 기자명 김준
저동항(2024)
저동항(2024)

[현대해양] 해가 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하나둘 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저동항과 촛대바위가 잘 보이는 관해정이다. 촛대바위와 저동항을 배경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울릉도 개척 당시, 빼곡한 후박나무가 하늘을 가릴 만큼 우거졌다. 이곳에 마을 산신당이 있어 제당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운 좋게 남은 후박나무 몇 그루가 저동항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른 저녁을 마친 주민과 호기심이 가득한 여행자들이 색소폰 소리에 끌려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박수를 치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떼창을 하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저동리
저동리

벼락 치는 베틀 소리 들렸으랴

저동리는 모시개라 불리는 작은 어촌이었다. ‘모시가 많은 갯벌’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모시 저(苧)를 취하여 저도라 했다. 여기서 ‘개’는 바닷가나 바닷마을 정도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섬에 길쌈이 성했던 것 같다. 울릉도에서 채록한 ‘베틀노래’(『울릉군지』,1989)에는 ‘바디집 치는 소리가 조그마한 산골짝에 벼락 치는 소릴레라’라고 했다. 저동리에는 작은 모시개, 중간 모시개, 큰 모시개 등 마을이 있었다. 작은 모시개는 저동항 북쪽 방파제 근처를 말하며, 큰 모시개는 도동리와 접한 곳, 그 사이 후박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이 중간 모시개이다. 이외에도 깍기등, 주사골, 줄맨등, 숯골, 내수전, 신흥동 등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반영한 이름을 가진 마을이 흩어져 있었다.

울릉도 개척은 신라시대 이사부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백성들이 들어와 섬을 일구며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말이다. 『울릉도향토지』(1963)에는 ‘이조말기 난세에 피난지처를 동해고도로 택하여 최초로 전라도로부터 범선에 편승하여 박장백, 장창근, 전도장 등이 주동이 되어 울창한 원시림을 화전개척’했다고 기록했다. 이후 경남 울산, 경북 일대, 강원·울진(현 경북) 등에서 들어왔다. 지금도 강릉항에서 출발한 배는 저도항으로 들어온다. 울릉도 개척과 함께 전하는 이야기이다.

1882년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자 1882년 울진에서 정감록을 신봉하는 전재환 일가가 피난지라며 들어올 때, 배상삼이라는 힘이 천하장사인 무부(武夫)가 함께 들어왔다. 배씨는 사동에서 과부를 보쌈해 관해정에 살림을 차리고 대장간을 운영하며 농기구를 팔며 살았다. 당시 평해군수 조종성이 배씨를 도수로 정하고 섬을 관리하도록 했다. 당시 왜인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벌목을 하는 것을 혼자 힘으로 20여 명을 몰아내기도 했다. 1894년 가뭄이 심해지자 섬 안에 부자들의 창고를 헐어 곡물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왜인들에게 물건을 사서 개척민에게 되팔던 상인들이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자 배도수를 죽이기로 모의를 했다. 그리고 태하 성하신당제를 지내던 날 그를 죽였다. 그 시신이 관해정 앞에서 화장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저동항. 저동리 가운데 하천이 저동천이며 좌우로 큰 모시개와 작은 모시개가 위치해 있다.
1970년대 저동항. 저동리 가운데 하천이 저동천이며 좌우로 큰 모시개와 작은 모시개가 위치해 있다.

깍새등에 마련한 보금자리

울릉도는 화산섬이다. 화구인 나리분지를 동남쪽으로 가장 높은 성인봉(984), 천두산 등 큰 산이 있고, 북서쪽으로 깃대봉, 형제봉 등이 둘러싸고 있다. 화구인 칼데라에는 알봉이 있다. 남쪽은 높은 산이 북쪽은 상대적으로 낮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나리, 현포리, 태하리 등에 논과 밭을 일굴 수 있었다. 여기에 비하면 남동쪽에 위치한 도동리, 저동리, 천부리 등은 산세가 험하고 급경사이며 바닷가로 내리뻗어 있다. 특히 도동과 저동은 평지가 거의 없으며, 저동은 급경사를 타고 흘러내린 물줄기가 만들어낸 퇴적지에 자리를 잡았다. 그 하천이 태하천과 함께 울릉도를 대표하는 저동천이다. 가파른 탓에 유역이 짧다. 그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저동이 그중 하나다. 이런 곳은 집이 작고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길이 좁다. 울릉도에서는 이렇게 가파른 급경사 등성이를 ‘깍새등’이라고 한다. 깍새는 슴새를 말하는 울릉도 말이다. 울릉도에 딸린 관음도는 깍새가 많이 살아 주민들은 ‘깍새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저동리에 머무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도 초기에는 깍새등이었다.

도동도 그렇지만 저동도 차가 왕복할 수 있는 도로는 밑으로 물이 흐른다. 하천을 복개하여 차가 다니는 도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시나 육지처럼 1, 2년이면 복개되는 공사가 아니었다. 40여 년이 걸리기도 했다. 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 예산을 받는 것이 늘 뒤로 밀리는 탓이다. 성인봉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몇 갈래가 합쳐져 봉래폭포를 거쳐 저동항으로 내려온다. 이를 저동천이라고 한다. 그 물은 주민들 식수이자 농사를 짓는 농업용수이며 저동항 인근 해조류와 어류들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염류를 공급하는 생명수이다.

저동천 좌우에 주거지들은 과거에 대부분 논밭이었다. 지금은 집을 짓고 건물을 올렸다. 집집마다 옥상에 오징어덕장을 설치해 건조하기도 했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집이 있다. 지금도 골목이 좁아 차량이 지나갈 수 없는 곳도 많다. 공사 차량이 빈집을 철거하기 위해 내려가다 멈췄다. 더 이상 갈 수 없다. 하천을 복개한 곳은 저동에서는 광장이다.

벌천포 송림
벌천포 송림
④봉래폭포  ⑤염막폭포
④봉래폭포 ⑤염막폭포

 

죽도, 촛대바위 그리고 폭포

저동리는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섬 죽도를 품고 있다. 죽도에서 저동항에서 북동쪽으로 10리 위치에 있는 섬이다. 1960년대 4가구 30여 명이 살았다. 대부분 주민은 소 사육과 더덕 농사로 생활을 했다. 이후 1980년대 3가구, 1990년대 후반 불편한 섬살이로 인해 김유곤 씨 가족만 남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지내다 결혼을 해 한 가족 세 명이 되었지만 아이 교육 문제로 다시 1인 섬이 되었다. 그래도 매년 4만여 명이 저동항에서 유람선을 타고 방문하는 울릉도 관광명소다. 죽도는 더덕 농사가 유명하며, 더덕 주스를 마실 수 있다.

저동항의 또 다른 관광자원은 촛대바위다. 촛대바위는 저동의 랜드마크이며, 1970년대 방파제가 만들어지기 전 사진을 보면 그 모습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도동등대(행남등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촛대바위를 보고 위치를 가늠했다. 이 바위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저동리에 한 노인이 딸과 살고 있었다. 이 노인에게는 손바닥만 한 밭과 작은 배 한 척이 전 재산이었다. 울릉도 겨울 식량인 옥수수가 흉작으로 먹을 것이 떨어지자 날씨가 좋지 않은 겨울에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고 파도가 높아졌는데도 노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딸은 눈보라가 치고 파도가 높은 바닷가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 그 바위가 촛대바위이며 ‘효녀바위’라고도 부른다.

저동천을 따라 2킬로미터 정도 올라가다 보면 주삿골에 이르러 웅장한 봉래폭포를 만날 수 있다. 울릉도를 대표하는 폭포이자 관광명소다. 전체 높이가 25미터에 이르는 3단 폭포다. 폭포로 가는 길에 삼나무숲이 아름답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풍혈도 만날 수 있다. 봉래폭포를 이용해 한때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저동리 주민들의 귀한 식수원이다. 또 죽도에서 저동항으로 배를 타고 오는 길에 바다로 떨어지는 염막폭포도 있다. 바다에서만 볼 수 있고, 비가 오는 날에 수량이 더 늘어나기에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다. 울릉도에서는 비가 많은 여름철에 해안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많은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저동천과 저동항
저동천과 저동항
⑦가파른 깍개등에 지은 집들, 지금은 저동항 밑으로 내려오면서 빈집이 되었다  ⑧주민들이 가파른 길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붙잡을 수 있는 밧줄을 묶어 놓았다  ⑨소여행 성수기에는 어둠이 내리면 관해정에서 여행객을 위한 음악회가 펼쳐진다  ⑩관해정 후박나무숲
⑦가파른 깍개등에 지은 집들, 지금은 저동항 밑으로 내려오면서 빈집이 되었다 ⑧주민들이 가파른 길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붙잡을 수 있는 밧줄을 묶어 놓았다 ⑨소여행 성수기에는 어둠이 내리면 관해정에서 여행객을 위한 음악회가 펼쳐진다 ⑩관해정 후박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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